'Blog+Enter+Hurlkie's'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10.01.29 Hurlkie's Enter-note 지붕뚫고 하이킥:가슴 아픈 짝사랑도, 알콩달콩 연애도, 이에 동반되는 성장통도 일상이다
  2. 2010.01.22 Hurlkie's Enter-note : 모든 예술은 ‘일상’과 ‘대중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3. 2010.01.07 Hurlkie's Enter-note : <아바타>는 이상향이자 구원이다
  4. 2010.01.02 Hurlkie's Enter-note : 영화도 리얼리티다! 그녀들의 유쾌한 수다 <여배우들>
  5. 2010.01.02 Hurlkie's Enter-note : 반갑다! 일밤, 공익·복고·감동으로 돌아오다
  6. 2010.01.02 Hurlkie's Enter-note : 복싱인기 재건한 가메다家와 TBS의 시너지
  7. 2010.01.02 Hurlkie's Enter-note : 우리 언론의 자화상, <무한도전> 뉴욕 파문
  8. 2010.01.02 Hurlkie's Enter-note : 부러운 것이 너무 많은 ‘루저’들의 안식처 <심야식당>
  9. 2010.01.02 Hurlkie's Enter-note : <히어로> 김민정 하차 유감, 그녀는 왜?
  10. 2010.01.02 Hurlkie's Enter-note : 토크박스의 귀환 <강심장>, 대박이거나 쪽박이거나?
  11. 2010.01.02 Hurlkie's Enter-note : 4분기 일본드라마, 히트작의 새 시즌과 선 굵은 대작 러시
  12. 2010.01.02 Hurlkie's Enter-note :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뉴욕 SVU, 그들이 성범죄에 대처하는 자세
  13. 2010.01.02 Hurlkie's Enter-note : 일본 3분기 드라마 마무리, 4분기 드라마 라인업
  14. 2010.01.01 Hurlkie's Enter-note : tvN의 <재밌는TV 롤러코스터>, 인기비결은 ‘공감 리얼리티’ (2)
  15. 2010.01.01 Hurlkie's Enter-note : ‘맨땅에 헤딩’하는 한국 드라마 시스템의 현주소
  16. 2010.01.01 Hurlkie's Enter-note : 기자가 팬? 안티? 팬들 싸움 부추기는 미디어 유감
  17. 2010.01.01 Hurlkie's Enter-note : 표절논란, 한국 가요계의 서글픈 자화상
  18. 2010.01.01 Hurlkie's Enter-note : 그들의 이유있는 역주행, 힘내라! <국가대표>
  19. 2010.01.01 Hurlkie's Enter-note : 파죽지세 <선덕여왕>, 그녀에게 바치는 찬사와 바람
  20. 2010.01.01 Hurlkie's Enter-note : 리메이크 수작, <결혼 못하는 남자> 유감

가슴 아픈 짝사랑도, 알콩달콩 연애도, 이에 동반되는 성장통도 일상이다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지붕뚫고 하이킥(이하 지뚫하)>은 재미 면에서든, 시청률 면에서든, 캐릭터 면에서든 전작인 <거침없이 하이킥>에 뒤지지 않고 있다. 이 시트콤 마니아들의 유일한 불만이 있다면 지나친 러브라인의 부각이다.
오죽하면 “뭔 놈의 시트콤이 만날 사랑 타령이냐”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시청자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웬만한 미니시리즈나 주말 드라마만큼이나 진중하고 구체적인 다양한 사랑에 대한 성찰은 <지뚫하>의 큰 매력 중 하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러브라인이 부각되는 에피소드가 방송된 날에는 시청률이 대부분 높은 편이다. 또한 소위 특정 커플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진전되거나 같이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식홈페이지는 물론 각종 커뮤니티의 게시판이 시끌벅적해지기 때문이다.
공식 연인인 지훈(최다니엘)과 정음(황정음), 지훈에 대한 감정을 키우며 마냥 바라만 보고 있는 세경(신세경), 그런 세경을 짝사랑하고 있는 준혁(윤시윤), 그리고 초창기지만 아직 어린 준혁에 묘한 감정을 느끼며 서운해 하고 속상해하던 정음 등 어느 한 커플도 허투루 다루는 일이 없다. 사람에 대한 감정과 그로 인한 변화, 그리고 성숙해가는 과정을 빼곡하게 혹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은밀하게 그려가고 있다.
이처럼 물고 물리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러브라인은 참으로 시청자들을 설레게도, 울게도, 혹은 흐뭇하게도, 불안하게도, 짜증이 나게도 한다. 모든 것이 쉽게 복사되고 생산되며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 <지뚫하>는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서럽지만 마음을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아날로그 같은 사랑을 그리고 있다.


지훈과 정음 : 티격태격, 알콩달콩 그리고 사회의 반영
소위 ‘지정’이라고 불리는 이 커플은 <지뚫하>의 네 젊은이 중 유일하게 양방향으로 감정을 교류하고 있다.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다. 준혁의 과외선생인 정음, 과외가 있는 날인 것을 잊고 술을 마시다 전화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준혁네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참지 못하고 변기를 붙들고 구토를 하던 중 지훈과 처음 만나게 된다.
희로애락의 감정 표현이 뚜렷한 정음에게 무뚝뚝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지훈은 자신의 소중한 개 ‘히릿’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맹장수술까지 한 밉상 중 밉상이다. 이에 정음은 ‘개자식 이지훈’이라고 부르곤 한다. 데면데면한 듯하지만 심심치 않게 되도 않는 장난을 치거나 감정을 보여주는 지훈과 혼자 울고불고 하거나 화를 내거나 팩하고 토라지기도 하는 정음은 전형적인 커플의 느낌이다.
설사병, 내비게이션의 고장 등 우연이 겹치면서 지훈과 정음은 키스를 하게 되고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티격태격 알콩달콩한 연애를 하는 이들은 알게 모르게 꽤 어른스러운 사랑을 하고 있다.
지훈만 데이트 비용을 내는 것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정음의 자격지심, 학벌·뒷배경 등 모자른 스펙으로 눈물을 자아냈던 정음의 취직, 생일날 기분이 좋지 않은 지훈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눈물겨운 노력 등의 에피소드를 통해 두 사람은 서로 위로하고 기대고 성숙하게 하는 존재가 됐다.
정음의 일방적인 감정만으로 진행되던 이 커플은 최근 두 사람 간의 교류하는 감정들로 극을 진행시키고 있다. 이에 지훈과 정음은 알콩달콩 연애상과 사회를 반영하는 달콤 쌉싸래한 커플이다.


세경과 준혁 : 풋풋함, 지고지순 그리고 성장통
한때 전작인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나문희 커플의 젊은 시절이라는 이야기가 떠돌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던 커플이다. ‘준세’라 불리는 두 사람은 크게 감정을 드러내거나 관계의 진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연말 시상식에서 베스트 커플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커플이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 준혁과 그 집에서 입주 가정부를 하고 있는 세경, 이 두 사람의 사랑은 분명 준혁의 짝사랑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에 열광하는 이유는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풋풋하고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세경은 준혁과 있을 때 잘 웃고 장난도 치며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드러내며 무장해제가 되기도 하지만 준혁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세경의 마음 속에는 지훈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커플의 감정선은 주로 준혁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밥을 먹을 때도 식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준혁은 세경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다 쓰레기 봉투를 내다주고 우연인 척 자전거로 세경을 마중나가곤 한다. 세경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주고받는 법, 스쿠터를 타는 법 등을 가르쳐준 사람은 준혁이다. 바다에 가고 싶다는 세경과 동생 신애를 위해 몇 달 동안 모은 게임기살 돈을 털어 스쿠터를 구입한다.
어느 날 문득 세경이 자신의 팬티를 빨고 있음을 깨닫고 안절부절하는가 하면 세경과 다정하게 수학공부를 하고 있는 세호에게 질투를 느끼고 세경이 삼촌 지훈에게 짜준 것보다 자신에게 짜준 목도리가 더 길다는 사실에 환호한다.
다친 발목이 낫지 않은 척 세경의 도움을 받으며 데이트까지 감행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연상시키는 귀여움과 지훈을 짝사랑하는 세경이 지훈과 정음이 사귀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며 기뻐하기 보다는 상처받을 세경을 걱정하는 성숙함이 공존하는 준혁의 처절한 짝사랑이다.
세경을 짝사랑함으로써 때로는 답답함에 가슴을 치고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에 대한 원망이 일기도 하지만 세경의 짝사랑까지도 포용하며 성장통을 호되게 앓고 있는 준혁, 그리고 준혁과 함께 할 때야 비로소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세경의 조합은 꽤 그럴듯한 그림이다.
슬픔도, 아픔도, 늘 꿈꾸던 크리스마스 트리의 모든 불이 켜지는 순간도 함께 했던 준혁과 세경은 지금은 아프고 서툴기 만하지만 미래의 모습이 기대되는 커플이다.


지훈과 세경 : 아릿함, 모호함 그리고 희망고문
사실 <지뚫하>에서 가장 먼저 감정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세경이었다. 세경이 상경해서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이 지훈이었고, 순재네 입주 가정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지훈때문이었다. 매사 무심하고 가족에게 조차 데면데면한 지훈이 세경과 신애에게는 옷을 사다주거나 휴대전화를 개통해주거나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며 꽤 세심하고 다정한 모습도 보여준다.
평소의 지훈답지 않은 모습에 세경의 일방적인 감정임에도 이 커플은 애잔하고 아련하다. 이 커플 역시 감정 표현이 없는 이지훈을 짝사랑하는 세경의 감정선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로지 세경의 성장만이 목적인 듯 세경 혼자 아프고 행복하고 비참해지며 아릿함을 선사한다. 봄 아지랑이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멀게만 느껴지는 세경 혼자만의 감정이면서도 문득문득 보여주는 지훈의, 그 감정의 정체가 모호한 호의에 포기가 되지 않아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지훈은 세경 자매를 동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세경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 치료에 늘어난 빚으로 원양어선을 탔고, 세경은 동생 신애를 데리고 더부살이를 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지훈의 입장에서는 병중의 어머니와 바쁜 아버지로 어린 자신을 자식처럼 돌보며 힘겹게 살아온 누나 현경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동정이라고 하기에 지훈의 성정이 그리 녹록치가 않다. 가족에게조차 쉬운 존재가 아닌 지훈의 배려와 친절은 그저 ‘눈에 밟히는 아이’를 향하는 것치고는 모호한 부분이 없지 않다. 지훈과 세경 커플에 열광하는 팬들은 이 모호함으로 희망고문에 시달리곤 한다.
세경이 서 있음에도 알아채지 알아보고 지나치거나 친구들에게 ‘불쌍한 가정부’라고 경고하는 지훈에 속상해하면서도 거짓말까지 해가며 빨간 목도리를 사다주는 지훈에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훈이 세경이 서 있음을 알아차릴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92회, 낯선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지훈과 세경은 지훈이 학교다니던 시절을 따라가는 추억여행을 했다. 자주 가던 레코드 가게에서 나란히 앉아 음악을 듣고, 욕쟁이 할머니네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곧 없어질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지훈이 가고 카페에 혼자 남은 세경이 벽에 그려 넣은 ‘지훈♡세경’이라는 낙서가 스쳐간 첫사랑의 아름다운 추억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추억을 공유하며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아마도 김병욱PD도, 시트콤을 지켜보는 시청자 등은 이뤄지든 그렇지 않든 지세를 쉽게 놓지 못할 것이다. 지세는 세경이 지훈을 위해 준비하는 사골처럼 우리고 또 우려내는 질기디 질긴 첫사랑이자 짝사랑이기 때문이다.


준혁과 정음 : 상큼함, 편안함 그리고 이제는 물 건너간?
<지뚫하>의 초반에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하는 커플이 준혁과 정음이었다. 본의 아니게 ‘서울대생’으로 속이게 된 서운대생 영어과외 선생 정음과 전 과외선생과의 의리 때문에 정음을 골탕 먹이고 거칠게 대하는 준혁의 관계 설정은 소설이나 드마라에서 선호되는, 꽤 흥미진진한 러브 판타지다.
정음은 준혁이 노트에 그린 여자가 자신이라고 오해하거나 춥다고 하자 옷을 벗어 덮어주자 준혁의 감정을 확신하고 준혁을 다시 꼼꼼이 훑어본다. 하지만 준혁의 휴대전화 사진을 살펴보다 준혁이 세경을 짝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정음의 모습은 마치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사람처럼 귀엽다.
이처럼 일찌감치 정리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음과 밤샘공부를 하는 준혁의 모습은 흡사 연인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그 목적이 세경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라는 데 있다. 92점짜리 성적표를 들고 세경에게 가장 먼저 달려간 준혁에 섭섭함을 느끼는 정음의 모습은 귀여운 커플에 목마른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최근 정음이 지훈과 사귀기 시작하고, 세경에 대한 준혁의 감정이 보다 깊어지면서 준정에 대한 가능성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편하다 못해 긴장감이 결여된 두 사람은 커플이라기보다 남매나 형제에 가깝다. 지정이 현실의 연애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면 준정은 사이 좋은 남매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과외장면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하는 준혁과 정음 커플 지지팬들은 지훈과 정음이 사귀는 것을 알고도 상처입을 세경만을 걱정하는 준혁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랑도, 변화도, 성장도 우리의 일상을 닮아간다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그려야할 시트콤에서 웬 사랑타령이냐고 불만인 사람들도 알고는 있을 것이다. 차마 다가갈 수 없어 아프고 서러운 짝사랑도, 티격태격하며 알콩달콩하는 연애도, 그리고 이에 동반되는 성장통과 변화도 일상의 일부분임을, 그리고 극에 재미를 불어넣는 요소임을.
알콩달콩하지만 어른스러운 사랑을 하는 지훈과 정음, 애절함과 설렘 사이를 오가는 준혁과 세경, 모호함과 슬픔이 공존하는 지훈과 세경,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해졌지만 여전히 예쁜 준혁과 정음 등 일방적이던 관계는 조금씩 진화한다. 일상처럼 만나고 갈등하면서 오히려 우리네 일상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세경과 준혁은 지훈과 정음이 사귀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가슴앓이를 하는 세경을 지켜보는 준혁의 애절한 마음까지 표출되고 있다. 전시관에서 우연히 만난 지훈과 ‘마지막 휴양지’를 지켜보는 세경, 지훈·정음이 사귀는 것을 알게된 준혁과 세경의 상황은 러브라인이 지훈과 정음, 세경과 준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계기가 되거나 감정들이 얼키고설키는 또다른 혼란스러움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황정음의 신종플루 확정으로 2월 첫주는 스페셜로 편성된다고 발표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뫼비우스의 띠가 멈춰버린 셈이다. 이같은 상황이니 지훈·정음·세경·준혁의 사랑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팬들은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제작진의 의도와는 별개로 각자 선호하는 커플에 맞게 상황을 퍼즐처럼 맞추며 설레어할 것이다. 극 속의 지훈·정음·세경·준혁은 멈춘 그 자리에 서있는데도 자신들의 판타지와 희망을 뒷받침하는 분석글과 망상글을 마구 생성하면서 말이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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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일상’과 ‘대중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에 팝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날아들었다. 지난 12월29일부터 2010년 4월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린다. 사실,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앤디 워홀의 작품세계를 평가하거나 전시회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워홀이라는 예술가 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대한 지식이 매우 야트막한 수준이니 작품세계 등을 논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단지, 화가이자 광고 디자이너이며 잡지의 기자이자 발행인, 영화감독이었던 앤디 워홀이라는 창작자를 통해 일상과 예술의 연관성, 창의력과 상상력의 발현, 대중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기 위함이다.


‘상업성’의 양면성, 대중의 가치를 論하라
전통적인 예술의 가치를 추구하던 시절,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Factory)’라고 이름 붙이고 사진을 활용한 실크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작품과 아이디어 등을 차용했다. 틀을 통해 무수히 반복적으로 덧대고 채색하며 ‘생산’에 가까운 창작 활동을 해왔다.
이는 당시 예술의 덕목 중 하나인 유일성과 독창성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지금까지도 워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의 단초가 되곤 한다. 워홀은 전통적인 예술의 가치인 유일성과 독창성, 예술가가 손으로 제작한 작품의 원본성에 반기를 들듯 똑같은 깡통과 박스와 병을 그려댔고, 똑같은 틀을 최대한 활용해 찍어냈다.
실크스크린 틀에 색과 물감, 재질, 선 등으로 변화를 주었고 일상의 모든 것을 소재와 재료로 활용했다. 작품 자체의 유일성과 독창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틀을 통해 찍어내는 듯한 자신만의 창작방식으로 유일성과 독창성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상반되는 것의 경계에 서 있다는 사실은 보는 이에 따라 ‘스펙트럼이 다양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이도 저도 아니다’라고 평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예술의 가치는 ‘상업성’을 지양해야할 덕목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유일성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가치는 대중의 가치를 소홀히 하며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려는 권위의식에서 기인한다. 반면, 상업성은 ‘돈’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대중’과 그들의 ‘일상’을 예술의 울타리로 끌어들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정 층의 소유가 아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인 것이다. 모든 예술은 ‘일상’과 ‘대중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은 군중과 일상 속에 있다
워홀의 미술관은 “미국이 위대한 이유는 부자도 가난한 사람들도 똑같은 물건을 살 수 있는 전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TV를 보고 코카콜라를 마신다. 대통령도, 리즈 테일러도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 대해 ‘상업적’이라고 공격하는 이들에게 “대통령도, 리즈 테일러도, 나도, 우리도, 당신도 코카콜라를 마신다”고 역설하며 대중의 가치와 평등을 강조한 것이다. 대중을 염두에 둔 워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후추맛, 치킨 앤 덤플링, 비프 등 각종 맛별 ‘캠벨 수프 깡통’과 ‘코카콜라 병’, ‘달러 사인’ ‘마릴린 먼로’ ‘마이클 잭슨’ ‘바나나’ 등인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는 워홀의 작품이 일상 속에, 군중 속에 있어야 빛을 발하는 이유이며 가장 위대한 예술은 군중과 일상 속에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미술 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와 콘텐츠에 적용돼야할 덕목이다.
“예술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받으면 좋아하는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워홀의 이 말은 예술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의 발현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대중과의 소통과 공유임을 역설한다. 대중이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와 예술은 제대로 된 예술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리얼리티’ ‘대중성’ ‘개연성’ 등으로 일컫곤 한다.
이 같은 예술관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들이 워홀을 유명 화가 반열에 오르게 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초상이다. 마릴린 먼로, 마이클 잭슨, 리즈 테일러, 잉그리드 버그만, 믹 재거, 재클린 케네디, 레닌, 마오쩌둥, 장 미셸 바스키아 등 유명인의 초상화 작업을 할 때 워홀의 작업방식이나 철학은 남다르다.
1985년작인 리나 터너의 얼굴은 빛을 받은 듯 하얗게 날리고 있다. 1962년 마릴린 먼로의 죽음을 기린 작품 중 하나인 ‘세 개의 마릴린’은 과장되게 화려하면서도 철저하게 가면을 쓴 듯 보인다. 1975년작인 믹 재거 에디션 작업에는 애용하던 바탕 면 칠하기나 스텐실 기법이 아닌 거칠게 찢긴 여러 장의 종이를 활용했다.
이처럼 워홀은 스타나 유명인 자체를 그리는 데 의미를 두기 보다는 스타를 통해 공유하는 대중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워홀은 철저하게 대중의 입장에서, 대중을 염두에 둔 작품을 통해 대중의 가치를 강조하고 그들과의 소통을 꾀한 것이다.
사고현장 등의 끔찍한 장면도 매체를 통해 반복해 보여주면 감각이 둔화돼 끔찍한 내용과 이미지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는 대중 심리를 표현한 ‘앰뷸런스 사고’ ‘두개골’ ‘전기의자’ 등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상과 현실, 그 경계를 서성이다
순수예술이든 상업예술이든 모든 예술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존재한다. 미술도, 음악도, 소설도, 드라마도, TV영상도, 영화도 지나치게 현실적이기만 하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별천지를 그린다고 해서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예술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이들이 말하는 흥행의 결과는 아니다. 이같은 결과의 밑거름이 되는 대중과의 소통과 공유, 개연성 확보 등의 ‘성공’과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술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얼마나 대중과 소통하고 공유하며 대중의 가치를 높이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고 공감을 끌어내 향유할 수 있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적절하게 서 있을 곳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네의 예술인 것이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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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는 이상향이자 구원이다

<타이타닉> 이후 12년만에 선보인 제임스 카메론의 신작 <아바타>의 흥행세가 상서롭다. 12월17일, 전세계에 동시개봉한 <아바타>는 개봉 3주차에도 그 기세가 수그러들 줄 모른다. 북미 극장가에서 개봉 첫 주말에 7천702만5천481 달러를 벌어들였고 2주차, 3주차 주말에도 각각 7천561만7천183 달러, 6천83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종전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전까지 2주차 흥행 1위는 <다크나이트>의 7천500만 달러, 3주차 흥행 1위는 <스파이더맨>의 4천500만 달러다.
전세계 총수익은 일찌감치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타이타닉(18억4천300만 달러)>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11억1천900만 달러)> <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 함(10억6천600만 달러)> <다크나이트(10억100만 달러)> 등이 ·10억 달러의 이상의 수익을 올렸지만 이는 개봉 10주차 이상이 지났을 때의 성적이었다. 하지만 <아바타>는 불과 3주만에 1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새해 첫날 기록까지 갈아치웠는데 <Meet the Fockers(2004년 1월1일 수익 1천800만 달러)>보다 많은 2천5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이같은 기세라면 제임스 카메론은 전세계 박스오피스 1, 2위를 독식한 유일한 감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타이타닉> 이후 “I’m King of World"라며 다소 오만하게 자취를 감췄던 제임스 카메론은 명실상부한 세계의 제왕으로 등극했다. 참으로 거장다운 귀환이 아닐 수 없다.
<아바타>의 경이적인 흥행에 대해 이러저러 하다 얘기했지만 사실, 이 영화 자체로만 따지면 ‘흥행’ ‘수익’ 등의 말을 쓰기가 미안할 정도로 때 묻지 않았고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간절한 소망, 그리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흥행이 반가운 이유는 꼭 보아야하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하는 콘텐츠가 언제나 흥행에 성공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구태의연하다’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 영화의 폭발적인 흥행은 <아바타>가 전하는 메시지만큼이나 의미심장하다.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갈구와 판타지를 선사하다
판도라(Pandora)는 ‘언옵타늄’의 최대 매장지인 행성이다. 언옵타늄이란 지구의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체자원이다. 이에 지구는 무차별적으로 언옵타늄 채굴을 시작하지만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Na'vi) 부족의 강한 저항에 부딪힌다. 이에 그레이스 박사(시고니 위버)는 링크머신을 통해 인간의 의식으로 원격조정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를 탄생시킨다. 그 설정과 시작만으로도 경이로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그렇다면 지구인들의 의도대로 아바타는 완벽하게 원격조정이 가능할까? 그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그렇지 않다. 하반신 마비의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는 아바타 프로그램을 준비하다 사고로 죽은 쌍둥이 형 대신 우주선에 오른다. 그 목적은 단순히 다리수술을 할 돈 때문이었다.
성공적으로 아바타를 조정할 수 있게 된 제이크는 나비부족 섬멸에 열을 올리는 마일즈 쿼리치 대령(스티븐 랭)의 스파이 역할까지 마다않는다. 탐사 중 혼자 떨어져 나비부족 사이에 침투한 제이크는 여전사 네이티리(조 샐다나)를 사랑하게 되고 토착민에 동화돼 간다. 플롯만 보면 매우 뻔한, SF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처럼 뻔해 보이는 SF 영화 <아바타>는 전세계 영화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관객들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화려한 영상이나 최첨단 CG, 제임스 카메론 감독부터 샘 워싱턴, 조 샐다나, 시고니 위버, 스티븐 랭 등으로 이어지는 출중한 감독과 출연진이다.
게다가 CG와 감성을 결합한 이모션 퍼포먼스 캡처 방식의 도입, 한 프레임 랜더링에 들인 엄청난 시간과 정성, 판도라의 자연풍경을 구현한 CG를 저장한 1 페타바이트(1천24 테라바이트, 1천 테라바이트=100만 기가바이트)의 용량, 후반작업을 위해 사용된 컴퓨터 7천500대 등 CG에 들인 물량과 정성이 극진하기도 하다.


이같은 CG의 최첨단성과 스케일, 연출과 출연진만으로 이 영화를 평가하려 한다면 ‘그저 그런 블록버스터 SF 판타지’다. 하지만 SF 영화라면 일단 제쳐두고 보는 이들까지도 <아바타>에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처럼 진부한 ‘그저 그런 블록버스터 SF 판타지’를 ‘방문할 가치가 있는 또 다른 세계’로 승격시킨 핵심 요인은 ‘자연은 누구의 소유가 아닌 잠시 빌려 쓰는 것, 훼손하지 않고 교감하며 사는 것’이라는 판도라 토착민 나비부족의 자연관과 일맥상통한다. 그들의 자연관을 통해 ‘자연에 대한 존엄성과 훼손에 대한 경고’라는 의미심장하고 엄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자체발광하며 인간의 뇌보다 촘촘하게 연결돼 네트워킹하는 자연, 그리고 그들과의 교감으로 훼손되지 않은 판도라의 풍경은 말 그대로 꿈속을 여행하는 듯한 황홀함과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갈구와 판타지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바타는 이상향이자 현실의 반영이다
이에 영화 <아바타>는 이상향이자 현실의 반영이다. 영화제목 <아바타>가 아닌 용어 ‘Avata’는 이상향이다. 가상세계에서 자신의 분신이며 외모든 행위든 현실에서 가지기 힘들고 하기 힘든 일을 수행하는 능력자다.
아바타는 이상향이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아바타는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나’의 사고체계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북미는 물론 전세계 영화팬을 매혹시키고 있는 영화 <아바타>는 이같은 아바타의 중의적인 가치를 잘 나타내고 있다.
<아바타> 속 판도라 행성의 자연풍경은 지나치게 아름답고 원초적이다. 지구상의 어떤 우림보다 거대하며 하늘에는 언옵타늄이 자기장 속성으로 공중에 떠 끊임없이 이동하는 할렐루야 산이 존재한다. 밤에는 자체 발광하는 이색적인 자연과 생명력 넘치는 동물들이 눈부시다.


흑인과 인디오, 동양의 판타지를 섞은 토착민이자 인간의 아바타 외형인 나비부족은 어떤가. 3미터에 가까운 신장과 늘씬하게 빠진 몸매, 탄탄한 근육, 우아하지만 활기찬 움직임 등은 현실 세계의 사람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이들은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지닌 유일한 우주종족으로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명을 가지고 있다.
동족은 물론 자연, 그리고 행성 자체와 유대하고 있으며 인간보다 4배 이상의 운동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판도라 같은 행성에서 살고 싶어하거나 나비부족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반면, 진부하지만 자연에 대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미래의 이야기는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현 인류에 대한 비판이자 원망이며 경고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자연, 자연과 사람 등 모든 생물이 만나고 소통한다. 이는 이상향이자 사람끼리도 소통이 쉽지 않은 현실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영화 <아바타>는 이상향이자 현실인 것이다. 영화가 선사하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은 아이러니하게도 2009년 현재, 일그러지고 뒤틀린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의식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Avarta’라는 용어의 모든 가치를 영화 <아바타> 속에 담았다. ‘Avarta’는 산스크리트어인 ‘Avatāra’에서 유래했다. 신이 이 세상을 구제하고자 몇 번이고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다는 의미로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가 바로 아바타다.
지구와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영화 <아바타>는 1977년 트럭운전사 시절부터 꿈꾸던 제임스 카메론의 이상향이며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들의 이상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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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리얼리티다! 그녀들의 유쾌한 수다 <여배우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브라운관의 대세로 자리 잡더니 영화에도 리얼리티 기법을 이용할 모양이다. 윤여정·이미숙·고현정·최지우·김민희·김옥빈, 이름만 들어도 그 강한 기와 개성이 느껴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여섯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정말일까? 촬영 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쏟아진 반응은 이랬다. 믿을 수 없다는 반문이나 호기심어린 시선이었다. 과연 재능이든, 에너지든, 내공이든이 둘째가라면 서럽고 기는 세고, 자존심은 더 세고, 자애심(自愛心)은 그 보다 더 큰 그녀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을까?
이재용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출연을 사양한 여배우가 10여 명에 이른다. 순발력이 자신없고, 여배우 간의 기 싸움이 부담스럽고, 그런 조합에 끼고 싶지 않다는 게 출연 고사 이유였다. 그만큼 여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영화에서도 언급됐지만 정말 어렵고도 부담스럽고도 꺼려지는 일인 것이다.


허구와 실제의 경계에 선 <여배우들>, 리얼리티와 극적 재미 공존
결국 한사람씩만 나와도 그 포스가 엄청난 여배우들이 6명이나, 그것도 동시에 모여 수다를 떠는 영화가 정말 만들어졌다. 여배우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거나 풍미하고 있는 그들은 걸출한 입담과 강한 개성의 소유자다.
화려한 무대 위의 갈채와 은막 뒤의 비난을 오롯이 홀로 견뎌야하는 여배우, 그래서 더욱 화려하고, 고독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녀들이 한 여자로, 그리고 한 인간으로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이름하여 <여배우들>, 그 결과물이 꽤 그럴 듯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매우 간단하다. 크리스마스 이브, 패션지 <보그>의 특집 화보를 위해 6명의 여배우들이 모여든다. 진짜 패션지의 에디터와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포토그래퍼 등의 스태프들이 등장한다. 사실 이것이 대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배우들>은 감독이 기본적인 구성과 동선, 상황만을 설명하고 여배우들이 자신의 실제 성격을 반영해 감독과 상의해서 만들어 낸 ‘대본’ 아닌 ‘대본’을 생생하게 따라가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리얼리티와 허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모큐멘터리(Mockumentary)다.
일명 ‘카더라’ 통신으로 세상을 떠도는 출연 여배우들에 대한 루머들을 연상시키는 코드들이 적지 않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서부터가 실제 상황인지가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이지만 극적 재미 역시 만만치 않다.
스튜디오에 도착하는 상황부터가 심상치 않다. 시간을 잘못 봐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윤여정, 이미 풀 메이크업에 헤어 세팅까지 완벽하다. 민망함에 빨리 오라고 전화한 윤여정에 고현정은 알겠다고 하고는 다시 늘어졌다 두 번째 전화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스튜디오로 향한다.
밤샘 촬영으로 얼굴은 붓고 기 센 여배우들과 촬영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만한 최지우는 어떻게든 따로 촬영하려고 해보지만 자신만 못생기게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결국 느지막이 나타난다. 막내 김옥빈은 혼자 있으면 민망할 테고, 둘만 있으면 더 민망할 것같아 일찌감치 도착하고도 주차장에서 안절부절 못하다 세 사람이 모이거서야 들어간다.
하지만 역시 즐겁게 수다를 떠는 윤여정·이미숙·고현정을 예의 주시할 뿐 그 속에 끼어들기란 어렵다. 커피를 찾는 이미숙에 커피 한잔을 건네기도, 라이터를 찾는 윤여정의 담뱃불을 붙이기도 어렵다. 이처럼 모여드는 모습만 봐도 이후의 진행이 만만치 않겠다는 예감이 든다.
나름 순탄하게 진행되던 화보촬영은 표지사진에 필요한 보석이 도착하지 않으면서 촬영은 중단된다. 모이는 것만으로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6명 여배우들의 분위기는 더욱 아슬아슬해진다. 하지만 뭔가 아슬아슬하게, 잘 나가는 후배와 한물 간 여배우, 결혼 전에는 비교도 안됐던, 하지만 지금은 범접할 수 없는 한류스타가 된 후배와 이것이 질투나기도 부럽기도 한 선배 등 여배우 사이의 이상한 이질감 등을 걱정했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


함께 있는 모습도 사랑스러운 그녀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하고 분위기메이커 역할까지 하면서 최지우에게만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고현정, 결국은 화장실에서 대판 싸움을 하고 최지우는 뛰쳐나가 버린다. 죽을 때까지 여자로 살고 싶다는 이미숙과 그런 후배에게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고 조언하는 윤여정, 모든 게 재미없는 제일 어린 김옥빈과 맞담배를 피우는 가장 나이 많은 ‘선생님’ 윤여정, 여자끼리 사랑하는 영화를 찍고 싶다는 김옥빈의 상대역으로 낙점된 김민희 등 다양한 여배우들의 조합은 꽤 흥미롭다.
혼자 있어야 아름답다고 부각된다는 여배우들은 두 사람도, 세 사람도, 여섯 사람도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고현정과 싸우고 뛰쳐나갔던 최지우는 “먹는 거 좋아한다면서요”라며 고현정에게 군고구마를 건넨다. 일종의 화해의 제스처인 것이다. 그리고는 눈이 오는 것을 알린다.
때마침 들리는 노랫소리, 일하느라 만나지 못한 연상의 연인에게 화상전화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스태프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눈이 그녀들을 무장해제시킨다.
돈 페리뇽을 쏘겠다는 이미숙, 어울리는 안주를 챙겨오겠다며 “집이 바로 요 앞이거든요”라며 달려가더니 돈 페리뇽에 어울리는 잔과 소속사 후배라는 멋진 영계까지 달고 나타난 고현정, 젊은 남자의 등장에 흥분하는 여배우들의 맛깔나고 감칠맛 나는 수다가 펼쳐진다.
아웅다웅하더니 ‘이영애’라는 같은 라이벌을 가지고 있는 고현정과 최지우, 재래시장을 지키겠다는 윤여정, 여배우로써 홀로 감당해야하는 편견이나 비난이 서럽지만 여전히 여자로 살고 싶은 이미숙, 눈치도 봐야하고 갈등도 있었지만 6명이 모인 것이 좋은 김민희와 김옥빈,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눈물을 흘리게도 한다.
유쾌하고 화통한, 그러면서 간질간질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알게 모르게 동질감을 이끌어낸다. 자신만의 고유색과 빛을 그대로 품고 있으면서 다른 이들의 색과 빛을 덧칠하고 흡수하는 이야기들은 꽤 근사하고 사랑스럽다.
결국 영화는 표지 촬영은 다음으로 미루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노심초사도, 시비도, 이기적인 모습도, 세기의 여배우들에 주눅이 든 모습도, 겉도는 느낌도, 사랑스럽게 느껴지게 한 영화 <여배우들>은 불협화음으로 시작해 소위 ‘삑사리’도 내던 6명의 여배우들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앙상블인 셈이다.
이 근사한 결과물의 일등공신은 별 개입 없이 그녀들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최선의 선택을 한 이재용 감독이며, 그가 믿을 수 있게 잘 이끌어간 여배우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술 취한 연기도, 영계 애인을 대동하는 설정도, 최지우와 싸우는 연기도 자청하고 나선 ‘대인배’ 고현정의 용기와 너그러움에 감사를 전한다. 이처럼 현실과 설정을 구분하기 힘든 영화에서 자칫 싸가지 없다고 느껴질 수 있는 역을 연기한 최지우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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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일밤, 공익·복고·감동으로 돌아오다

'1박2일’ ‘남자의 자격’의 <해피선데이>와 유재석·이효리의 <패밀리가 떴다>에 밀려 3~4%대의 시청률로 부진을 면치 못하던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가 개혁을 단행했다. 그간 ‘한다’ ‘안한다’를 두고 MBC와 공방을 벌이던 ‘쌀집 아저씨’ 김영희PD가 기어이는 <일밤>으로 복귀했다.
김영희PD의 말대로 <일밤>은 대한민국 예능史에 한 획을 그은 프로그램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시작이었고, 시청자들의 오락, 트렌드 등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메뉴인 몰래 카메라, ‘양심 냉장고’를 탄생시킨 ‘이경규가 간다’, ‘하자하자’,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아시아 아시아’ 등 필모그래피에서 그렇듯 김영희PD가 추구하는 것은 공익과 감동 그리고 가족 버라이어티다.

Code 1 : 함께 살며 사랑하며, 공익과 공생
김영희號 <일밤>이 추구하는 바는 공익과 공생이다. 김용만·탁재훈을 중심으로 김현철·한지민·안영미·비스트의 리더 윤두준 등의 스타가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비밀, 단비(이하 단비)’, 신동엽·김구라·정가은이 길거리로 나서 이 시대의 아버지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힘을 주는 ‘우리 아버지’, 이휘재를 중심으로 파괴되는 생태계로 개체수가 너무 많아 농작물은 물론 인명에까지 피해를 입히는 멧돼지를 잡는 ‘헌터스’ 등 코너의 기획의도와 주제 역시 ‘공익’과 ‘공생’을 따른다.
말 그대로 ‘Variety'라는 장르의 뜻과는 다르게 <무한도전> 이후로 리얼 버라이어티, 야생 버라이어티로 일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밤>은 어려운 사람들과의 공생, 수혜에 대한 보답, 외로운 이들과의 소통, 가족 간의 사랑 등을 보여줌으로써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현재는 젊은이들만을 위한 예능 프로그램만 넘쳐나고 있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예능을 만들고 싶다”던 김영희PD의 바람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주입식으로 공익과 공생의 필요성을 설명하다보면 재미 부분을 소홀히 할 수 있다.

Code 2 : Oldies but Goodies, 복고
요즘은 트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복고다. 음악도, 댄스도, 패션도, 액세서리도 복고풍이 유행하고 있는 가운데, <일밤>은 ‘스타일리시’와 ‘모던’을 버리고 복고를 선택했다. 포맷이나 진행은 매우 복고풍이다. ‘집단 토크’에 의한 ‘폭로’와 ‘자극’은 어디에도 없다. MC나 출연자들은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며 현장의 이야기와 분위기를 전하고 정보를 준다.
아프리카로 우물을 파러 가는 ‘단비’나 농작물·인명 피해를 일으키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멧돼지를 잡는 ‘헌터스’가 MC나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 혹은 자막이나 내레이션을 통해 정보와 현황이 전달된다. 세계 인구의 11억 이상이 깨끗하지 못한 물을 사용하고, 3.5초마다 아이들이 사망한다, 멧돼지의 생체수가 얼마나 많고 어떤 피해를 끼치는지 등 전달되는 정보량은 다큐멘터리 저리가라다.
1988년형 오렌지색 공중전화, 007 미션가방, 가족의 재회 등 곳곳에 복고 코드가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로 뽑히는 아버지에게는 ‘양문형 냉장고’를 선물하고 팡파르를 터뜨리는 장면은 이전 <일밤>의 ‘양심냉장고’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자칫 복고는 구태의연하거나 식상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Code 3 : 안타까움과 희열이 주는 감동
예능에 감동을 섞는 일은 이제 흔해졌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과정과 결과 속에서,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떠나 와야만 하는 아쉬움으로, 여행 중 만난 안타까운 사연으로,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던 승리의 기쁨으로 눈물을 흘리게 하고 감동을 선사한다.
하지만 <일밤>은 미처 알지 못했던 어려운 이들의 비참한 현실과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를 외면했던 자신에 대한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또한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보탬을 주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과 절실함에서 감동을 준다. 시청자들은 아프리카 아이들의 현실에, 예상치 못했던 아버지의 고독과 가족에 대한 사랑에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아직까지 완성되지 못한 그 결과물에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희열의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삶에 대한 지나친 부각과 설명은 감동을 반감시킬 위험이 있다.

아직은 아귀가 맞지 않는 코드들, 그러나 가능성은 있다
이같은 <일밤>의 코드는 시청자들을 움직였다. 새로워진 <일밤>의 첫 회 시청률은 8.5%, 동시간대 편성 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나 <패밀리가 떴다>에 비하면 미흡하지만, 지금까지의 <일밤>에 비하면 꽤 선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코드들의 아귀가 딱 들어맞아 보이지는 않는다.
공익과 공생을 위해 보여주는 그림이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비참하다. 17세 소년의 “매일 매일이 슬프다”는 대답은 슬프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워도 모자를 나이인데…”라는 출연자의 대사는 오글거리는 것을 떠나 지나치게 슬픔을 강요당하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오염된 물을 퍼마시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경악하게 하고, 눈물과 분노를 왈칵 쏟게 한다. 설명조로 구구절절 뱉어내는 출연진의 멘트는 보는 이들의 감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출연진의 멘트, 전문가의 설명, 내레이션, 자막 등 모두가 아프리카의 비참함을 전달함으로써 산만해지고 감동을 강요당하는 느낌을 줄 수 있어, 오히려 감동이 반감된다.
게다가 우물을 파러 온 제작진에 온몸을 흔들며 반기는 모습은 지나치게 영웅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있다. 이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 보다는 전투식량 사용법에 서툴러 먹을 것이 부족한 나라에서 식량과 물을 낭비하는 실수를 줄이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물론, 아프리카의 어려움과 현실을 극대화시켜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탁재훈의 "딱 봐도 먹을 수가 없는 물인데…”라는 말보다는 말을 잃고 울음을 참는 듯 붉어진 한지민의 눈시울이 훨씬 더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공감하고 감동을 받는 것은 방송을 지켜보는 시청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매일이 힘든 일상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춤을 추고 활력이 넘치기도 한다. 그들에겐 그것이 익숙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비참한 단면 속에서 보여지는 즐겁고 활기찬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이고 희망이다. 아프리카의 비참함을 왜곡시키고 부풀리는 것은 서구사회의 기준이다. 자신들의 입장과 기준에서 아프리카는 비참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일상일 뿐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두운 단면을 어둡게 정공법으로 풀기보다는 밝은 모습과 대비시키는 역공법으로 푸는 것이 다큐와 예능의 차이다. 그래서 때로는 다큐보다 예능이 더욱 감동스러운 것이다.
대만의 <꽃보다 남자>에서 따오밍스를 연기하며 일약 스타로 부상한 언승욱이 유니셰프 대사로 몽고에 자원봉사를 갔을 때의 일화는 그래서 새겨둘만하다. 비참하고 지저분한 모습만을 찍는 기자들에게 언승욱은 제재를 가했고, 즐겁게 대화하고 일하는 모습도 찍어주기를 부탁했다. 외부인들은 약간의 편리함을 위해 도움을 줄 뿐이다. 외부인들이 가고 난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힘들지만 즐겁게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든 <일밤>의 코드 중 하나는 ‘복고’다.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 혹은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이끌어내는 예스러운 방식에 최신 트렌드인 자막은 사족과도 같을 수 있다. 완벽하게 합을 맞추지 못한다면 말이다.

MC에 대한 아쉬움, ‘헌터스’의 재조정 필요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MC다. 각 코너의 메인MC를 맡고 있는 ‘단비’의 김용만·탁재훈, ‘우리 아버지’의 신동엽·김구라·정가은, ‘헌터스’의 이휘재는 훌륭한 MC지만 아직까지는 장점보다는 단점이나 아쉬움이 더 눈에 띈다.
김용만과 탁재훈은 편안하고 순박하고 유머러스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출연자들을 다독이고 현장을 아우르고 정리하는 능력은 부족한 느낌이다. ‘우리 아버지’의 신동엽과 김구라는 순발력과 진행능력이 뛰어나지만 진정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그들의 힘을 북돋을 만한 입담이나 파이팅이 부족해 보인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MC의 입심이 아쉽기는 하지만 ‘단비’와 ‘우리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어려움을 알리고, 가정 내 아버지 특유의 위치와 각양각색의 아버지 자화상을 보여줌으로써 감동과 웃음을 주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문제는 환경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헌터스’다.
지금까지 풀어낸 새로운 <일밤>에 대한 기대와 아쉬움은 ‘단비’와 ‘우리 아버지’에만 국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휘재를 중심으로 박준규, 김태우, 심권호, 올라이즈 밴드, 그리고 매주 들고나는 아이돌 스타 SS501의 김현중, <미남이시네요>의 정용화, 카라의 구하라 등이 엮어가는 ‘헌터스’는 ‘환경’을 주제로 한다지만 그 의도 자체가 모호하다.
농민들의 분노와 울분을 개그화하는 데서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멧돼지의 공격을 당했던 경험담과 이에 분노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웃어넘기자니 위험하고 다큐로 받자니 찜찜하다. 시작 전부터 사회적 논란이 된 ‘동물 학대’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는지 ‘생태계 파괴와 멧돼지 축출의 정당성에 대한 구구절절하고 반복되는 설명이 기대감을 떨어뜨렸다.
“동물이 싫어서가 아니라…” 등 반복되는 멘트와 내레이션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변명하는 느낌이 강하다. 또한 구조대원과 전문 수렵인, 경찰들도 어쩌지 못하는 멧돼지의 습격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잠복을 하고 산을 오르는 연예인들은 지나치게 위험해 보이고, 그 시간에 차라리 전문가를 투입하는 것이 낫지 않나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것도, 공부를 하고 가는 것도 아닌 이들이 산에 오르는 사이, 전문가인 119 구조대원들은 마취총을 들고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니 어쩌면 ‘민폐’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매복을 하러 가면서 선배들의 배려로 고기를 구워먹는 아이들 멤버들의 모습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콘셉트다. 멧돼지 습격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농작물 피해,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의 심각성을 전달하려는 ‘헌터스’는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이다. 문제의식을 전달하지도, 멧돼지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도 실패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지속성이 부족해 보이고, 포맷이나 표현방식이 구태의연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일밤>이 이같은 지적과 우려를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믿는다기 보다는 바란다는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자극과 오락성, 젊은 시청자만을 추구하던 기존의 예능과는 다른, 공익과 공생을 앞세운 가슴을 따스하게 하는 예능이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코너명처럼 ‘단비’에 가깝다. 그래서 그에 거는 기대는 더욱 크고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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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인기 재건한 가메다家와 TBS의 시너지

지난 11월29일, 일본 사이타마현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세계복싱평의회(World Boxing Council, 이하 WBC) 플라이급 타이틀매치의 시청률이 놀랍다. 본격적인 경기가 펼쳐지던 시간의 시청률은 43.1%로 경이로울 정도다. 드라마 시청률이 20%만 넘어도 ‘대박’이라고 평가되는 일본에서 시청률 43.1%는, 그 질의 고저를 떠나 한국보다 높은 가치를 나타내는 것만음 분명하다.
이날 경기는 1974년생으로 올해 35세의 챔피언 나이토 다이스케(35-3-3, 22KO)와 1986년생으로 23세의 도전자 가메다 고키가 WBC 플라이급 챔피언 벨트를 놓고 격투를 벌였다. 일본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챔피언 나이토와 개성 넘치는 인기절정의 도전자 고키의 경기는 시작 전부터 2만여 장의 티켓이 팔려나가며 그 인기와 관심도를 증명하기도 했다.
이날 타이틀매치에서는 특유의 공격적인 성향 보다는 효과적인 카운트 펀치를 날린 고키가, 고키의 두 배 이상의 펀치를 날렸지만 정확성이 떨어진 챔피언 나이토에 3대0(117-111, 117-111, 116-112)으로 판정승했다. 고키는 前세계권투협회(World Boxing Association, WBA)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으로 무패행진(22-0, 14KO)을 이어오고 있다.

TBS의 영원한 흥행카드, 가메다 3형제
가메다 고키는 복싱가문으로 이름난 가메다家의 장남이다. 나이토는 2년 전, 챔피언 방어전에서 가메다 형제의 차남인 가메다 다이키에게 판정승한 바 있었고, 이날 경기에서 다이키는 도가 지나친 반칙을 거듭하고도 판정패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가메다 가문을 몰락 위기까지 몰고 갔던 동생의 설욕전을 형이 한 셈이다.
후지TV나 NTV처럼 매년 27시간 혹은 24시간 연속 방송을 하거나 심야 드라마, 가요제 등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일본의 방송문화를 보다 보면 한국의 TV영상 콘텐츠가 얼마나 제한적으로 인기가 있고, 편성되고, 만들어지는지를 느끼곤 한다. 특히, 일본이 콘텐츠를 발굴하고 만들어내는 방법은 참으로 탁월한데 이 복싱경기,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가메다 가문 3형제와 TBS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고키는 앞서 말한대로 복싱가문인 가메다家의 장남으로, 차남 다이키는 물론 막내 토모키까지 복서로 활동하고 있다. 프로테스트조차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생계가 어려워 프로복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 가메다 시로의 엄격한 훈련과 교육으로 유명한 3형제다. 아버지 시로는 세 아들의 권투교육 문제로 갈등을 겪던 아내와 이혼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재능 있는 꿈나무 복서 3형제와 이같은 가정사의 결합은 일본인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TBS가 키운 스타로, 고키가 중학시절부터 이들을 발굴하고 어렸을 때부터 취재해 방송하곤 했다. 이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으로 콘텐츠로 승화시켰고, 스타로 키워왔다.
이를 통해 TBS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로 꼽히는 복싱의 인기를 부활시켰고, 가메다 형제의 경기를 독점 중계하면서 가장 확실한 흥행카드를 거머쥐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메다 형제 경기의 시청률은 늘 20% 이상을 기록해 오고 있다. 이번 타이틀매치 시청률 결과에 대해 한 시청자는 “가메다 형제는 역시 TBS의 영원한 흥행카드”라고 평하기도 했다. ‘가메다 3형제’라는 명칭은 상표로 등록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특정 권투선수로서 상표등록은 처음이다.

TBS가 발굴하고 키운 복싱가문 가메다家
가메다 형제는 아버지의 독특한 훈련법이 소개되면서 화제가 돼왔다. 빗자루나 대걸레 자루 끝에 글로브를 끼워 찌르면 이를 피하는 ‘세계의 잽(世界のジャブ)’, 모래주머니를 양팔에 달고 어퍼컷을 연습하는 ‘모래주머니 어퍼(砂袋アッパー)’ 다다미(일본식 주택에서 짚으로 만든 판에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돗자리를 붙인, 방바닥에 까는 재료)를 샌드백 대신 사용하는 ‘다다미 미트(畳ミット)’, 통나무를 고속으로 톱질하면서 근육을 강화하는 ‘통나무 스쿠웟(丸太スクワット)’, 빠르게 던지는 탁구공을 피하는 ‘탁구공 피하기(ピンポン玉よけ)’ 등이 그것이다.
오사카 출신의 가메다 형제 중 장남인 고키는 오사카를 부르는 별칭인 나니와의 투권(싸움주먹, 일본어 발음으로는 투견과도 같다)으로 불릴 정도로 호쾌한 경기 스타일과 직선적이고 거만한 말투, 튀는 성격 등의 개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당돌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개성과 천재적인 재능으로 프로 데뷔 이전부터 ‘미래의 챔피언’으로 불리며 미디어는 물론 복싱 팬들의 관심을 독점하기도 했다.
2006년 8월2일, 고키는 WBA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전에서 1회에 다운을 당하고도 판정승으로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면서 일본 열도를 들끓게 했다. 이 경기의 평균시청률은 42.4%, 순간 최고시청률은 52.9%에 이른다. 고키의 극적인 승리는 한물 간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스포츠인 복싱의 인기를 재건했고, ‘강한 일본’을 꿈꾸던 일본인들에게 대리만족을 끌어내기도 했다. 고키는 일본의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인 '2CH'에서는 ‘가메다 고키의 여자친구가 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방이 개설됐고 고키의 이름을 단 미즈노 복싱화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둘째 가메다 다이키는 엄청난 독설가다. 경기 상대가 “나는 왕따였다”고 하면 “나는 따돌리는 아이였다”고 일갈하고 15세 연상의 챔피언을 ‘고키부리(바퀴벌레)’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승리의 세리모니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2년 전, 나이토에 지고도 레슬링을 방불케하는 반칙으로 1년 동안 출전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막내 가메다 도모키는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다 프로 전향을 위해 준비중에 있다고 알려진다.

미디어와 콘텐츠의 시너지
물론, 부작용도 있다. TBS의 가메다 3형제 키우기로 3형제의 권투 실력이 거품이라는 비난도 터져 나오고 있다. 다이스케가 지고도 반칙을 행하던 때도, 고키가 석연치 않은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을 때도 TBS는 가메다 형제의 영웅만들기에 몰두하며 엄청난 항의 전화와 게시물 폭주에 시달려야 했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선수의 재능을 덮거나 과장시킬 수 있는 위험도 없지 않다. 하지만 괴짜악동 가메다 형제는 자신들의 재능을 살려 승리를 일궈내고 있고, 일본인들 역시 이들에 열광하고 있다. TBS는 가메다 형제를 발굴하고, 이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으로 콘텐츠로 승화시켰고, 공들여 스타로 키워왔다. 이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서 훈련을 하던 가메다 형제는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을 보장받았고,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로 등극했다.
TBS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로 꼽히는 복싱의 인기 재건에 성공했고, 가메다 형제의 경기를 독점 중계하면서 가장 확실한 흥행카드를 거머쥐기도 했다. 일본에는 아침에 눈을 뜨니 스타가 돼 있더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일본에서 깜짝 스타나 어느날 갑자기 ‘한방’으로 이름을 날리기란 쉽지 않다.
아이돌의 명가 자니스가 1990년대 초반에 발굴해 키우고 데뷔시킨 기무라 다쿠야·쿠사나기 츠요시·카토리 싱고·나카이 마사히로·이나가키 고로의 스마프가 그렇고, 마츠모토 준·오노 사토시·사쿠라이 쇼·아이바 마사키·니노미야 카즈나리의 아라시가 그렇고, 사카모토 마사유키·나가노 히로시·이노하라 요시히코·모리타 고·미야케 켄·오카다 준이치의 V6가 그렇다.
단숨에 스타를 만들기 보다는 두고두고 재능을 발굴하고 훈련시키면서, 시청자나 팬들 역시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10년을 넘게 ‘한물가는’ 일 없이 꾸준히 활동하며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과 일본 특유의 스토리 만들기가 곁들여지면서 롱런하는 스타와 이들을 통한 콘텐츠가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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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론의 자화상, <무한도전> 뉴욕 파문

언제나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획일화된 절차를 따르며 콘텐츠와 여론을 생성하는 것이 인터넷이다. 다양한 개인 공간이 늘고, 커뮤니티가 활성화하면서 그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네티즌 분란 부추기는 한국 언론
개인공간이든, 게시판이든 어떤 사건에 대한 논란이 될 만한 글이나 말이 게재되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다. 비판을 받기도, 옹호를 받기도 하지만 전자의 경우가 파급력은 훨씬 크다. 이에 신이 난 언론들은 앞 다투어 현상을 과장해서, 기자 자신도 흥분한 상태에서 기사화한다. 그리고 또다시 비난 여론이 들끊고 사과문이든 반박문이든이 또다시 게재된다. 네티즌은 또다시 갑론을박을 시작하고 또다시 언론이 기사화한다.
이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네티즌은 끝없이 흥분하고, 언론은 ‘의제 제시’나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분석 및 비판’ 등은 결여되고 사건에 부채질을 하는 기사들을 양산한다. 한국 언론 중 네티즌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근거가 확실한 논리로 문제점과 개선점을 제시하는 언론은 한 곳도 없다.
촛불집회 때 보수·진보 성향의 주요일간지들이 그랬다. 진실과 현상을 정확하게 보도하고, 그에 대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논제를 제시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보수·진보로 나뉘어 아귀다툼에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방송법 개정’과 KBS․YTN·MBC 민영화 사태 때도 각 사별 이해관계만 있을 뿐, 근거가 명확한 주장과 논리적인 의제를 제시하는 언론은 어디에도 없었다.
2PM의 리더 재범이 인터넷의 개인적인 공간에, 철 모르던 시절 끄적인 한국과 한국 팬에 대한 발언이 문제가 돼 4일만에 팀을 탈퇴하고 시애틀행 비행기에 오를 때도 그랬다. 그 이후로 분위기가 급전환되며 애초부터 잘못은 없었던 듯 재범 옹호론이 창궐했다.
신장 180cm 이하의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을 한 홍익대 이모씨의 사건이나 mnet의 MAMA(Mnet Asian Music Award)에서 선보인 닉쿤과의 퍼포먼스로 2PM 팬들에게 시달리다 미니홈피를 폐쇄한 아이비 사건 역시 그랬다. 이를 한국인 특유의 ‘냄비근성’ 혹은 ‘쏠림’ 현상으로만 치부하기엔 우리 언론의 자화상이 참으로 서글프다.
이같은 사건이 또 한번 발생했다. 지난 11월21일, <무한도전>이 식신 특집의 연장선상에서 뉴욕을 방문해 한국음식을 알리는 미션에 도전하는 모습을 방송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뉴요커들 사이에서 영어 한마디 제대로 하기 힘든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비는 추적거리고 인사 한마디 건네기도 쉽지 않았고, 피자집에서는 뉴욕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피자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해 점원이 던져주는 피자를 목메게 씹어야 했다.
파트너가 돼 한국과 한국음식에 대한 인지도나 의견을 듣기 위해 뉴욕 거리를 헤매던 유재석과 정준하는 마침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뉴욕의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유재석은 한국말 ‘허리’와 영어 ‘Hurry'의 발음이 같은 것을 이용해 ‘Hurry Up'이라는 유머와 메뚜기 춤을 선보였다. MC는 물론 카메라 감독까지 흥에 겨워 무대로 뛰어들어 춤을 추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화가 어려운 사람들, <무한도전> 뉴욕 파문
사실 이 같은 풍경은 낯익다. <무한도전> 멤버가 도쿄의 오다이바에서, 하라주쿠에서 자신들을 알아보는 일본인을 찾기 위해 처절하게 메뚜기 춤과 쪼쪼댄스, 저질춤 등을 춘 바 있다. 베이징 올림픽 특집에서도 각국에서 방문한 관광객을 만나 한국을 알리고, <무한도전>을 알리기 위해 길거리를 헤맸고, 되지도 않는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 등을 섞어 가며 한국 알리기에 애쓴 바 있다.
그런데 유독 뉴욕에서의 에피소드는 후유증이 크다. 에픽하이 타블로의 형이자 EBS의 영어 프로그램 진행자인 영어 강사 이선민 씨가 올린 의견이 발단이었다. 영어도 못해 ‘개무시’ 당하고 피자집 점원이 던져주는 피자나 먹고, 백인이 하는 하찮은 방송에서 춤을 춰대는 MC들이 낯 뜨겁고 쪽팔리고 굴욕적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전문 중 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저 쓰레기를 기획한 MBC 놈들이나, 저 쪽팔린 추태를 통해 마치 우리의 “자랑스러운 개그”를 뉴욕에, 아니 온세계에 알려 무슨 국위선양이라도 한듯 떠들어대는 기생충 같은 기자들이나, 어차피 저런 저질개그에 깔깔대는 국민들과 합작으로 만들어낸 기막힌 에피소드였다“고 썼다.
<무한도전>의 팬들 중 일부는 뉴욕 에피소드를 매우 즐겁게 지켜봤을 테고 다른 일부는 매우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봤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1인자, 2인자로 불리는 MC들이 뉴요커들에게 이상한 취급을 당하는 모습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수 있다. ‘쪽이 팔리다’거나 ‘굴욕스럽다’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같은 결과물을 보고도 누구는 재미있었다고 하고, 누구는 낯 뜨겁게 느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판단하자면 길거리에서, 음식점에서 영어로 주문도 제대로 못하고 버벅대는 건 사실 창피할 일은 아니다. 방송을 제대로 봤다면 유재석이 뉴요커와 인터뷰를 하면서 “영어를 잘 못해 미안하다”고 하자 “괜찮다. 나도 한국말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피자집 종업원처럼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에게 피자를 집어던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괜찮던 콘셉트가 뉴욕에서만 유독 영어를 못하고 그의 표현대로 ‘질 낮은 개그’ ‘또라이 짓’이 될 까닭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뉴욕처럼 한국이나 한국음식을 알리는 것이 목표도 아닌 ‘무한도전’의 인지도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씨의 글이 이해 안가는 건 아니다. 너무 흥분한 티가 역력해서 그렇지 어떤 마음인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Fucking' '병신취급’ ‘또라이 짓’ ‘쓰레기’ ‘쪽팔린 추태’ ‘기생충같은 기자’ 등의 비속어를 섞어가며 마음껏 비아냥거린 이 글이 넷상에서 일파만파 퍼져나가면서 사건이 확대됐다. 즐겁게 지켜본 이들은 물론 같은 느낌을 받았던 이들까지 이씨의 미니홈피에 욕과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같은 전쟁(?)을 부추긴 것은 역시 언론들이었다. 현상의 본질을 보려하기 보다는 일어나는 일에 과장을 보탠 기사를 마구 양산했고, <무한도전> 제작진의 멘트도 전했다. 이처럼 ‘일이 커지는 수순’은 비단 <무한도전>만의 일이 아니다. 예상대로 미니홈피는 폐쇄됐고 이씨 글에 대해 힙합가수 데프콘이 쓴 반박문과 네티즌들의 비난에 대한 본인의 반박문도 올라왔다. 또다시 이에 대한 기사들이 난무했다.

의견을 제시하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자
KBS2 <개그콘서트>에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왜 생겼는지 십분 이해가 가능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대화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그 중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의견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해명이든 설득이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교류이고 경청이고 존중인 것이다.
욕설과 비속어를 섞어 가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이씨는 분명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법,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글쓰기를 다시 배워야할 것이다. 또한 그의 글은 영어도 못하고 피자집 종업원에게조차 무시당하면서도 한국음식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아쉽다는 건지 편견과 무시 속에 살아온 자신의 속내를 하소연하고자하는 것인지, 심중을 알 수 없다.
이같은 의견에 대응하는 네티즌들 역시 대화법과 의견 제시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적인 비난과 욕설보다는 논리적인 반박과 비판이 필요한 것이다. 이 같은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마구잡이식으로 사건을 보도하고 부풀리는 언론에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에 사실 의견을 제시하고 대화하는 법에 대한 교육이 누구보다 시급하고 절실한 것은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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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 것이 너무 많은 ‘루저’들의 안식처 <심야식당>

난데없는 ‘루저’ 논란이 지난 한 주간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조금씩은 모자라고 밑바닥 삶을 살고 있는, 소위 명확한 잣대를 그어놓고 물리적인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들에게는 루저가 틀림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10월14일부터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12시30분께쯤 시작해 20여분 동안 방송되는 심야 드라마 <심야식당>이 그 주인공이다.
아베 야로의 동명 만화를 드라마화한 <심야식당>은 신주쿠 골든거리의 좁은 골목에 자리한 그냥 ‘밥집(めし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간다.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운영하는 이 식당에는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세로 흉터가 인상적인 마스터(고바야시 카오루)가 있다. 메뉴판에는 돈지루(돼지고기와 야채를 넣어 끓인 된장국의 일종) 정식과 맥주, 일본 술, 소주뿐이다. 그럼에도 꽤 많은 손님이 이 식당을 찾는 이유는 재료만 있으면 손님이 요구하는 음식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과연 그 이유가 전부일까?


마음의 위로, 기댈 어깨가 필요한 그들에게
누구나 혼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지친 어깨를 기댈 수 있는 공간을 꿈꿀 것이다. 바쁘고 고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밥집’이라 쓰인 등 하나 달린 소박한 이 식당을 즐겨 찾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신주쿠 ‘뉴 아트’의 간판 스트리퍼 마리린, 잘 반하고 잘 채이기도 하는 이 아가씨는 새로 반한 남자인 솜씨 좋은 카지노 딜러의 취향에 따라 미디엄 레어의 타라코(명란젓)를 주문한다. 늘 달걀말이를 주문하는 게이바 운영자 코스즈와 엄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비엔나 소지지 볶음을 시키는 이마시로회 오니시마조 간부 켄자키 류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 안팔리는, 솔직히 얘기하지만 부를 노래가 없어 노래방 가서 아침까지 노래를 부르다 심야식당을 찾는 엔카 가수 치도리 미유키는 따뜻한 밥에 가쓰오부시를 얹어 간장을 뿌린 고양이밥을 좋아한다.
무라사키노우에 라는 게이바에서 근무하는 트랜스젠더 준은 낫토를 너무 좋아해 애인 요시다와 종종 식당을 찾아 과감한 애정행각도 서슴지 않는다. 오차즈케(차에 밥을 말아 먹는 일본 요리) 고명으로 항상 타라코와 연어와 매실을 얹어먹는 루미·카나·미키는 각각 타라코녀·연어녀·매실녀로 불리는 오차즈케 시스터즈다. 영화 속 사랑을 꿈꾸는 순애보 시스터즈다. 잘 나갈 때는 400편 이상의 AV도 찍었다는 전설적인 카리스마 AV배우 오키, 그리고 그를 졸라 제자가 된 타나카 유이치는 언제나 감자샐러드와 특제 스테미너 정식을 먹곤 한다.
말마다 ‘파리’와 ‘캐비어’ ‘와인’ ‘샴페인’ 등을 언급하는 느끼한 말투과 웃음, 와인에 질려 일본에서 마시는 맥주는 괜찮다고 허세를 부리는 요리 평론가 토야마 마사오와 멸종 직전의 유랑 악사 고로는 버터라이스를 먹는다. 뜨거운 밥에 버터를 얹어 30초쯤 뜸을 들이다 간장을 살짝 가미해 섞어 먹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를 본 다른 손님들도 앞 다투어 버터라이스를 주문하곤 한다. 무명 권투선수 가츠는 시합에서 이기는 날이면 가츠동(돈가스 덮밥)을 시킨다. ‘가츠’는 ‘이기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가츠동을 먹다 만난 아케미와 그의 딸 마유는 연락처도 교환하고 경기 응원도 하고 식사도 함께하는 사이가 된다.

시청률 꼴찌, <심야식당>이 부러운 이유
시청률로 따지자면 늘 꼴찌다. 11월11일 방송분도 시청률 2.4%로, 지난 회차(1.5%)를 제외하고는 그 수치를 소폭으로 오르내리는 정도다. 심야 시간대임을 감안한다 해도 흥행성적은 그리 좋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부러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첫 번째가 흥행이나 시청률에 상관없이 잔잔하게 소박한 일상을 그리는 드라마‘도’ 볼 수 있는 일본의 방송 시스템이다. 드라마‘를’이 아니라 드라마‘도’임을 명심하자. 시청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고 다양하다는 의미다. 하물며 TBS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공영방송사도 아닌 민영방송사다.
게다가 <심야식당>의 제작진이며 배우들이 심하게 쟁쟁하다. 영화 <도쿄타워>로 2007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던 마츠오카 죠지, 영화 <린다 린다 린다>의 야마시타 노부히로, 2분기 드라마 <퀴즈쇼>의 오이카와 타쿠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도쿄타워>의 고바야시 카오루가 타이틀롤을 맡았다. 심야 드라마, 흥행 성적이 썩 좋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한 드라마임에도 심혈을 기울인 테가 역력하다. 하물며 1회 중후반부에 모습을 드러내 2회에서 사라졌다 6회에 또다시 잠깐 얼굴을 비친 배우 오다기리 죠의 등장은 “닮은 사람인가”를 착각할 정도다. 최근 유행어처럼 “한국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방송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의 바로미터인 시청률이 낮으면 조기 조영을 하기도 하고, 높으면 16부작씩 연장을 하기도 하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시청률 지상주의는 재벌 상속남과 캔디녀, 혹은 재벌 상속녀와 집사, 복수와 불륜, 출생의 비밀 등 천편일률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고 갈수록 자극적이고 더 센 소재와 주제들을 갈망하게 한다. 제작비와 배우의 몸값은 치솟고, 흥행력을 갖춘 몇몇 드라마 작가와 스타로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같은 현실에서 참신하고 기발한 양질의 콘텐츠가 경쟁력이라고 외치면서도 제작비만 높고 시청률은 낮아 수익률이 떨어지는 단편 드라마를 과감하게 폐지시킬 수 있는 한국의 시청자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단편 드라마는 신진 작가 및 PD의 등용문인 동시에 시청자들에게는 새롭고 모험적인 드라마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이었다.
이처럼 참신하고 색다른 드라마와 작가, 제작진들을 개발하는 기능은 일본 방송사의 심야 드라마와 다르지 않다. 후지TV가 2007년 4월부터 토요일 심야 드라마로 편성했던, 속고 속이는 사기배틀 <라이어게임>이 폭발적인 인기와 마니아층 형성에 성공함으로써 2009년 4분기에 화요일 프라임타임대 연속 드라마로 편성된 것은 좋은 예다.
4분기 드라마 중 최고의 기대작으로 11월10일 첫 방송을 한 <라이어게임 시즌2>의 시청률은 12.4%, 영국인 영어강사를 살해하고 성형까지 하며 도망하던 이치하시 다쓰야가 검거된 날이었다. <라이어게임 시즌2>와 동시간대의 각 방송사 보도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최고 23.7%(NHK 수도권 뉴스)까지 치솟았다. TV아사히의 <보도스테이션> 22.0%, NHK의 <뉴스왓치 9> 20.4% 등 동시간대 보도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일본 주간 시청률 차트 1위인 NHK의 시대극 <천지인(21.7%)>를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니 12.4%라는 시청률은 ‘겨우’라기 보다는 ‘그럼에도’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좀 다른 드라마, 꼭 다음 회를 기다리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뿐 아니라 참신하고 색다른 드라마의 시청 가능성마저 빼앗겨 버린 한국의 드라마 시청자들로써는 부러울 따름이다.


정겨운 안식처가 돼주는 심야식당

<심야식당> 등장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요즘 기준으로는 ‘루저’에 가깝고, 그들이 주문하는 음식 역시 지나치게 소박하고 평범하다. 그들에겐 각자 사연이 있고, 밝혀진 이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도 있다. 일단 마스터와 오다기리 죠가 연기하는 손님은 정체를 알 수 없다. 게이바 주인 코스즈와 야쿠자 류는 각각 비엔나소시지 볶음과 달걀말이를 싫어하지만 서로를 존중하게 됐다. 고양이 밥을 즐겨먹던 엔카 가수 치도리는 마스터의 도움으로 작사가를 만나 스타가 됐지만 병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하지만 치도리는 죽기 한달 전 마스터에게 “행복했었다”는 말을 전하러 왔다. 타라코녀 루미, 연어녀 카나, 매실녀 미키는 남자와 맞선 때문에 싸움을 벌이는가 싶더니 오차즈케의 고명을 바꿔 먹는 것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며 의기투합한다.
AV배우로 돈도, 인기도 얻었지만 가족을 잃었던 오키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만나 참회하고 돌아왔다. 요리 평론가 토야마는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잃고 유랑 악사를 은퇴하게 되는 고로에게 옛 연인 리츠코의 남동생임을 고백한다. 누나가 고향에서 고로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과 함께. 결국 고향으로 돌아간 고로, 하지만 토야마는 여전히 버터라이스를 즐기러 식당을 찾곤 한다.
가츠동을 먹던 가츠는 잘 나가는 카와다 선수와의 시합에서 이겨 이케미에게 영화 <록키>처럼 프로포즈할 꿈을 꾸지만 지고 만다. 이케미와 마유의 위로를 받고 식당으로 온 가츠, 세 사람에게 마스터는 오야코동을 선물한다. 닭고기(오야=부모)와 계란(코=아이)으로 만든 덮밥으로 가족이 됐음을 축하한 것이다.
마스터의 독백으로 전달되는 단골손님들의 사연은 맛깔스런 요리와 버무려지며 정겨운 안식처를 제공한다. “좀 더 단순해도 된다. 밥과 찻물을 붓고 고명만 얹으면 되는 오차즈케처럼. 맛있는 건 맛있는 거다”라는 마스터의 독백처럼 깔끔하고 담백하게, 복잡하게 꼬거나 비틀지 않고 단순·명확하게 소소한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거나 위안 받고, 축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요리를 통해 세심한 심리묘사와 소시민들의 인생에 따스한 시선을 보내고, 그들에게 삶의 방향과 고민에 대한 조언을 제시하곤 한다. 무심한 듯한 마스터는 비 맞은 손님에게 수건을 건네고, 실연의 상처도, 어머니에 대한 애끓는 심정도 쓰다듬어주며 쓸쓸하고 삶에 지친 이들의 기댈 어깨가 돼주곤 한다.
극이 끝난 후, 다음 회 예고 전에 열심히 요리를 만드는 마스터 근처에서 단골손님들이 전하는 그날의 소재가 된 요리에 대한 원 포인트 어드바이스는 꽤 실용적이다. 계란말이를 터뜨리지 않고 마는 법, 고양이밥의 비결은 가쓰오부시의 신선도에 달렸다는 사실, 가정용 버터에는 소금이 들어가 있으니 간장을 조금만 뿌려야 버터의 풍미를 해치치 않는다거나 김을 싸먹거나 향신료 치는 것도 맛있다는 비법, 밥이 물어버리니 차나 국물은 먹기 전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 가츠동의 고기는 마지막에 또 익히기 때문에 튀길 때는 80%만 익혀야 한다는 등 맛의 비결을 소개한다. 그리곤 그 회의 이야기에 맞게 ‘잘자라’는 인사를 한다.
기분 좋은 덤처럼 따라붙은 어쿠스틱 기타와 아마추어적인 창법으로 부르는 주제가 그리고 도쿄 곳곳의 도시풍경은 이야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오죽하면 극 마지막에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라는 자막이 뜰까. 이 드라마의 매력은 출연자, 식당을 찾는 이들이 끊임없이 되뇌인다. “정겨운 맛이 난다”고. 그리고 “이 가게는 알려주고 싶지 않아. 손님 늘면 내가 못 들어오잖아”라고. 바쁘게 휘몰아치고 지치기만 하는 일상, 누구나 그런 공간은 필요하지 않던가. 그런 측면에서 <심야식당> 등장인물들은 참으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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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김민정 하차 유감, 그녀는 왜?

참으로 조용할 날이 없는 연예계다. 대한민국에 드라마라는 장르가 선을 보이고, 인기를 얻는 동안, 유사 이래 이런 사건이 있었던가. MBC 수목드라마 <히어로>의 여주인공 김민정이 첫 방송 10일 전에 하차를 발표했다. 김민정 측에서 밝힌 이유는 <2009 외인구단> 촬영 당시 입었던 부상을 방치해 석회화건염(뼈에서 석회질이 새어나와 근육과 인대가 손상되는 질병)이 악화됐다는 것이었다.
“오른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느니 “고통으로 심신이 지쳐 있다”고 아무리 우는 소리를 해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인 건 분명하다. 결국 MBC는 부랴부랴 윤소이를 긴급투입하고 2부작 가족 드라마 <우리들의 해피엔딩>을 편성해 첫 방송을 일주일 미뤄둔 상태다.

문제가 무엇이건…
이미 제작발표회도, 포스터 촬영도, 홍보 인터뷰도 마친 상태다. 하지만 여주인공 김민정은 3주 전부터 촬영 현장에도, 성공 기원 고사에도, 제작발표회에도 참가하지 않아 암암리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같은 조짐은 현실이 돼 급기야 김민정은 방송을 일주일 앞두고 하차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3주 전부터 무통보로 촬영에 불참하면서 여주인공의 촬영분량이 거의 안된 상태인데다, 제작비의 적지 않은 부분을 고스란히 날려야 했다. ‘카더라’ 통신처럼 분량의 문제였다면, 남자 주인공 원톱의 시놉시스 단계에서 거절했어야 했다. 연기자와 기획사, 기획사와 제작사, 연기자와 연기자 간의 알력다툼은 언제나 있어왔다. 하지만 이처럼 짧은 시일을 남겨두고 하차를 한 경우는 흔한 일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길 일도 아니다.
함께 극을 이끌어 가야했던 이준기·엄기준 등 동료 연기자는 그렇다 치자. 첫회부터 소위 ‘생방크리(준비 기간없이 생방송으로 촬영되는 현상)’를 덮어써야하는 윤소이도 ‘자신에게 온 또 다른 기회’로 십분 이해하고 넘어간다고 치자. 김민정에서 한지민, 한지민에서 다시 김민정으로 역할이 넘어가면서 대본을 고치고 또 고친 작가도 어떻게 넘어가 보자. 돈으로, 혹은 수익으로 연관된 제작사·방송사도 일정 정도의 책임을 져야하니 그냥 넘어간다고 치자.
하지만 연출·촬영·조명·분장 등 드라마에 붙어있는 100명이 넘는 이들을 아연실색케 한 책임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히어로>의 시작만을 기다리며 방송을 손꼽아 기다리던 예비시청자들이다. 그들은 권리를 누리기도 전에 저지당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좋게 보고,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되는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100여 명의 스태프, 예비 시청자들을 잊은 멍에
이 모든 문제가 ‘김민정’이라는 한 연기자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분량의 문제든, 소속사와의 갈등이든, 진짜 부상으로 인한 결정이든, 김민정도 할 만큼 했다는 건 말 그대로 김민정과 그 소속사의 사정일 뿐이다.
현장에는 그녀가 촬영에 참여하기만을 목 빼고 기다리는 100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있었고, 안방에는 <히어로>의 방송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예비 시청자들이 있다는, 절대 잊어서는 안된 사실을 잊는 오류를 범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김민정이 지고 가야할 책임이자 멍에가 될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드라마 제작의 전반적인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되는 게 아닐까 싶다. 작가 한 사람, 혹은 배우 한 사람에 의해 극의 진행, 혹은 성공여부가 결정되는 제작 시스템은 어딜 가나, 어느 상황에서든 발목을 붙드는 요인이 되곤 한다.
이같은 시스템의 변혁이 아니라면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작가·연기자·방송사 등으로 인해 여전히 약자로 머물고 있는 수많은 현장 스태프들, 시청자들은 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콘텐츠 소비행태가 바뀌었으니’라는 것은 아직 ‘이유’라기 보다는 ‘핑계’가 될 수밖에 없다. 소비행태가 바뀌었을 뿐이지 제작 자체를 무산시키거나 방송편성을 철회할 힘은 여전히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소비행태가 제대로 반영된 제작 시스템이 아니라면, 그 시스템 속에서 최약자에 위치하고 있는 수많은 현장 스태프들과 시청자들을 잊은 현재의 사태는 온전히 영향력을 지닌 이들의 멍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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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박스의 귀환 <강심장>, 대박이거나 쪽박이거나?

지난 10월6일, 유재석과 더불어 ‘국민MC'로 군림하고 있는 강호동과 현재 최고의 아이콘 이승기가 메인 MC로 나선 SBS <강심장>이 시작했다. 특정 테마에 맞는 토크 대결을 벌이고, 최후의 1인을 뽑아 ’강심장‘으로 선출하는 형식으로 꽤 오래 전에 큰 인기를 누린 ‘토크박스’의 귀환처럼 보이기도 한다. SBS <야심만만>과 KBS2 <스타골든벨>, MBC의 <세바퀴> 등 어디서 본 듯한 요소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월요일 심야 시간대를 책임지던 <야심만만>이 없어지면서 <긴급출동 SOS 24>와 자리를 바꿔 화요일 밤으로 시간대를 옮겼다.

하수상한 토크 주제들
4회까지 ‘대박이거나 쪽박이거나’ ‘숨기거나 밝히거나’ ‘주연이거나 조연이거나’ ‘튀거나 묻히거나’ 등의 주제로 토크 배틀을 벌였다. 첫 회부터 <강심장>에 출격한 스타 게스트들이 심상치 않다.
방송, 특히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흔하지 않았던 빅뱅의 지드래곤, 승리를 비롯해 소녀시대 윤아, 장윤정, 에픽하이, 김태우, 브라이언 등 20여 명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이후에도 2ne1, 카라, 인순이, 슈퍼주니어, 환희, 브라이언, 임창정 등 대형 스타급 게스트가 스튜디오를 찾았다. 90분 특별편성으로 16.6%의 시청률로 시작한 <강심장>은 회를 거듭할수록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사생활 폭로와 막말방송 등으로 얼룩지고 있다.
주제부터 심상치 않다. 대박, 쪽박, 숨기고 밝히고, 튀고 묻히는 등 매주 주제를 구성하는 단어는 ‘폭로’의 기운이 역력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4회까지 오면서 토크 주제와는 상관없이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폭로’전으로 일관한다는 데 있다. 주제는 있되, 있으나 마나 결국 보다 강력한 폭로로 경쟁이 심화되기만 한다. 21~24명에 이르는 게스트가 출연하다보니 눈길을 끌기 위해 혹은 말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보다 독하고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끌어내야하기 때문이다. 방송은 되지 않았지만 첫회 녹화현장에서 빅뱅의 멤버인 지드래곤과 승리 사이에 미묘하게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었다고 암암리에 알려지고 있다. 폭로와 유머 간 균열이 심화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조두순 사건으로 사회가 시끄러운 가운데 <강심장>에 출연한 2ne1의 막내 공민지는 ‘아기 공룡 둘리’ ‘새타령’ 등 만화주제가, 동요, 민요 등에 맞춰 에로틱한 춤을 선보였고, 급기야는 브라이언, 이승기까지 나서 커플로 에로춤을 춰대는 장면이 방송됐다. 공민지의 나이는 이제 열여섯, 모든 것을 ‘에로’로 소화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나이다. 게다가 4회에 출연한 카라의 박규리는 어렸을 때 강호동에게 억지로 첫키스를 빼앗겼다고 폭로했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유아 성폭력은 웃음이나 유머의 소재가 될 만큼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귀엽다고 아이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는 사실을 그저 “장난처럼” “예뻐서”라는 말로 쉽게 표현하고 넘기는 것은 영유아에 대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즐겁고 유쾌하게 웃어보자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어린이 성폭력 문제로 사회적 분위기가 심각한 때에 이같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고 웃어넘긴다는 것은 진정한 ‘강심장’같은 짓이 아닌가 싶다.

러브라인 형성하기 바쁜 강심장
1회는 지드래곤의 공연에 반 이상을 할애하더니 2회는 2ne1의 노래와 춤, 랩 등을 선보이는 스페셜 스테이지에 방송시간의 절반을 흘려보냈다. 오죽하면 시청자들이 ‘YG 쇼’라고 명명할 정도였다. 3회에는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일명 ‘시건방’춤을 추느라 시간을 소비하더니 4회에는 윤아의 CF 시범으로 프로그램의 반 이상을 채웠다.
물론, 가요계 대선배인 인순이와 ‘친구여’라는 노래에 맞춰 2ne1의 래퍼 씨엘이 즉석 선후배 듀엣 무대, 오해로 인해 이미 해체된 ‘플라이 투 더 스카이’가 화해 기념으로 함께 무대를 꾸미는 등 뜻 깊은 공연도 있다. 하지만 한 팀 혹은 특정 기획사 소속의 연예인에만 관심과 토크가 집중되는 덕에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병풍’같은 게스트도 있다. 하물며 오프닝 소개에서조차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머지 절반은 이승기와 회당 출연한 게스트인 윤아, 현영 등과 러브라인을 엮느라 보낸다. 문제는 어느 특정 한 회 뿐 아니라 지금까지 방송한 대부분의 방송이 그렇다는 것이다. 급기야 4회에서는 윤아를 두고 이승기, 슈퍼주니어 이특, 브라이언 등이 4각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러브 라인 만들기에 몰두하거나 이승기 띄우기에 애를 쓴다.
이 정도면 매회 이승기 특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1회성 특집 프로그램으로는 적합할지 모르나 연속성이 보장돼야할 정규 프로그램으로는 금세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강심장>은 강호동 특유 매력인 넘치는 에너지로 휘몰아치는 입심도, 진행 스타일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중심을 잡아주는 MC의 프로그램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토크의 재미도 극대화되지 못하고, 산만하게 자신들끼리 웃고 떠드는 것처럼 여겨진다.
젊은 버전의 <세바퀴> 같기도 한 <강심장>은 16.6%의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15.1%, 16.2%로 오르락내리락하더니 4회에는 14.5%까지 하락하기에 이른다. 수치로만 따지만 쪽박은 아니다. 오히려 ‘대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이 정도의 시청률이 나오는 이유는 거대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멤버들로 구성된 게스트단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쪽박이거나 대박이거나?
어딘가에서 본 듯한 포맷 그리고 프로그램의 성패를 전부 유명 게스트에 걸다시피하는 방식으로는 말 그대로, <강심장>의 첫 회 토크주제였던 ‘대박이거나’ 혹은 ‘쪽박이거나’가 될 터다. 게스트와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하기보다 ‘폭로’와 ‘막말’을 일삼는다면 시청자의 진정한 사랑을 받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강심장>은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게스트를 끌어 모으고 그들의 입에서 보다 강력하고 자극적인 ‘비밀’을 끌어내는 데만 급급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대로 간다면 그 대단한 MC 강호동, 게다가 이 시대 최고의 ‘엄친아’ 이승기를 주MC로 영입했어도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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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기 일본드라마, 히트작의 새 시즌과 선 굵은 대작 러시

침체기의 일본드라마가 희망을 걸고 있는 4분기 드라마가 베일을 벗었다. 4분기 드라마 기대치를 반영하는 오리콘 드라마 차트 상위는 <라이어 게임> <도쿄 DOGS> <불모지대> 등 대작들이 차지했다. 트렌디 드라마 일색이던 이전과는 달리 4분기에는 아기자기한 연애물보다는 선 굵은 대작들이 대거 기획돼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 이같은 차트의 결과가 실제 시청률에 얼마나 부합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한동안 부진을 면치 못하던 전통적인 일본 드라마 황금시간대인 후지TV의 월요일 9시 ‘게츠쿠’가 전환점을 모색한 듯하다. 후지TV는 나카이 마사히로, 야마시타 토모히사 등 꽃미남을 앞세운 코믹 멜로물로 승부를 걸던 게츠쿠에 거친 남성들의 세계를 그린 형사물 <도쿄 DOGS 최악이자 최고의 파트너(이하 도쿄 DOGS)>를 편성한 것이다. ‘새로운 게추쿠’라는 평까지 듣고 있는 후지TV의 이같은 모험이 게츠쿠의 부활을 이끌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4분기 일본드라마의 또다른 특징은 실력있는 여배우들의 활약이다. 나카마 유키에(언터처블), 미즈키 아리사(독신), 요네쿠라 료코(교섭인), 카리나·쿠로키 히토미(리얼 클로즈), 후지와라 노리코(기네 산부인과의 여자들, 이상 가나다 순) 등 여배우 단독 타이틀롤 작품은 물론 <마이걸>의 유카, <진 仁>의 나카타니 미키, 아야세 하루카 등 연기파 여자 연기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이하 소개하는 순서는 첫 방영일 기준).

마이걸(TV아사히, 금요일 23시15분, 10월9일 첫방송)
<마이걸>은 6년 전, 4년 연상의 연인 츠카모토 요코(유카 분)에게 영문도 모른 채 이별을 통보받은 후, 그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남자 카사마 무사무네(아이바 마사키 분)의 이야기다. 그런 그가 요코의 사망과 코하루(이시이 모모카 분)라는 5살짜리 딸의 존재를 알게 된다.
가족으로, 아버지로 감정을 교류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의 타이틀롤은 <꽃보다 남자>의 마츠모토 준이 속한 보이그룹 아라시의 아이바 마사키가 맡았다. <아라시의 숙제군>에서 엉뚱발랄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아미바 마사키의 첫 주연작이다. 첫 주연작에서 아버지 캐릭터를 연기하는 아이바 마사키와 과거 회상으로만 출연하는 유카에 대한 기대감이 벌써부터 높다. 문제는 너무 뛰어난 원작 팬의 우려와 지나친 신파, 뻔한 스토리 전개 그리고 예측 가능한 결말이다.


진 仁(TBS, 일요일 21시, 10월11일 첫방송)
<진 仁>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의학드라마다. 머리에 부상을 입은 남자를 수술한 뇌의학자 진은 그 남자의 뇌에서 기형태아를 발견하고 138년 전으로 가는 타임머신에 오른다. 동명 만화 원작으로 오오사와 타카오가 8년만에 연속드라마 타이틀롤을 맡은 화제작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비현적인 내용이면서도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가 묘하게 어우러지고, 피가 튀는 잔인함이 존재하지만 감동의 눈물이 있다는 아이러니가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8년만에 연속드라마 주연에 나선 오오사와 타카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나카타니 미키, <후타루의 빛> <백야행>의 아야세 하루카 등 초호화 캐스팅, 히트작 <루키즈>의 감독의 프로듀스 등 제작진의 히든카드는 주효한 듯하다. 각 방송사마다 스페셜 프로그램들을 무차별 편성하는 가운데 <진 仁>의 첫 방송은 16.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10위에 올랐다.

리얼 클로즈(후지TV, 화요일 22시, 10월13일 첫방송)
스페셜 드라마로 방송했다가 반응이 좋아 연속드라마로 편성된 작품이다. 백화점 이불매장에서 근무하던 키누에(카리나 분)가 단지 ‘실적이 좋다’는 이유로 여성복 매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던 키누에 앞에 백화점에서 사활을 걸고 파리 유명 백화점에서 스카우트한 카리스마 넘치는 엘리트 진보 부장(쿠로키 히토미 분)이 나타나면서 생기는 좌충우돌 성장기다. 엄격한 훈련과 지도로 패션 전문인으로 거듭나는 여성의 성장기를 그릴 <리얼 클로즈>가 조금은 비현실적이고 세련되지 못했던 한국의 <스타일>과 어떻게 다르게 진행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TV드라마 최초로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협찬을 받아 화제가 된 <리얼 클로즈>는 최신 패션 아이템을 엿볼 수 있어 여성 시청자들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할 것으로 보인다.

오토멘 가을(후지TV, 화요일 21시, 10월13일 첫방송)
3분기 토요일 밤 11시 넘어서 <오토멘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던 8편 짜리 드라마의 후속격이다. 4분기부터 후지TV가 토요 드라마 시간대를 폐지하면서 <사랑해 악마>가 하던 화요일 저녁 9시 황금시간대로 편성됐다. 오카다 마사키, 카호 주연의 <오토멘 가을>은 <허니와 클로버> <도쿄 타워>의 타니무라 마사키가 연출을 맡아 기대치를 상승시킨다.
‘오토멘’이란 한자로 ‘乙男’, 지극히 소녀다운 감수성과 취향을 지닌 소년을 이르는 신조어다. 검도부 주장이지만 오토맨인 마사무네 아스카(오카다 마사키 분)와 귀엽지만 털털하고 뛰어난 무예실력을 지닌 전학생 미야코즈카 료(카호 분)의 티격태격 러브스토리를 그린 청춘물이다.

기네 산부인과의 여자들(NTV, 수요일 22시, 10월14일 첫방송)
‘기네’는 산부인과 의사를 지칭하는 ‘Obstetrician&Gynecologist’의 줄임말이다. 산부인과 의사의 격감으로 인한 가혹한 노동시간과 열악한 환경, 그럼에도 생명을 구하고자 싸우는 열혈 산부인과 의사들의 이야기다. 실제로 잦은 사고와 소송, 인력난 등으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산부인과의 현실을 담은 문제작이다. 어려운 3분기 중에도 2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히트를 친 <구명병동 24>의 배경을 산부인과 병동으로 옮긴 느낌이다.
세이슈대학병원의 5년차 산부인과 의사 히아라기 나치(후지와라 노리카 분)는 생명을 구하는 것 외에는 흥미가 없는,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그 앞에 신입의사 타마키 사토시(카미지 유스케 분)가 등장하면서 일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최근 세기의 이혼으로 일본 열도를 들썩거리게 했던 후지와라 노리카 주연으로 카미지 유스케, 히구치 료코, 이타야 유카, 마츠시타 유키 등 막강 조연들이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파트너 시즌8(TV아사히, 수요일 21시, 10월14일 첫방송)
경시청의 좌천부서인 특명계 소속의 괴짜 천재 경관과 사람 좋은 순사부장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수사물이다. 경시청 최고의 두뇌를 가졌지만 출세를 거부하는 스기시타 우쿄(미즈타니 우타카)와 그의 파트너의 활약상을 그린다. 시즌8에서는 시즌7까지 최강 파트너였던 순사부장 가메야마(테라와키 야스후미) 대신 시즌7 마지막회에 등장했던 간베 타게루(오이카와 미츠히로)가 파트너로 출연한다.
이례적인 고속승진으로 경시에 올랐다가 강등당한 간베는 우쿄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상층부에서 보낸 밀사다. 약점을 잡기 위해 뒷조사에 나서지만 사사건건 우쿄에 휘말리게 된다. 지나치게 정의롭고 감정에 휘둘리는 가메야마와는 다른 성격의 간베가 상부의 은밀한 밀명을 떨치고 우쿄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즌7까지 꽤 높은 인기를 구가한 이 시리즈는 4분기 드라마 가운데 기대치가 꽤 높은 시리즈 중 하나다.

그 남자 부서장 시즌3(TV아사히, 목요일 20시, 10월15일 첫방송)
교토의 카와하라쵸 경찰서 부서장인 이케니가 키요미(후나코시 에이치로 분)는 하루 1천200건의 서류에 결재를 해야하는 부서장이지만 사건만 터지면 현장으로 나가고 싶어 손발이 근질거리는 타고난 형사다. 가족을 위해 사무직인 부서장을 택했지만 사고만 터지면 누구보다 다리도 빠르고 정보력도 뛰어난 열혈형사로 변신한다.
수사에 개입하면 규정위반이 돼버리는 부서장, 수사를 할 수 없는 입장에서 어떻게든 사건에 뛰어들려는 이케니가의 눈물겨운 노력이 재밌기도 하면서 짠하기도 하다. 수사물이지만 가족을 중시하는 한 아버지의 모습과 ‘수갑무용론’을 펼치며 자수를 촉구하는 형사의 인간미가 부각되는 드라마다.

불모지대(후지TV, 목요일 22시, 10월15일 첫방송)
후지TV가 개국 5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준비하는 블록버스터 시대물이다. <하얀거탑> <화려한 일족>의 원작자 야마자키 토요코의 동명 소설 <불모지대>를 원작으로 한다. 2003년 10월에 방송된 <하얀거탑> 이후 첫 6개월짜리 드라마다. 2차 세계대전 후 고도성장기에 전쟁에서 귀환한 전직군인이 세계시장을 상대로 활약하는 종합상사 기업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하얀거탑>에 이어 다시 한번 타이트롤을 맡은 가라사와 토시아키는 10월4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무겁지만 확실히 재밌다”며 시청률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가라사와 외에 와쿠이 에미, 아마미 유키, 코유키, 타케노우치 유타카 등 초호화 캐스팅도 볼거리다.

독신(おひとりさま, TBS, 금요일 22시, 10월16일 첫방송)
33살의 아키야마 사토미(미즈키 아리사 분)는 세이카 여고의 역사선생으로 모든 일을 혼자 해치운다고 해서 ‘독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누가 봐도 재색을 겸비한 완벽주의자인 그녀 앞에 국어 임시교사 칸자키 신이치(코이케 텟페이 분)가 나타난다. 젊고 잘생긴데다 상냥하고 배려심이 많은 초식남의 등장으로 학교는 들썩거리지만, 정작 그의 교육담당인 사토미는 10살이나 어린 이 남자와 친해지기조차 쉽지 않다.
나이는 물론, 성격, 가치관, 수입 등 어느 하나 격차가 심하지 않은 것이 없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4분기 드라마 중 얼마 안되는 로맨스라는 강점과 코유키·마츠모토 쥰의 <너는 펫>과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언터처블(TV아사히, 금요일 21시, 10월16일 첫방송)
<고쿠센> <트릭> 등의 헤로인 나카마 유키에의 신작으로 일류잡지 <국민저널>의 기자였지만 상사와의 불화로 해고당한 후, 3류 잡지 <주간 언터처블>에 입사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내막이 불쾌한 사건의 진실, 건드리기 힘든 기괴한 사건들을 파헤치기 위해 뛰어든 열혈 여기자의 활약상을 그린 코믹 미스터리물이다. <보이스>의 개성파 연기자 사토 토모히토가 상대역으로 등장해 힘을 더한다. 스토리도 흥미롭고 제작진들도 작품에 꽤나 심혈을 기울였다고 전해지고 있는 기대작이다.

사무라이 하이스쿨(NTV, 토요일 21시, 10월17일 첫방송)
사립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모치즈키 코타로(미우라 하루마 분)는 우연히 들린 역사도서관에서 한권의 고문서를 얻게 된다. 400년 전 전쟁에서 사나다 유키무라의 신하였던 무사가 기록한 책으로 그 무사는 코타로와 이름은 물론 성, 나이까지 같다. 코타로는 꿈인지 생시인지 적군을 향해 대검을 날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평상시에는 조용하게 지내다가 어느 순간에 사무라이로 변해 이지메를 당하는 나카무라 츠요시(시로타 유 분)를 돕는다. 조용하고 상냥한 초식남에서 야성의 사무라이로 변신하는 고교생은 미우라 하루마가 연기한다.

소공녀 세이라(TBS, 토요일 19시56분, 10월17일 첫방송)
미국의 유명 아동문학가인 프랜시스 버넷의 <소공녀>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작이다. 어려서 엄마를 잃고 사업가 아버지와 함께 살던 쿠로다 세이라(시다 미라이 분)는 엄마가 다니던 밀레니우스 여고에 입학하게 된다. 학교 최고의 요조숙녀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던 세이라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학생이 아닌 고용인으로 전락한다. 힘든 생활에 그나마 희망은 밀레니우스 여고에서 밤낮으로 일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미우라 카이토(하야시 켄토 분)다. <정의의 아군>으로 드라마 아카데미 주연여우상을 수상한 시다 미라이의 1년만의 복귀작이다. 어린 소녀들에게 꿈을 심어준 원작의 위대함과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올드한 플롯이 현대에도 환영받을까는 여전히 존재하는 의문이다.

도쿄 DOGS 최악이자 최고의 파트너(후지TV, 월요일 21시, 10월19일 첫방송)
말랑말랑한 로맨스가 주를 이루던, 일본의 전통적인 드라마 시간대인 ‘게츠쿠’에 편성된 다소 무겁고 거친 형사물이다. 일본과 미국을 오가는 마약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일본에 온 뉴욕시경의 엘리트 형사 타카쿠라 카나데(오구리 슌 분)와 이를 돕는 경시청 특수 수사과 쿠도 마루오(미즈시마 히로 분)가 파트너가 되면서 벌어지는 활약상을 그린다.
최근 가장 트렌디한 핫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오구리 슌이 날카로운 판단력과 작전지식을 가진 뉴욕시경의 엘리트 형사로, 여고생들을 가장 흥분시키는 미즈시마 히로가 폭주족 출신의 열혈 형사로 분한다.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신비의 여인을 연기하는 요시타카 유리코까지 흥행력과 연기력을 두루 갖춘 스타들이 대거 포진했다.

아사미 미츠히코(TBS, 수요일 21시, 10월21일 첫방송)
아사미 미츠히코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우치다 야스오의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 주인공의 이름이다. 고위층 관료의 자제이자 여행·역사 르포라이터인 아사미 미츠히코는 일본 각 지역의 역사, 전설, 명소, 축제 등을 취재하다 매번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아사미 미츠히코 역은 2000년부터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의 스페셜 드라마 중 13편이나 출연한 사와무라 잇키가 연기한다. 아사미 미츠히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와무라는 출연작마다 15%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흥행력의 소유자기도 하다. 원작에 대한 신뢰와 탄탄한 스토리, 주연배우의 인지도 및 흥행력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아사미 미츠히코의 동선에 따라 매회 다른 일본 지역의 역사와 풍경 등을 담을 예정이어서 볼거리도 풍부하다. 문제는 일본 최고의 인기시리즈 <파트너 시즌8>과 동시간대 편성됐다는 사실이다.

방청마니아 09(NTV, 목요일 23시58분, 10월22일 첫방송)프리터(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 키타 모리오(무카이 오사무 분)는 재판원 제도가 시작되는 날 관람권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섰다가 재판을 구경하게 된다. 이날로 재판 방청의 빠져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게 다룬다. 만화 <재판장님! 여기는 징역 4년이 어떻습니까>를 원작으로 한다. 쉽게 보기 힘든 재판장에서 만난 다양한 인간상이 무겁지도 않지만 가볍지만도 않게 그려진다. <백야행>으로 데뷔해 작은 단역이나 조연을 도맡던 무카이 오사무의 연속 드라마 첫 주연작이다. <시바토라>에서 백치경찰을 연기했던 미나미 아키나가 자기 주장강한 법대생 오다 미와를 연기한다.

교섭인 Project(TV아사히, 목요일 21시, 10월22일 첫방송)
2008년 1분기에 방송해 요네쿠라 료코의 열혈팬을 양산했던 <교섭인>의 후속격 작품이다. 특수범죄수사반 SIT의 협상가인 우사기 레이코(요네쿠라 료코 분)가 사건을 풀어가는 형사물이다. 협상 전문가는 범죄심리 분석가로 인질은 물론 범죄자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교섭인 Project>는 <교섭인> 스페셜과 내년에 개봉예정인 <교섭인 더 무비>를 연결하는 내용으로 꾸며질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교섭인 Project>에는 <드렁크드래곤>의 츠가지 무가, 야가미 렌 등이 SIT의 새 멤버로 투입돼 활기를 불어넣는다.

라이어게임 시즌2(후지TV, 화요일 21시, 11월10일 첫방송)
오리콘 드라마 차트 결과 4분기 드라마 중 최고의 기대작으로 2007년 4월 방영됐던 <라이어게임>의 두 번째 시즌이다. 라이어게임은 속고 속이는 일종의 사기배틀로 순진한 여대생 칸자키 나오(토다 에리카)와 천재 사기꾼 아키야마 신이치(마츠다 쇼타)의 팽팽한 경쟁이 극의 재미를 더한다. 라이어게임 3회전이 끝난 2년 후, 칸자키 나오에게 라이어게임 사무국에서 초대장이 날아든다. 시즌2에서는 전작에 이어 라이어게임 4회전과 준결승이 펼쳐진다. 결승전은 곧 개봉할 <라이어게임:더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볼 수 있다. 새로운 인물로 신이치의 대학동창이자 제국대학 심리학과 최연소 교수인 카츠라기 료우(키쿠치 린코 분)가 등장해 신이치의 최강 라이벌로 부상한다. 시즌1 방송당시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시키며 오락용 드라마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는 <라이어게임>의 시즌2에 일본 시청자들이 거는 기대는 유별나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나다.

시청률은 떨어지는 반면 녹화율은 오르는 드라마 시청자들의 소비 행태 변화도 원인 중 하나다. 구지 정해진 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시청하기 보다는 녹화를 해두고 보고 싶을 때 찾아보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콘텐츠 자체에 있다. 드라마 자체의 기발함이나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시청자들의 외면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분야가 기존 드라마의 새로운 시즌이다. 3분기에서도 그나마 성적이 좋았던 드라마가 <구명병동> 시즌4 정도다. 드라마 업계의 변혁과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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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뉴욕 SVU, 그들이 성범죄에 대처하는 자세

최근 9살 여아의 몸과 마음은 물론 그 미래까지 송두리째 망가뜨린 조두순 사건이 화제다. 제2, 제3의 성범죄 피해자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조두순이 제1의 성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은 매우 절망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 헌법이 성범죄 사건을 어떻게 다루고, 처리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지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가짜 사건일지’ ‘목사론’ 등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거짓 정보까지 난무하고 있어 수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있다.

현실적인 성범죄, 이에 대처하는 한없는 진지함
이같은 분위기에서 눈에 띄는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가 있으니 다. 성범죄전담반쯤으로 풀이되는 이 시리즈는 1990년 9월에 시작한 에서 파생된 스핀오프 시리즈 중 하나다. 는 CSI, NCIS 등 최고 히트 수사물보다 앞서 주목받았던 시리즈로 지난 9월25일부터 시즌20 방송을 시작한 현존하는 최장수 시즌물이기도 하다.
1999년 9월, 현존하는 최장 시즌을 자랑하는 의 스핀오프로 시작한 는 뉴욕의 SVU(Special Victims Unit)라는 가상 수사팀을 배경으로 한 수사물로 9월23일에 시즌11 방송을 시작했다. 이 시리즈는 말 그대로 ‘성범죄’만을 다루는 수사물이다. ‘성범죄’라고 해서 여타의 ‘성’을 다룬 콘텐츠처럼 자극적이지는 않다. 흥행을 노리든 예술성을 가장하든 노골적인 성행위나 노출도 없다.
이 시리즈는 사건이 나면서부터 피해자를 만나고 용의자를 찾는 과정 그리고 기소인부절차, 판사실, 법정, 부검실 등 사건을 풀어가는 절차와 판결까지를 사건일지처럼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 장소까지 명확하게 표기하며 신별로 구성한다. 사건의 끔찍함도 직접적인 영상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가 명확하게 표기된 상태에서 피해자의 진술이나 검시관의 설명을 통해 전달된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사건을 보다 현실적으로 느끼게 하며, ‘성’이 아닌 ‘범죄’라는 데 집중하게 하고, 얼마나 진지하게 다뤄야하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피해자의 고통을 다독여주고 용의자를 찾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피해자와 범인, 그들의 주변인, 하물며 그들을 만나고 추격하는 수사요원들과 검사까지, 그들 각각이 처한 상황을 함께 풀어가면서 사건 전체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같은 방식이 사건을 매우 현실적으로 느끼게 한다. 이 같은 극의 흐름은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캐릭터가 가진 성품이나 사정을 적나라하게, 그렇지만 매우 인간적인 고민으로 풀어내면서 보다 강력해진다.


SVU의 힘, 이야기와 캐릭터의 적절한 조화
엘리엇 스태블러(Elliot Stabler, Christopher Meloni 분)는 정의로움이 지나쳐 툭하면 불의를 못참고 주먹을 휘둘러 고소를 당하거나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기도 한다. 20살이 되기도 전에 아빠가 돼 다섯 남매를 둔 엘리엇의 큰 딸은 음주운전에 양극성 장애로 가택침입, 절도죄 등으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10년지기 파트너 올리비아 벤슨(Olivia Benson, Mariska Hargitay 분)이 잠시 잠복근무를 간 사이 파트너였던 여자요원과 미묘한 감정을 교류했고, 이혼을 했던 전적도 있다.
시즌7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악질 성범죄자의 파트너 위장하면서 스스로 안에 존재하는 ‘악’을 깨우려는 무형의 존재와 싸우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도가 지나친 정의로움과 감정 폭발로 인한 폭력성향 등 어찌 보면 성범죄전담반에 가장 안어울리면서도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올리비아는 태생 자체가 성범죄전담반에 가장 부합하기도, 혹은 가장 피하고 싶기도 할 캐릭터다. 어머니가 강간을 당해 태어난 올리비아는 이 문제로 늘 피해자와 아픔을 공유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치닫기도 한다. 수많은 거짓말과 사고로 올리비아를 지치게 했던 알콜 중독의 어머니는 지하철 입구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후에 자신의 어머니를 강간한 아버지의 아들인 사이먼을 만나면서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답이 없는 혼란을 겪기도 한다. 시즌9 15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여자 교도소 내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여죄수로 잠복근무를 하다가 강간을 당하기 직전에 오다핀 투투올라(Odafin Tutuola, Ice-T 분)에게 구출되면서 강간에 대한 트라우마와 정서적 장애를 겪기도 한다.
1회부터 지금까지 올리비아, 엘리엇과 성범죄전담반을 지켜온 이가 유태인 존 먼치(John Munch, Richard Belzer 분)다. 개성강한 캐릭터, 시니컬한 대사를 거침없이 퍼붓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약하고 따뜻하다. 끊임없이, 그것도 시니컬하게 쏟아내는 대사가 자막읽기 자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마약반에서 근무하다 전근 온 흑인 형사 투투올라는 도시 하류층, 인종문제 등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정신쇄약의 전처가 있고, 똑똑하지만 동성애자인 아들이 있다. 정신쇄약의 아내는 어린시절 아버지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아들을 낳았고, 이는 시즌8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SVU의 모든 요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폭력적이고 독불장군같은 엘리엇과 가장 많은 갈등을 겪는 캐릭터 중 하나다.
알콜중독자였다 재활치료에 성공한 크레이건 반장(Don Cragen, Dann Florek 분)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분노하는 요원들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 겸 정신과 의사 닥터 황(Dr. George Huang, B.D. Wong 분)은 매회 유괴범, 성도착자, 아동성범죄자, 강간범, 연쇄살인자 등 다양한 범인 검거와 재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차분하고 지적이며 이성적이지만 가슴 역시 따뜻하다.
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검시관 닥터 멜린다(Dr. Melinda Warner, Tamara Tunie 분), 마피아와의 전쟁으로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수행중인 알렉산드라 캐보트 검사(Alexandra Cabot, Stephanie March 분), 증거조작 등으로 시즌9에서 하차한 케이시 노박 검사(Casey Novak, Diane Neal 분) 등 SVU의 캐릭터들은 어느 시리즈보다 강하고 매력적이다.
시즌이 더해갈수록 이 캐릭터들은 보다 강해지고 매력적으로 진화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성범죄가 중심이 돼야 하는 이야기를 잠식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캐릭터 특유의 개성이나 힘이 이야기에 잠식당해 약화되지도 않는다. 이야기와 캐릭터는 적절하게 결합하며 서로의 힘을 극대화시킨다. 캐릭터든 이야기든, 지나치게 멋을 부리거나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일도 없이 현실 그 자체를 다루고, 그 해결에 진지하게 임한다.


텁텁하지만, 우리가 존재하는 현실은 계속 된다
대부분이 성범죄를 다루지만, 성범죄로 시작한 사건은 이주 노동자, 인종차별, 911테러, 종교 문제, 마약 등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기도 한다. 판결의 결과 역시 항상 정의가 승리하지도, 정의와 불의의 경계가 확실하지도 않다. 누군가의 영웅을 영웅의 모습으로 그대로 두지 않고, 선인을 선인으로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그 예가 시즌10 4번째 에피소드에 있다. 해병대 출신 엘리엇의 존경해 마지않는 고교 선배, 아들의 이름에까지 넣을 정도로 엘리엇의 우상이었던 핀은 결국 달에 가기 위한 꿈을 짓밟힐 위기에 처하고, 새로운 나사의 주인공이자 달 탐사 전문가인 우주비행사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현실은 영웅을, 선인을 영웅으로, 선인으로 머무를 수 없게 한다. 이같은 반전에는 서글프고 추악한 현실과 망가진 꿈에 대한 일그러진 욕망이 있다.
시즌5, 3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누가 했든, 결국 끝나지 않는 현실을 그리기도 했다. 에밀리라는 미소녀가 살해당했다. 그녀에게 늘 놀림을 당하던 아그네스가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결국 명품 가방과 액세서리가 탐난 가장 친한 친구들의 소행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또 다른 놀림에 시달리던 아그네스는 결국 사람을 죽이고 구속되고 만다.
시즌4의 21번째 에피소드는 염색체와 생식기로 나뉘는 남녀의 구분이 때로는 보다 참혹한 사건을 만든다는 부당한 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남다른 성 정체성으로 놀림 받고, 배척받고, 학대받고, 구타당하는 삶을 살던 셰릴은 성전환 수술을 앞두고 있다. 누가 봐도 여자인 셰릴은 수술 전이기 때문에 약혼자에게도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약혼자의 남동생에게 강간을 당할 위기에 처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염색체는 Y지만 누가 봐도 여자인 셰릴은 여자이길 부정해야하는 협상을 포기하고 재판을 진행하게 된다. 명예욕에 눈이 먼 변호사의 희생양이 된 셰릴은 실형을 선고받고 남자 교도소에 수감된다. 결국 올리비아와 노박 검사는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긴급호출전화를 받게 된다. 달려간 병원 응급실에는 교도소 내에서 집단 강간을 당해 참혹한 셰릴이 있다. 그리고 극은 막을 내린다.
이렇게 텁텁하고 극명하게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SVU가 범죄를 다루는 방법이자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다루는 방법이다. 이같은 방법은 SVU의 최고 매력이자 중독 원인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의 현실은 불의가 판을 치고, 말도 안되는 부당함이 존재한다. 이는 온전히 거부할 수도, 끌어안을 수도 없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엄중처벌과 법정 콜드 케이스가 없는 미국의 성범죄 처벌과 달리 한국은 9살짜리 여자아이 뿐 아니니 그 부모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리고도 안하무인인 전과 17범의 남자가 12년 형을 받고 항소를 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시즌20을 방송중인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스핀오프된 지 만 10년, 현재 시즌11을 방송중인 는 미드 사상 최고의 청출어람 스핀오프 시리즈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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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분기 드라마 마무리, 4분기 드라마 라인업

지난 회차로 일본의 3분기 드라마가 모두 막을 내렸다. 시간이 갈수록 요원해지는 드라마의 흥행은 3분기에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평균시청률 20% 이상의 드라마를 분기별로 최소 한두 개 정도는 배출하더니 3분기에는 아쉽게도 실패했다. 10%를 넘은 드라마도 단 6편뿐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일본 드라마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19.13%로 <구명병동 24시> 시즌4, 시청률 1위
3분기 드라마 1위는 19.13%의 평균시청률을 기록한 <구명병동 24시>다. 신도 잇세이 역의 에구치 요스케가 오토바이 전복사고를 당하면서 4주 정도 방영이 미뤄지며 가장 늦게 시작한 3분기 드라마다. 4년만에 새로 방송된 <구명병동 24시>의 시즌4는 시작과 더불어 20.3%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증명했다. 응급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린 <구명병동 24시>는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아내가 있는 천재 외과의사 신도와 그의 밑에서 훈련중인 인턴 코지마 카에데(마츠시마 나나코 분)의 이야기다.
아내의 죽음, 동경 대지진, 정치·사회의 혼란 등을 거치며 시즌 2, 3을 거치며 시즌4에 이르렀다. 의국장이 과로사하며 의사들이 집단 사표를 낸 요코하마의 한 병원 응급실을 배경으로 한 시즌4는 신도와 사와이 전 의국장의 화해로 막을 내리며 일본 의료개혁에 대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코지마가 신임 의국장이 되면서 다음 시즌의 주인공이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2위는 14.95%의 평균시청률을 기록한 <임협 헬퍼>가 차지했다.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술에 만취해 나체소동을 벌이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스마프 멤버 쿠사나기 츠요시의 복귀작이다. <입협 헬퍼>는 폭력조직원이었던 히코이치가 간병인 연수를 시작하면서 겪는 일을 통해 인간적인 감동을 이끌어낸다.
이 드라마에는 야쿠자를 다룬 대부분의 콘텐츠처럼 폭력이 난무하거나 피가 낭자하진 않다. 같은 노인은 있지만 그들을 진정 사랑하고 돌볼 사람은 없는 외로운 노인들과 거친 야쿠자 사이에서 믿을 사람 하나 없이 서슬 퍼런 삶을 사는 고독한 야쿠자는 어찌 보면 닮은꼴이다. 야쿠자와 양로원의 외로운 노인들, 왕따 꼬마, 차갑기만 한 여자 등이 서로 이해하고 끌어안으며 감동을 이끌어낸다. 스타일리시하고 쿨한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가운데 탄탄한 구성과 유치하지도, 억지 감동도 없는 잔잔한 휴먼드라마 <임협 헬퍼>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는 평이다.
과학수사연구소 팀원의 활약상을 그린 수사물 <과수연의 여자>가 14.54%로 3위를 차지했다. <과수연의 여자>는 라스베이거스 과학수사대 요원들의 활약상을 그린 전세계적인 메가히트 시리즈 보다 한해 앞선 1999년 첫 방송을 시작해 2009년까지 9개의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DNA, 지문, 혈흔 등 과학수사를 통해 범죄를 해결하는 교토 과학수사연구소에 소속된 법의학 연구원 사카키 마리코의 활약상을 그렸다.
4위는 ‘야마삐’로 불리는 NEWS의 멤버 야마시타 토모히사의 <버저비트:벼랑 끝의 히어로(이하 버저비트)>가 차지했다. 전형적인 청춘 드라마인 <버저비트>는 전통적인 드라마 황금시간대인 ‘게츠쿠(후지TV의 월요일 밤 9시)’ 드라마였음에도 14.35%를 기록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매사 소극적인 실업 농구단의 카미야 나오키(야마시타 토모히사 분)가 부상과 수술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버저비트를 날리며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과정을 그렸다. 씩씩한 리코(키타카와 케이코 분)와의 풋풋한 연애이야기도 인기 요인의 하나다.
5위는 13.03%의 평균시청률을 기록한 <신 경시청수사 1과 9계>다. 2006년 시작해 매년 방송되고 있는 인기 시리즈의 4번째 이야기다. 미해결 살인사건 해결과 흉악범 검거를 위해 신설된 경시청 수사 1과 9계 소속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4분기 드라마 라인업
3분기 드라마 완결과 더불어 4분기 라인업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10월9일 첫 방송되는 <마이걸(TV아사히, 매주 금요일 23시15분)>을 시작으로 <도쿄 DOGS(월요일 21시)> <라이어게임 시즌2(화요일 21시)> <리얼 크로즈(화요일 22시)> <불모지대(목요일 22시)>(이상 후지TV), <기네 산부인과의 여자들(수요일 22시)> <방청매니아 09(목요일 23시58분)> <사무라이 하이스쿨(토요일 21시)(이상 NTV), <아사미 아츠히코-최종화( 수요일 21시)> <소공녀 세이라(토요일 19시56분)> <독신(おひとりさま)(금요일 22시)> <진 仁(일요일 21시)>(이상 TBS), <교섭인(목요일 21시)> <언터쳐블(금요일 21시)>(이상 TV아사히) 등이 시청자들을 만난다. 분명 호시절이 있었던 일본 드라마가 이대로 무너질 것인지, 4분기 드라마를 통해 심기일전에 다시 부활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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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재밌는TV 롤러코스터>, 인기비결은 ‘공감 리얼리티’

7월18일 자정, 심상치않은 프로그램 하나가 선을 보였다. tvN이 가을 개편과 함께 야심차게 내놓은 <재밌는TV 롤러코스터(이하 롤러코스터)>는 ‘남녀탐구생활’ ‘막장극장’ ‘여자가 뿔났다’ ‘불친절한 경호씨’ ‘연애극장’ 등으로 꾸며진 새로운 개념의 코미디쇼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1.5%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인기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남녀탐구생활’의 정가은과 정형돈이다. 얼핏,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외모의 정가은과 정형돈은, 같은 상황에서 달라지는 남녀의 행동 패턴을 너무도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럽게 연기한다. 마치 연기가 아닌 실제처럼.


일등공신, 남녀탐구생활의 정형돈·정가은, 내레이션 서혜정
<롤러코스터>의 ‘남녀탐구생활’이 보여주는 소개팅 전, 공중목욕탕, 라면 끓이기, 백화점 쇼핑, 연인 사이 방귀 트기, 매일 싸워도 미워할 수 없는 형제·자매 싸움, 감기몸살 등 같은 상황에서 달라도 너무 다른 남녀의 차이는 박수를 치며 “맞아 맞아”를 연발하게 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남녀를 다루는 방법도, 장르도 여러 가지다. 너무 다른 남녀는 드라마는 물론 코미디, 도서 등의 영원한 소재이자 풀어야할 숙제였다. 오죽하면 ‘화성 남자, 금성 여자’라는 말이 나왔을까. ‘남녀탐구생활’이 다른 별에 사는 것처럼 달라도 너무 다른 미묘한 남녀의 차이를 건드리는 방법도 유쾌하다. 이미 알고 있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표현하기 힘들고, 때로는 인식하지 못하고 무심하게 넘겼던 남녀의 차이를 유쾌, 상쾌, 통쾌하게 풀어준다. 이것이 바로 일상의 힘이다.
짧은 호흡으로 스타카토처럼을 웃음을 자아내는 ‘남녀탐구생활’의 숨겨진 보물은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성우 서혜정이다. 에서 스컬리 요원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서혜정은 짧지만 확실한 터치로 유쾌하고 공감가는 웃음을 주는 ‘남녀탐구생활’의 화룡점정과도 같은 존재다. ‘남녀탐구생활’ 중 서혜정 성우의 매력을 극강으로 보여준 에피소드는 7회(8월29일 방송) <남녀탐구생활 스페셜> 중 ‘이상형’에 대한 것이다.
성별·나이대별 이상형을 다룬 이 에피소드에서 남자의 이상형은 10~60대까지 한결같이 ‘예쁜 여자’였다. 코믹하고 오버스러운 화면에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진지하게 6번이나 연달아 읊조리는 “예쁜 여자예요”는 박장대소를 하게 한다. 서혜정 성우는 ‘이런 젠장’이라든지 ‘제기랄’ ‘나쁜 년’ 등의 비속어도 지적이게 소화해내며 폭소를 자아내는 능력을 지녔다. 은근히 중독성을 지닌 목소리는 토요일 밤 11시면 시청자들을 어김없이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얼마 전 방송한 <국군의 날 특집 남녀탐구생활>은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곰신(인터넷 유행어로, 고무신의 줄임말로, 군대 간 남자 친구나 애인을 기다리는 여자들을 일컫는 말)과 여자친구를 두고 군대를 가야하는 남자의 상황이 방송됐다. 이 방송 후, 시청자들은 “여자 입장에서 동감되지 않는 부분이 없다”거나 “누군가 CCTV를 달아놓고 지켜본 후 만든 것 같다” “제대한 지 3개월 지났는데 남녀탐구생활을 집중해서 보다가 밤을 꼴딱 샜다”는 등의 공감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드라마를 재해석하는 막장극장
<롤러코스터>의 또다른 인기요인은 ‘막장극장’이다. 막장 드라마의 코드를 모으고 모아 재현을 하는 형식의 ‘막장극장’은 가히 가관이다. 현 TV드라마의 세태를 다룬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고 정말 포복절도하게 하는 개그 단막극 같기도 하다. 첫 회는 막장 중의 막장,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스피디한 전개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전처의 유혹>이었다. 불륜, 꼬이는 혈연관계, 점만 붙여도 다른 사람이 되는 주인공, 뻔뻔한 악역들 등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막장 드라마를 가로지른다. 남자주인공 아내의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이가 남자주인공의 친동생이었고, 남자주인공을 버리고 간 친아버지가 아내의 어머니랑 재혼을 한다. 남자주인공의 친아버지와 양아버지가 똑같은 목걸이를 지니고 있어 형제임이 드러나는 등이 그 예다.
‘로맨스’편에서는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임에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로맨스의 법칙 모두를 적용시켜 드라마를 완성했다. <커피프린스 1호점> <파리의 연인> <꽃보다 남자>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에서 유명한 로맨틱 장면이 드라마에 등장하며 <파리의 연인>의 한기주(박신양 분)와 <커피프린스 1호점>의 최한결(공유 분)은 형제고,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 분)는 조카다. 이 모두의 사랑을 받는 여자는 고은찬(윤은혜 분)이었다가 금잔디(구혜선 분), 강태영(김정은 분)이고 구준표와 금잔디는 어릴 때 헤어진 남매다. 이처럼 얼토당토않고 어설픈 극 전개에도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는 건 이미 인상깊게 봤거나 좀 어이 없다고 느꼈던 장면들을 기묘하게도 엮었기 때문이다.
막장극장을 본 후유증은 엄청나다. 가난한 여자가 아버지의 수술비를 위해 대리모를 하게 되고, 부잣집 남자를 만나면서 겪는 고난과 로맨스를 그린 SBS 주말극 <천만번 사랑해>나 차봉군(유노윤호 분)과 오연이(이윤지 분)의 포옹을 멀리서 지켜보는 강해빈(아라 분)이 나오는 MBC 수목드라마 <맨땅에 헤딩> 장면 등 진지한 드라마를 보면서 피식거리게 하거나 박장대소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기비결은 주옥같은 코너들에 깔린 공감 코드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새로 시작한 ‘여자가 화났다’라는 코너도 반응이 나쁘지 않다. ‘여자가 화났다’는 똑같은 데이트 과정을 3번에 걸쳐 재현한다. 연상연하 커플이 쇼핑을 하고 커피 한잔을 나눠마시는 등 평범한 데이트 현장을 보여준다. 결국 마지막에는 여자가 화를 낸다. 여자가 화를 내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남자는 안절부절할 뿐이다.
이에 ‘여자가 화났다’는 데이트 과정을 다시 재현하며 여자의 입장에서 화난 이유를 설명한다. 쇼핑 가방을 여자 쪽으로 드는 것은 손을 잡기 싫어서라고, 하나의 아이스커피를 사오면서 빨대 두 개를 챙기는 것은 하나의 빨대로 음료를 마시는 것이 더러워서라고 여자는 화를 낸다. 옷을 사러가서 미니스커트을 입혀놓고 예쁘다고 기뻐하는 건, 여자친구의 다리를 아무나 봐도 상관없다는 것이라며 화를 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데이트 과정을 재현하는데, 여자가 화를 낸 부분을 지나치게 여자가 원하는 대로 배려한다.
무심하고 배려가 부족한 남자들에게 경각심과 연애 상담을 해주는 ‘여자가 화났다’에 대해 일각에서는 몰랐던 여자의 심리를 알게 되면서 좀 더 배려하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평하는가하면, 남성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여자가 화를 낸다’는 설정으로 표현하다보니 일부 남성들은 짜증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결국 ‘남자가 화났다’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처음 볼 때는 여자가 화난 이유를 여자조차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더니, 이제는 남자의 무심함으로 여자가 화난 이유를 찾아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이외에도 <롤러코스터>에는 불친절한 택시기사, 불친절한 식당, 미용실, 치과, 옷가게 주인 등을 재현하는 ‘불친절한 경호씨’,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네 여자의 좌충우돌 활약상을 그린 ‘죽어도 섹스앤시티’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웃음 코드로 무장한 코너들이 즐비하다.
정형돈, 정가은을 비롯해 정경호, 서영, 최은주 등이 열연을 펼치고 있는 <롤러코스터>의 인기 비결은 바로 일상생활 속에서 늘 느끼고 궁금해 하던 사실을 리얼하게 짚어내고 해답을 제시하는 ‘공감대 형성’이다. 물론 모든 남자는 다 그렇고, 모든 여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조금 과장됐든, 조금 모자라든 주옥같은 코너들 속에 숨은 공감 코드는 시청자들을 웃게도, 울게도 한다. 최근 방송가의 예능계를 휩쓸고 있는 리얼리티는 아니지만 남녀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리얼리티에 공을 들인 결과,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공감 리얼리티의 승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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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클로졉 2010.01.11 1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트 잘 봤습니다. 남녀탐구생활을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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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하는 한국 드라마 시스템의 현주소

바야흐로 만능 엔터테이너, 멀티 플레이어의 시대다. 가수가 연기를 하고 예능 프로그램의 MC를 보고 탤런트가 앨범을 발표해 가수로 활동하는가 하면 배우들이 작가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느 한 산업분야의 독자적인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한 울타리로 모여드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로 향하는 가수들, 끊임없는 논란
가수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 역시, 음악시장의 하락세와 드라마 제작비 상승 및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구 등이 맞물리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음악이라는 콘텐츠의 가치가 떨어지니 가수활동 만으로는 단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시장 자체도 좋지 않으니 가수들이 활동영역을 넓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드라마 산업 역시, 이전처럼 방송사에서 100% 제작비를 충당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방송사에서 일부, 나머지는 투자유치든 PPL이든 제작사에서 충당해야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드라마 제작비는 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광고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드라마의 완성도와 창작을 거의 대부분 책임지는 역량있는 작가군은 한정돼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작가 뿐 아니라 연기자들 역시, 흥행이나 연기력이 담보된 연기자들은 소수에 불과해 캐스팅은 전쟁을 방불케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작가료와 출연료 역시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고 있다.
다각도로 치고 들어오는 변수에 몰릴대로 몰린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수려한 외모와 이미 확보된 팬층, 신선한 느낌을 지닌데다 출연료도 비교적 높지 않은 가수나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연기력과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편견에 대한 부담을 감수한다는 전제 하에서의 얘기다.
<꽃보다 남자> 김현중, <드림> 손담비 등은 드라마 시작과 동시에 보란듯이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하물며 몇 편의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연기를 했던 성유리, 윤은혜 등은 지금까지도 드라마를 시작할 때마다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곤 한다. 그 흥행 성공률 역시 그리 높지는 않다. <풀하우스> <상두야 학교가자>의 정지훈, <궁> <커피프린스>의 윤은혜, <불새> <신입사원>의 문정혁, <꽃보다 남자>의 김현중 등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정지훈은 드라마 판을 거의 떠났고, 문정혁은 군대복무 중이고, 윤은혜도 최근작 <아가씨를 부탁해>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논란이라기보다 비판에 가까운 가수 출신 연기자에 대한 평가에도 가수들의 연기자 데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물며, SBS는 아이돌 그룹의 이야기를 다룬 <미남이시네요>를 편성하기도 했다. 출연 뿐 아니라 드라마의 소재로 선택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 방송중인 <태양을 삼켜라(핑클 성유리)> <아가씨를 부탁해(베이비복스 윤은혜)> <지붕 뚫고 하이킥(슈가 황정음)> <맨땅에 헤딩(동방신기 유노윤호)> <드림(손담비)> <멈출 수 없어(이지훈)> 등에는 현직가수, 혹은 가수출신의 연기자가 출연하고 있다. <아이리스(빅뱅 탑)> <미남이시네요(FT아일랜드 이홍기)> <추노(god 데니 안)> <파라다이스 목장(동방신기 최강창민)>, 한류 프로젝트 드라마 <슈퍼스타(god 손호영, SS501 김형준, 신화 전진 등)> 등 라인업된 드라마 역시 가수들이 캐스팅된 상태다.


동방신기 리더 정윤호의 <맨땅에 헤딩>
<혼>의 후속작인 수목 드라마 <맨땅에 헤딩>은 동방신기의 리더 정윤호의 연기 데뷔작으로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안하무인 좌충우돌하는 천재적인 축구선수 차봉군의 인생역정, 그리고 초짜 에이전트 강해빈과의 톡톡 튀는 연애가 주내용인 <맨땅에 헤딩>은 기획단계부터 탄탄한 대본과 <네 멋대로 해라> <나는 달린다> 등 독특한 감성 표현에 탁월한 박성수PD의 작품이라는 데 많은 기대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맨땅에 헤딩>은 원래 주인공이었던 김래원의 갑작스런 입대로 기존 캐스팅이 전면 백지화됐고, 제작비 투자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에 SM엔터테인먼트가 공동제작사로 나서 10억 원을 투자하면서 정윤호와 아라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이는 시아준수·영웅재중·믹키유천이 소속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로 <맨땅에 헤딩>은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결과를 놓고 보자. 연기를 하고 있음을 강변하는 듯한 정윤호의 연기, 여전히 <반올림>의 옥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라, 그 둘이 엮어 내는 소위 ‘오글거리는’ 신들이 두 신인 연기자의 연습장처럼 느껴진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윤여정, 박순천, 임채무, 김혜옥 등 관록있는 배우들의 호연도, 꽤 쟁쟁한 연기자들을 동하게 했던 완성도 높은 대본도, <네 멋대로 해라> <나는 달린다> 등 독특한 캐릭터와 감성으로 승부하는 PD의 연출력도 아직까지는 소용없어 보인다.
개연성도, 신선함도 떨어지는 인물과 인물의 관계설정과 진척, 장면들, 작위적인 상황설정과 대사 등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공감하기 어렵게 하고, 스토리 전개 역시 어색하게 한다. 여기에 뚝뚝 끊기는 듯한 편집까지, 1, 2회를 방송한 <맨땅에 헤딩>은 드라마의 중요 요소들이 삐거덕거리는 느낌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시청률 역시 5.6%에 그치고 있다. ‘80만 회원’의 동방신기 팬클럽을 운운하며 <맨땅에 헤딩>이라는 드라마 제목을 활용한 비아냥이 난무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SM엔터테인먼트는 <맨땅에 헤딩> O.S.T에 소녀시대의 태연·써니가 참여하고, 극중에 유리가 포스터로 깜짝 출연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있다.

<맨땅에 헤딩>의 총체적 난국,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현실
<맨땅에 헤딩>의 총체적 난국은 현재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언제나 드라마, 특히 미니시리즈는 주인공 한두 명의 상품성과 스타성, 혹은 연기력에 의존한다. 주인공에게 그것이 부족하다면 이를 상쇄할만한 캐스팅이나 스토리를 준비한다. 작가 한 사람의 창작력과 역량에 따라 드라마의 완성도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작비를 투자한 기업이나 개인은 캐스팅, 대본, O.S.T 등 대부분의 요소에 관여하려고 한다. 흥행 성적이 안좋거나 이슈화가 안된다면 그 ‘관여’는 더욱 심해진다. 급기야 강력하게 대본수정을 요구하고 주요 연기자가 중도하차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를 잘 아우르거나 이끌어갈 수 있는 PD, 독특한 연출력이나 감각적인 편집은 연기가 부족한 연기자들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을 때, 혹은 대본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안전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의 <맨땅에 헤딩>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불안한 드라마, 음악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시장 상황, 천정부지로 치솟는 출연료·작가료를 포함한 제작비 충당마저 어려운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 아무리 흥행에 성공해도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 등이 만들어낸 현실이 바로 <맨땅에 헤딩>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맨땅에 헤딩>의 총체적 난국이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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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팬? 안티? 팬들 싸움 부추기는 미디어 유감

연일 아이돌 그룹의 멤버 이야기로 넘쳐나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지드래곤의 표절로 들썩거리던 웹 세상은 ‘짐승 아이돌’로 상한가를 치던 2PM의 리더 박재범 사건으로 들끓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연습생 초창기 시절이던 4년 전, 미국 소셜네트워킹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에 올렸던 글이 발단이었다. 사건이 터지고 각종 안티와 팬들이 소위 ‘까대고’ ‘쉴드 치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소속사인 JYP도, 박재범 본인도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박재범은 ‘한국, 한국인, 한국 팬 비하’라는 멍에를 지고 자진탈퇴를 발표한 후, 그날 저녁 시애틀행 비행기에 올랐다. 불과 4일만의 일이다. 말 그대로 일사천리다. 이처럼 빠른 진행은 유사 이래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의 바다, 홍해처럼 갈라지다
그 4일 동안 인터넷의 바다는 박재범의 ‘안티’와 ‘팬덤’만 존재하는 양 모세의 홍해처럼 갈라졌다. 이 기간 동안 인터넷 게시판에서 가장 많이 본 말은 ‘양키 고 홈’ ‘쉴드 치는 빠순이(본질을 보지 않고 무작정 옹호론을 펼치는 팬들의 비속어)’ ‘그루피(록 밴드를 추종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때로는 성적인 관계까지 마다않을 정도의 열성팬을 일컫는다)’ ‘비즈니스’ ‘12달러’ ‘제이팟(박재범이 어느 오락 프로그램에서 한 아이팟을 잃어버렸다는 발언에 팬들에게 사달라는 거냐고 비꼬는 신조어)’ ‘코리안 게이’ ‘난독증’ 등 서로의 진영을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그리고 옹호 아니면 비판만을 하기 위해 퍼다나르는 ‘재미교포 학생입니다’로 시작하며 ‘번역의 오류’ 혹은 ‘재범의 발언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지적하는 게시물들로 넘쳐났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웬만한 교포 학생은 전부 글을 쓰는 듯하다”고 할 정도였다.
극단적인 감정에 휘청거리는 ‘넷심’에 불을 붙인 것은, 중립적 시각으로 사태를 관망하고 분석해 중심을 잡았어야할 미디어였다. 팬덤 사이트나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기사거리를 찾던 기자들에게 이같은 상황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특히, 이 사건 전에 터졌던 표절사건을 관련지으며 ‘의혹’과 ‘비아냥’이 난무하는 상황이었다. 기자들은 웹상의 극렬한 반응을 고스란히, 혹은 한껏 과장해서 기사로 써냈다.
자극적이고 감정을 건드리는 제목을 단 기사들 덕택(?)에 사건은 순식간에 일파만파 퍼져갔다. 이 과정에서 박재범 소속사 사장인 박진영이 증언(?)했듯 삐딱하고 불량하던 시절에 각종 ‘슬랭’을 섞어 쓴 글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더욱 극명하게 대립했다. 지나친 관심과 집착은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해운대>에 등장하는 쓰나미보다 더한 광풍이었다.
박재범이 탈퇴선언과 동시에 한국을 떠나고 없는 상황에서도 ‘너무 심했다’는 동정론과 ‘영구 입국금지 청원 운동’을 불사하는 강경론으로 갈라졌다. 사건이 터지자 박재범에 대한 비판 기사를 풀어놓던 기자들은 탈퇴선언에 동정론으로 선회했고 출국시간까지 알려주는 친절함을 발휘했다. 약속이나 한 듯 언론들은 ‘파시즘’ ‘네티즌의 마녀사냥’ ‘빗나간 애국주의’ ‘인민재판’ 등의 제목을 달고 네티즌의 지나친 처사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마치 죄 없는 이를 쫓아낸 것처럼 번지는 동정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동료연예인은 물론 정치인들까지 ‘미디어법’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언론의 양심 실종된 마구잡이 보도
이번 사건의 핵심은 네티즌들의 마녀사냥도, 팬덤의 어긋난 사랑도 아니다. 연예인이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의 사적 공간에 올린 글에 대한 논란을 마구잡이로 보도하고 공론화해 또 다른 싸움을 부추기곤 하는 한국 저널리즘의 씁쓸한 현주소다. 그 싸움은 생중계하듯 또다시 기사화되고, 공론화된다. 그간 반복적으로 지적돼오던 ‘언론의 양심’은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물론 그렇다고, 박재범이 저지른 실수가 사라지거나 축소돼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박재범에게도 이번 사건은 한국이나 한국인에 대한 원망 보다는 평생 가슴 한구석에 짐으로 남아야할 것이다. 네티즌들의 집착에 가까운 여론몰이나 무작정 감싸고도는, 도를 넘어선 팬덤의 충성심이 정당하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박재범 사건이 극으로 치달을 즈음, 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사이트에 글을 올릴 때 주의해야 한다. 청소년기에 올린 충동적인 글이나 사진 등이 중요한 시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는다. 치기어린 시절, 암울하기만 하던 심정을 격하게 표현했던 아이돌 멤버의 실수가 어떻게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씁쓸할 뿐이다. ‘인터넷=세상’ 혹은 ‘인터넷=여론’이 반드시 참인 명제도 아니건만, 마치 참인 것처럼 일이 진행되는 요즘 며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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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논란, 한국 가요계의 서글픈 자화상

또 표절시비다. 고질병처럼 새로운 음반이 나올 때마다 표절시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솔로앨범을 발표한 빅뱅의 지드래곤이 표절논란에 휩싸였다. 10곡 중 무려 4곡, ‘Heartbreaker’ ‘Butterfly’ ‘The Leaders’ ‘Hello'가 각각 빌보드의 유명 힙합 뮤지션 Flo Rida의 ‘Right Round’, 최근 주축 멤버인 갤러거 형제 중 형 노엘이 탈퇴를 선언한 영국 밴드 Oasis의 ‘She's Electric’, 2009년을 강타했던 소녀시대의 ‘Gee', 힙합 듀오 다이내믹 듀오의 ’솔로‘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대세’와 ‘표절’은 다르다
Flo Rida의 ‘Right Round’와 Oasis의 ‘She's Electric’의 저작권 지분을 가지고 있는 워너채플뮤직과 소니ATV뮤직퍼블리싱은 해당곡들의 유사성을 인정하고 원저작자에게 음원을 보내놓고 회신을 기다리는 중이다. 지드래곤의 표절여부에 대해 “2소절(8마디) 이상을 베껴야 표절이다. 그것도 모르면서 전문가인양 함부로 ‘표절’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거나 “원저작자도, 국내에서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곡가들도 아무 말 없는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하곤 한다.
함부로 ‘표절’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된다는 말은 분명 옳다. 하지만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전문가지만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일반 시청자다.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는 전문가인 셈이다. 음악을 듣는 전문가는 음악 팬인 것처럼 말이다. 무조건 표절이라고 우기는 이들이 옳다는 건 아니다. 듣는 이에 따라, 어떤 면에 집중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표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지드래곤의 ‘Hello'가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솔로’의 원저작자 다이내믹 듀오도 표절 여부를 ‘듣는 사람들의 몫’으로 돌렸을 것이다. 이에 ‘창조’와 ‘모방’의 경계가 모호해진 요즘, 표절을 논하기란 더욱 까다로워졌다.
때로는 “전체적으로 비슷할 뿐 표절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표절이 아닌 곡이 없다” 혹은 “한 부분에만 집중하지 말고 전체적으로는 들어보라. 전혀 다르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물론, 시대를 풍미하는 대세는 있다. 록, 힙합, 발라드 등 각 장르별 리듬 패턴이나 플로 역시 있게 마련이다. 국내 음악시장의 수익구조가 모바일로 편중되면서 핸드폰 벨소리나 컬러링 등에 활용되기 쉬운 멜로디와 반복되는 가사·리듬으로 구성된 일명 ‘후크송’이 난무했다.
도입부에 강렬한 사운드나 비트를 배치해 단숨에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는 곡들은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지 표절이라 할 수 없다. 최근 몇 년 간의 대세는 ‘Gee Gee Gee Gee Baby Baby Baby' ‘Sorry Sorry Sorry Sorry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미쳐 미쳐 미쳐 Baby’ ‘에에에에에에에에 2ne1' 'I Don't Care 에에에에에’ 등 한 단어나 구절이 반복되는 노래다. 하지만 이같은 ‘대세’를 따르는 것과 ‘표절’은 엄연히 다르다.
이번 지드래곤의 표절논란 곡 중 ‘Right Round'와 ’Hello'의 장르는 힙합이다. 샘플링 스킬을 쓰는 힙합 곡에서 중요한 것은 라임과 플로다. 라임이란, 언어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어로 따지면 자음 하나, 모음 하나 혹은 음절 하나의 각운과 운율을 맞추는 것이다. 플로란 속도, 리듬, 음의 고저, 끊기, 강약의 조화 등 랩이 흘러가는 모양새를 뜻한다. 힙합 뮤지션은 특유의 라임과 플로로 다른 뮤지션과 차별되는 개성과 고유성을 확보하곤 한다.
단편적으로 다이내믹 듀오 ‘솔로’의 ‘솔로 솔로 있고 싶어 난 홀로 홀로 / 솔로 솔로 오늘부터 난 홀로 홀로 / 솔로 솔로 있고 싶어 난 홀로 홀로 / 솔로 솔로 오늘부터 난 홀로 홀로’ 부분과 지드래곤 ‘Hello'의 ‘Hello 섹시가이도 Hello 핸섬보이도 / Hello Hello 먼저 말걸어준다면 / Hello 도도한걸 Hello 귀여운걸 / Hello Hello 저기 잠깐만요 Say Hello’ 부분이 비슷한 라임과 플로를 따르고 있다는 의혹은 그래서다.
지드래곤의 솔로 앨범은 표절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앨범 발매와 동시에 지상파·케이블은 물론 앨범·다운로드·스트리밍·모바일 등 모든 차트를 석권했다. 지드래곤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는 ‘앨범 발매 4일만에 10만 장을 넘게 팔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 음악 프로그램은 지드래곤 컴백 무대로 7% 정도의 시청률이 상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좋은 선례로 남았다. 표절논란이 반드시 흥행의 걸림돌로 작용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도덕성의 흠집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안이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의 성공으로 이어진 셈이다. 표절 구설수에 올라 이런 행복을 맛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유혹이 스멀거릴만하지 않겠는가. 최근의 ‘표절’은 더 이상 창작자로서의 도덕성 흠집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자의든, 타의든 마치 음반 홍보를 위한 마케팅 도구처럼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서글픈 한국 가요계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표절, 법적 문제 아닌 도덕성의 문제
음악인 배철수는 지난 8월31일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최근 지드래곤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가요계 표절시비에 대해 “음악하는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데도 우리는 표절에 대해 너무 무감각하고 일상화됐다”고 일침을 가했다. 꼬집었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도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은 남들과 다르게 나만의 것을 창조한다는 자존심”이라고 강조하고 “쉽게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사이비들의 시대”라고 현 가요계를 비판했다.
더 이상 표절은 2소절 이상을 똑같이 베꼈느냐를 가늠하는 법적인 문제나 판정의 문제가 아니다. 창작자로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도덕성과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 문제인 것이다.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소설이나 정지영 감독의 동명 영화를 보자. 영화를 너무도 사랑하던 병석이 평생을 걸고 완성한 시나리오, 완벽한 구성과 치밀하고 세련된 대사 등으로 영화사 만장일치로 제작이 결정되고 세인의 주목을 한눈에 받는다. 하지만 그 시나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행해진 표절과 짜깁기로 인한 할리우드 영화의 집합체였다. 제작자도, 투자사도, 감독도, 하물며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 정교한 패러디와 짜깁기는 충무로에서 엄청난 환영을 받았었다. 스스로가 무의식에서 표절과 짜깁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창작자 병석의 심정은 참담함과 수치, 분노와 서글픔 등 하나의 감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의지가 있었든, 무의식이었든 표절논란에 휩싸여 활동을 중단하거나 자해소동을 벌이거나 은퇴를 발표하곤 했던 이전의 가수들 역시 이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지드래곤을 포함해 표절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가수들 역시 마냥 좋아하고만 있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직까지 우리 가요계에 희망이, 그리고 도덕성이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는 상상만으로도 한국 음악의 미래는 암흑일테니 말이다.
지금 당장의 표절문제도 심각하지만 이같은 논란을 허투루 넘겼을 때의 결과는 몇 년 후에야 나타난다. 불법 다운로드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하물며 이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몇 년 후에 앨범시장의 몰락을 맞았다. 앨범시장이 어려워지고 모바일 수익이 오르면서 후크송이 난무할 때도, 수익은 올랐지만 음악은 진정한 소모품이 돼 버렸다. 갈무리가 필요 없는, 핸드폰 벨소리와 컬러링을 위해 자르고 붙여도 별 문제없는 노래들로 넘쳐났다. 표절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같은 시행착오가 무의미하게 반복된다면 음악을 듣는 이는 물론, 음악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음악 자체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표절 논란에 “또 시작이군”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거나 아예 무관심해질 수도 있다. 콘텐츠로서 음악의 가치는 점점 하락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표절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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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유있는 역주행, 힘내라! <국가대표>

2009년 1월부터 8월23일까지, 1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한국 16개, 미국 11개, 중국·영국영화가 각 한 작품이다. 특히, 한국영화는 2008년 동기대비 관객 수 및 매출이 15~20% 증가한 수치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에 걸쳐 개봉한 <과속스캔들>의 총 관객동원수(828만298명) 중 2009년 성적만 따져도 390만, 2009년 총 박스오피스 10위권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2009년 박스오피스 상위 5개 작품 중 두 개가 7월 개봉작이다. 2009년 최초 1천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해운대>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국가대표>다. 이 중 개봉 3주차부터 박스오피스 선두를 지키고 있는 <국가대표>의 역주행이 눈에 띈다. ‘한국 최초의 재난영화’이자 설경구·하지원·박중훈·엄정화 등 스타가 대거 투입된 <해운대>의 물량공세와 방학시즌을 맞아 매주 개봉하는 신작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줄어든 스크린 수에도 <국가대표>는 빛을 발하고 있다.

입소문으로 역주행 쾌거
보통의 흥행작들은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1·2주차에 많은 관객을 동원하다 개봉 3·4주차부터 관객 수가 줄곤 한다. 반면, <국가대표>는 오히려 3주차부터 관객 수가 증가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가히 ‘역주행’이라 할 만하다. 또한 이같은 역주행은 요란한 홍보전략 보다는 작품이 가지는 콘텐츠로서의 가치와 작품을 본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이룬 쾌거다. <국가대표>는 본 사람들을 소위 ‘알바(기획사나 제작사, 영화 홍보사 등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유저로 활동하며 작품을 알리는 홍보맨)’로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에 관객, 영화사는 물론 전문가들의 흥행 예상을 훨씬 웃돌며 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로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오로지 무주의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구색맞추기용으로 급조된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국가대표> 캐릭터의 면면 그리고 상황이 즐거울 리 없다.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 방종삼 코치(성동일 분), 국가에 버림받고 미국 신봉자가 돼버린 입양아 밥, 차헌태(하정우 분), 스키선수였지만 약물복용으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나이트클럽 웨이터 흥철(김동욱 분), 아버지의 고깃집에서 숯불을 지피고 있는 재복(최재환 분), 귀가 잘 안들리는 연로한 할머니와 조금은 모자란 동생 봉구(이재응 분)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칠구(김지석 분) 등은 영화가 칙칙해질 수 있는 요소를 분명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신만을 위하던 방 코치가 진정한 국가대표 감독으로 거듭나고, 한국을 증오하던 헌태가 결국 국가대표가 된다. 여자면 사족을 못쓰고 경기의 마지막까지 집중하지 못해 중요한 순간에 삐끗하던 양아치 흥철은 경기에 대한 집중력과 섬세함을 배우며 국가대표로서 면모를 갖춰간다. 아버지에게 ‘원수’ 혹은 ‘한심한 인생’ 쯤으로 치부되던 재복은 갈수록 단단해진다. 해체 위기나 약소국 선수에게 가해지는 불이익과 부상 혹은 죽음의 위험에도 칠구는 포기를 모르고 국가대표 자리를 지키고 그런 형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봉구는 유쾌한 반전을 선사한다. 비루하고 양아치스러운 이들이 엮이기도, 풀어가기도 하며 만들어내는 얘기는 감동적이지만 칙칙하지는 않다.


맛깔스런 연기, 역동적인 화면, 섬세한 이야기
영화 <국가대표>의 힘은 자칫 지루하거나 옹색할 법도 한 경기장면에서 역동성과 긴장감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고조된 긴장감은 보는 사람까지 참을 수 없는 울렁증을 느끼게 하고, 선수들이 점프하고 착지하는 순간 느끼는 희열과 불안감은 물론 시원함과 통쾌함을 공유한다.
김용화 감독이 밝혔듯 편집의 제1목표가 빨리 올림픽으로 가는 것이었을 정도로 스키점프 경기장면에 집중했다. 이에 캐릭터 설정이나 동기부여에 대한 섬세함이 떨어지거나 캐릭터 간의 관계설정이 성글어졌지만, 그 대가로 역동적인 경기장면을 만들어냈다. 실제 국가대표들이 스키점프를 했고, 이는 와이어캠과 크로마키, 빠른 승부와 화면구성 등을 거치며 역동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비주얼 쇼크를 이끌어냈다. 100억이 넘는 제작비와 3년이 넘는 제작기간 동안 국내 평창 세트에서 공들여 찍은 스키점프 장면은 나가노, 캐나다, 유럽 어디에도 없는 공간에서 만들어진 마법과도 같다. 스키 하나에 의지해 날아가는 순간, 그들의 희망과 행복이 100%까지는 아니어도 꽤 상당부분 와닿는 이유다.
또 다른 강점은 감동을 위해 오버할 수도 있는 장면에 코믹요소를 섞어 담백하게 풀어가거나 웃기게만 넘어갈 수 있는 장면에 감동요소를 덧칠하는 섬세한 이야기 전개다. 오롯이 감동만을 추구하지도, 코믹요소만을 부각시키지도 않는 적절한 황금배합은 관객들이 울게만 혹은 웃게만 내버려 두지를 않는다.
기상의 악화에도 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칠구가 결국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게 되고, 훈련 과정에서 단 한번 점프를 해본 동생 봉구가 대신 뛰어야 하는 상황이 그렇다. 희뿌연 안개와 거센 바람 속에 점프하는 칠구에 분노와 억울함의 눈물이, 형 대신 뛰어야 하는 봉구의 두려움에 측은함과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리고 봉구가 점프하고 착지하는 순간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오싹함, 하지만 이같은 감정들은 벌떡 일어서 환한 웃음을 짓는 봉구에 유쾌한 웃음으로의 반전을 꾀한다.
이같은 두 가지 매력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 배우들의 맛깔스런 연기다. 감동과 웃음의 경계를 산만하지 않게,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감정을 따르고 공감하게 하는 어려운 미션을 맛깔스럽게 수행한 연기자들은 영화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다
고난과 절망의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 <국가대표>는 남루한 현실에도 희망을 가지게 하는 힘을 지녔다. 흔히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들 한다. 닥치면 다 하게 돼 있다는 말도 있다. 잡지쟁이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물며 혼자 책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마감은 되고 책은 나온다는 말이 정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이 말들은 난세의 영웅이나 뛰어난 위인 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의 체험과 성공사례에서 체득되고 증명된 진리와도 같다. 비빌 언덕이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될 거라고 믿고 계속 가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설이 없어도, 아버지가 반대를 해도, 불이익을 당하고, 목숨을 걸고 뛰어야 하는 상황에도, 후보선수가 없어 모자란 동생을 사지로 내몰아야 하는 상황에도, 관료의 이기로 해체위기에 몰려도 한국의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계속 연습을 하고 스키 하나에 의지해 몸을 날린다.
극한 상황에서도 많은 국제대회에서 입상했지만 여전히 한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등록선수는 다섯 명이 전부다. 이들 중에는 소속팀도 없이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이들도 있다. 여전히 남루하고 비장한 현실이지만 그들은 기꺼이 공사장을 찾는다. 미국 선수와의 주먹다짐으로 출전 정지 명령을 받지만 기상 악화로 올림픽 출전권을 얻게 되거나 관객 수 400만을 넘기던 시기에 영화의 실제 주인공 중 한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는가하면, 500만 관객을 동원한 최근에는 선수들에 대한 다양한 후원의 손길이 이어지는 등의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화합하려 들지 않고, 서로를 보듬으려 하지 않지만 결국은 서로에게 위안 받고 동화되고 다독임을 받는다. 이 느낌을 잘 표현한 <국가대표>는 그래서 우리네 삶에 희망을 전하고, 그 자체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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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 <선덕여왕>, 그녀에게 바치는 찬사와 바람

<선덕여왕>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특히, 천명공주(박예진 분)가 천명을 다하던 8월11일 24회분의 시청률은 38.0%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본격적인 덕만(이요원 분)의 시대를 예고했다. 이는 2009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찬란한 유산> <내조의 여왕> <에덴의 동쪽> 등에 비해 빠른 상승세로, <대장금> <주몽>에 버금가는 국민드라마 탄생을 전조를 보이고 있다.
<선덕여왕>의 가장 큰 강점은 극이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고 새로운 국면을 열어간다는 데 있다. 진흥왕(이순재 분)과 미실(고현정 분)의 적과의 동침 같은 미묘한 견제는 진흥왕의 죽음으로 ‘황후’자리를 놓고 벌이는 진평왕(조민기 분), 마야부인(윤유선 분)과 미실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이후로는 천명공주와 그의 남편 용수(박정철 분)가 미실에 대적한다. 이 대결에서 용수는 목숨을 잃었고 천명은 신라 29대왕이 될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잉태하게 된다. 미실의 다양한 대립이 숨고르기를 하면서 사막의 덕만이 계림으로 넘어왔고, ‘어출쌍생, 성골남진’과 ‘계양성’의 예언으로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내던 천명과 덕만 자매의 재회로 이어진다. 이렇게 만난 천명과 덕만은 공주로, 화랑의 낭도로 살며 미실에 대적한다.


토대 다진 미실, 천명 죽음으로 최고시청률 기록
현재 <선덕여왕> 인기의 토대는 단연 황실의 가장 큰 적이자 두려움의 존재인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이다. 미실은 무서운 권력욕의 소유자이며 남성들을 압도하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정치판에서 수를 읽는 특출함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미실은 어느 사극에서 보다 강력한 라이벌로,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섬뜩한 악역임에도 극의 거의 마지막까지 주축을 이루는 인물 중 하나다. 이같은 미실 역을 소화하는 고현정의 연기는 전율을 일으키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후로 미실과 대적하며 극을 이끌었던 사람은 덕만의 쌍둥이 언니 천명공주였다. 미실 역시 황실 중 천명공주에게, 어릴 때부터 가장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곤 했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가 하면 “도망가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천명공주는 온유함과 청순함 뒤에 강직함을 품은 여장부로 하늘의 뜻이라는 이유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려는 미실과의 악전고투에 임해온 인물이었다. 그녀의 조력자는 “공주님의 화랑이 되겠다”고 맹세한 김유신(엄태웅 분)과 낭도 덕만이었다. 이같은 천명의 죽음은 덕만으로 하여금 한 나라의 공주임을 각성하고 왕이 되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된다.
천명의 죽음은 주인공 덕만 뿐 아니라 황실을 따르는 이들, 미실진영의 사람들까지도 아연실색케 하는 사건이었다. 분노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천명의 죽음으로 미실은 최대 위기를 맞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황실은 일대 최고의 기회를 맞게 된다.
사극에는 공식 비슷한 것이 있다. 특히, 흥행과 작품성 모두에 성공한 사극은 더욱 그렇다. <주몽> <대장금>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사극들은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성공해 나가는 성장기로, 주몽(송일국 분), 장금(이영애 분) 등이 주체적으로 주인공으로 설 수 있기 전까지를 이끌어주는 존재가 있다. <주몽>에는 ‘해모수(허준호 분)’가 있었고, <대장금>에는 ‘한상궁(양미경 분)’이 있었다.
이들은 주인공이 왕 혹은 궁중 최고의 요리사로 거듭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시기에 그들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꾸짖으며 보듬어주는 멘토와 같은 존재다. 이들은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대신해, 강력한 대립세력과 대립각을 유지하고 역경을 헤쳐 나가며 극 초반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죽음은 ‘희생’이라는 느낌보다는 ‘각성과 변화의 계기’가 되곤 한다. 주인공들은 이들의 죽음을 통해 왕으로써, 어의로써 각성을 하고, 의지를 다지며 진정한 주인공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들 외에도 조력자든, 라이벌이든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과 상생하고 반목하며 주인공을 여물게 한다. <주몽>에는 마리(안정훈 분), 협보(임대호 분), 모팔모(이계인 분) 등 평생동지가 있고 금와왕(전광렬 분)과 대소(김성수 분) 등의 라이벌이 있었다. <대장금>에는 강덕구(임현식 분), 정상궁(여운계 분), 연생(박은혜 분), 신익필(박은수 분), 신비(한지민 분) 등의 지인 및 스승이 있고 최상궁(견미리 분)과 금영(홍리나 분), 내의정(전인택 분)과 열이(이세은 분) 등의 대립세력이 있었다. <선덕여왕> 역시 이같은 흐름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셈이다.

신라의 왕이 될 덕만의 시대 예고
<선덕여왕>은 천명공주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천명공주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덕만의 정체성 찾기와 화랑으로서의 고군분투에 밀린 천명과 미실의 대립각이 좀 더 예리했더라면, 궁에서의 덕만이 좀 더 인화(人和)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천명과 덕만 사이에 자매로서의 애틋함을 유발할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좀 더 있었더라면 등 여러 가지다. 그 중 가장 큰 아쉬움을 자아내는 것이 유신과 덕만의 불편한 러브라인이다.
미실, 천명, 덕만으로 이어지는 극의 주요인물에 얽혀있는 <선덕여왕>의 김유신은 역사보다 몇 세대나 앞질러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한국의 3대 장군 중 하나로 꼽는 김유신이 이끄는 화랑이 5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오합지졸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넘어가자. 우직하고 충직한 장군 김유신은 “공주님의 화랑이 되겠다”던 맹세를 버리고 주군 천명에게 등을 돌렸다. 물론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전조도 없이 폭발한 애정은 시청자에게 공감도, 이해도 할 수 없게 한다. 이는 김유신이라는 인물이 지닌 우직함과 변치 않는 충정에 반하는 캐릭터에 대한 불만과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이서군의 동굴 속에서 천명의 임종을 지키던 유신의 장면은 급기야 “유신랑, 귀찮은건가?” “천명공주의 죽음을 지켜보는 미실의 표정이나 눈빛이 유신 같지 않을까” 등의 불만과 원망을 자아냈다. 이는 유신으로 출연하고 있는 엄태웅의 연기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천명의 죽음을 지켜보며 긴 시간을 함께 했던 유신보다 천명의 죽음 소식에 회한과 추모 등 복잡한 감정을 담은 “천명, 이번에는 네가 이겼구나”라는 미실의 짧은 한마디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천명의 죽음으로 1막을 마무리 지은 <선덕여왕>은 2막을 올리며 많은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도 말했듯, 새로운 인물의 투입이나 대립구도로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는 <선덕여왕>의 힘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미실과 천명이 이뤘던 적대적 구도는 덕만과 미실로 이어지고, 덕만이 자신의 사람을 얻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덕만은 충신 본연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김유신을 비롯한 화랑 알천(이승효 분), 미실의 숨겨진 아들 비담(김남진 분), 가야 마지막 왕족의 후손 월야(주상욱 분) 등의 조력자를 얻게 된다. 이후에는 천명의 아들 김춘추(유승호 분)까지 등장해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과정까지 그리게 된다.
지금까지의 파죽지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람들을 아우르며 왕으로 거듭나는 덕만의 성장과정을 충실하게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덕만은 누군가(소화, 천명 등)의 희생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도움으로 성장했고 지나친 자기애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같은 덕만이 어떻게 스스로의 능력과 세력을 키움으로써 미실에 대적하고, 황위에 오르게 될지, 그 과정이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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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 수작, <결혼 못하는 남자> 유감

리메이크 드라마가 붐을 이룬 지는 꽤 오래다. 2009년에만도 KBS2 <꽃보다 남자>, MBC <공포의 외인구단>, MBC <종합병원> 등이 이미 종영했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중에도 SBS의 <스타일>, KBS2 <결혼 못하는 남자(이하 결못남)>, MBC <탐나는도다>, MBC <친구, 우리들의 전설> 등이 리메이크 작이다. 리메이크는 흥행에 대한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원작의 강렬함이나 캐릭터, 배우 등과의 비교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작을 그대로 따르자니 한국 시청자에게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고 변형을 하자니 원작 팬들의 원성이 걸린다. 결국 리메이크는 늘 딜레마의 연속이다.


<결혼 못하는 남자> : 캐릭터의 아쉬움, 스토리의 설득력
지난 4일 막을 내린 <결못남>은 아베 히로시 주연의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 작이다. 일본의 <결못남>은 아베 히로시라는 배우의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베 히로시는 ‘굴욕 연기의 달인’이라 명명해도 좋을 정도로 괴팍한 40대 싱글남 쿠에노 신스케와 하나가 돼 시청자를 포복절도하게 했고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았다.
원작에 충실했던 <결못남>의 리메이크는 캐릭터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자연스러운 괴팍함과 굴욕 연기를 하기에 지진희의 이미지는 약하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아베 히로시의 연기를 지나치게 따르는 느낌도 지울 수 없어, 그렇지 않아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오히려 사랑하는 문정(엄정화 분)을 만나면서 변화된 모습이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엄정화가 연기한 문정은 차분하고 푸근함을 주던 나츠미(나츠카와 유이)와는 달리 여성스럽고 어른스럽지만, 순간 아이같은 순수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 소녀같은 문정으로 인해 재희와의 연애가 더 달콤하고 예뻐보인 것은 사실이다. 캐릭터 표현이 약했던 반면 원작에서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던 ‘사랑’ 이야기를 강화했다.
까칠하고 예민하고 화합을 모르는 조재희가 닭살 돋는 멘트를 날리고 이성을 잃고 본능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그렇게 싫다던 아이까지 감수할 결심을 하게 하는 것은 분명 사랑이다. 괴짜 캐릭터와 이를 통한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는 데는 일본 원작에 비해 부족한 느낌이지만 사랑은 물론 주변인과의 관계, 살아가는 이야기에 중점을 두며 한국 드라마의 특징 잘 살렸다. 이에 <결못남>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미묘하게 한국적인 느낌을 살려냈다.
극이 진행될수록 재밌다는 호평을 받기는 했지만, 꽤 잘 만드어진 리메이크 수작 <결못남>은 결국 10%에 못미치는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시청률 40%를 위협하는 강적 <선덕여왕>을 만난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다른 원인은 ‘조재희’라는 캐릭터다. 시청자들은 이해도 공유도 되지 않는 40대 남자의 모습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원작의 결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보다 세심하고 깊은 고민이 아쉽다.

창의적 재해석 여전한 숙제로 남아
성공한 리메이크 작으로는 <하얀거탑>을 꼽는다. 일본 특유의 지나치게 사실적이면서 과장된 극중 인물들은 보다 강렬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한국과는 다른 일본 의학계 시스템의 한국화, 고도의 심리전, 선명하게 대비되기도, 그 경계가 모호하기도 한 선과 악 등 캐릭터와 스토리 강화 모두에 충실하면서 한국화에 성공한 예다. 이를 원작에 대한 ‘창의적 재해석’이라고 한다면 이는 리메이크의 영원한 숙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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