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하는 한국 드라마 시스템의 현주소

바야흐로 만능 엔터테이너, 멀티 플레이어의 시대다. 가수가 연기를 하고 예능 프로그램의 MC를 보고 탤런트가 앨범을 발표해 가수로 활동하는가 하면 배우들이 작가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느 한 산업분야의 독자적인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한 울타리로 모여드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로 향하는 가수들, 끊임없는 논란
가수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 역시, 음악시장의 하락세와 드라마 제작비 상승 및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구 등이 맞물리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음악이라는 콘텐츠의 가치가 떨어지니 가수활동 만으로는 단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시장 자체도 좋지 않으니 가수들이 활동영역을 넓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드라마 산업 역시, 이전처럼 방송사에서 100% 제작비를 충당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방송사에서 일부, 나머지는 투자유치든 PPL이든 제작사에서 충당해야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드라마 제작비는 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광고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드라마의 완성도와 창작을 거의 대부분 책임지는 역량있는 작가군은 한정돼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작가 뿐 아니라 연기자들 역시, 흥행이나 연기력이 담보된 연기자들은 소수에 불과해 캐스팅은 전쟁을 방불케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작가료와 출연료 역시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고 있다.
다각도로 치고 들어오는 변수에 몰릴대로 몰린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수려한 외모와 이미 확보된 팬층, 신선한 느낌을 지닌데다 출연료도 비교적 높지 않은 가수나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연기력과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편견에 대한 부담을 감수한다는 전제 하에서의 얘기다.
<꽃보다 남자> 김현중, <드림> 손담비 등은 드라마 시작과 동시에 보란듯이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하물며 몇 편의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연기를 했던 성유리, 윤은혜 등은 지금까지도 드라마를 시작할 때마다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곤 한다. 그 흥행 성공률 역시 그리 높지는 않다. <풀하우스> <상두야 학교가자>의 정지훈, <궁> <커피프린스>의 윤은혜, <불새> <신입사원>의 문정혁, <꽃보다 남자>의 김현중 등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정지훈은 드라마 판을 거의 떠났고, 문정혁은 군대복무 중이고, 윤은혜도 최근작 <아가씨를 부탁해>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논란이라기보다 비판에 가까운 가수 출신 연기자에 대한 평가에도 가수들의 연기자 데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물며, SBS는 아이돌 그룹의 이야기를 다룬 <미남이시네요>를 편성하기도 했다. 출연 뿐 아니라 드라마의 소재로 선택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 방송중인 <태양을 삼켜라(핑클 성유리)> <아가씨를 부탁해(베이비복스 윤은혜)> <지붕 뚫고 하이킥(슈가 황정음)> <맨땅에 헤딩(동방신기 유노윤호)> <드림(손담비)> <멈출 수 없어(이지훈)> 등에는 현직가수, 혹은 가수출신의 연기자가 출연하고 있다. <아이리스(빅뱅 탑)> <미남이시네요(FT아일랜드 이홍기)> <추노(god 데니 안)> <파라다이스 목장(동방신기 최강창민)>, 한류 프로젝트 드라마 <슈퍼스타(god 손호영, SS501 김형준, 신화 전진 등)> 등 라인업된 드라마 역시 가수들이 캐스팅된 상태다.


동방신기 리더 정윤호의 <맨땅에 헤딩>
<혼>의 후속작인 수목 드라마 <맨땅에 헤딩>은 동방신기의 리더 정윤호의 연기 데뷔작으로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안하무인 좌충우돌하는 천재적인 축구선수 차봉군의 인생역정, 그리고 초짜 에이전트 강해빈과의 톡톡 튀는 연애가 주내용인 <맨땅에 헤딩>은 기획단계부터 탄탄한 대본과 <네 멋대로 해라> <나는 달린다> 등 독특한 감성 표현에 탁월한 박성수PD의 작품이라는 데 많은 기대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맨땅에 헤딩>은 원래 주인공이었던 김래원의 갑작스런 입대로 기존 캐스팅이 전면 백지화됐고, 제작비 투자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에 SM엔터테인먼트가 공동제작사로 나서 10억 원을 투자하면서 정윤호와 아라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이는 시아준수·영웅재중·믹키유천이 소속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로 <맨땅에 헤딩>은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결과를 놓고 보자. 연기를 하고 있음을 강변하는 듯한 정윤호의 연기, 여전히 <반올림>의 옥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라, 그 둘이 엮어 내는 소위 ‘오글거리는’ 신들이 두 신인 연기자의 연습장처럼 느껴진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윤여정, 박순천, 임채무, 김혜옥 등 관록있는 배우들의 호연도, 꽤 쟁쟁한 연기자들을 동하게 했던 완성도 높은 대본도, <네 멋대로 해라> <나는 달린다> 등 독특한 캐릭터와 감성으로 승부하는 PD의 연출력도 아직까지는 소용없어 보인다.
개연성도, 신선함도 떨어지는 인물과 인물의 관계설정과 진척, 장면들, 작위적인 상황설정과 대사 등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공감하기 어렵게 하고, 스토리 전개 역시 어색하게 한다. 여기에 뚝뚝 끊기는 듯한 편집까지, 1, 2회를 방송한 <맨땅에 헤딩>은 드라마의 중요 요소들이 삐거덕거리는 느낌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시청률 역시 5.6%에 그치고 있다. ‘80만 회원’의 동방신기 팬클럽을 운운하며 <맨땅에 헤딩>이라는 드라마 제목을 활용한 비아냥이 난무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SM엔터테인먼트는 <맨땅에 헤딩> O.S.T에 소녀시대의 태연·써니가 참여하고, 극중에 유리가 포스터로 깜짝 출연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있다.

<맨땅에 헤딩>의 총체적 난국,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현실
<맨땅에 헤딩>의 총체적 난국은 현재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언제나 드라마, 특히 미니시리즈는 주인공 한두 명의 상품성과 스타성, 혹은 연기력에 의존한다. 주인공에게 그것이 부족하다면 이를 상쇄할만한 캐스팅이나 스토리를 준비한다. 작가 한 사람의 창작력과 역량에 따라 드라마의 완성도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작비를 투자한 기업이나 개인은 캐스팅, 대본, O.S.T 등 대부분의 요소에 관여하려고 한다. 흥행 성적이 안좋거나 이슈화가 안된다면 그 ‘관여’는 더욱 심해진다. 급기야 강력하게 대본수정을 요구하고 주요 연기자가 중도하차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를 잘 아우르거나 이끌어갈 수 있는 PD, 독특한 연출력이나 감각적인 편집은 연기가 부족한 연기자들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을 때, 혹은 대본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안전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의 <맨땅에 헤딩>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불안한 드라마, 음악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시장 상황, 천정부지로 치솟는 출연료·작가료를 포함한 제작비 충당마저 어려운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 아무리 흥행에 성공해도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 등이 만들어낸 현실이 바로 <맨땅에 헤딩>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맨땅에 헤딩>의 총체적 난국이 안타까운 이유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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