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유있는 역주행, 힘내라! <국가대표>

2009년 1월부터 8월23일까지, 1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한국 16개, 미국 11개, 중국·영국영화가 각 한 작품이다. 특히, 한국영화는 2008년 동기대비 관객 수 및 매출이 15~20% 증가한 수치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에 걸쳐 개봉한 <과속스캔들>의 총 관객동원수(828만298명) 중 2009년 성적만 따져도 390만, 2009년 총 박스오피스 10위권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2009년 박스오피스 상위 5개 작품 중 두 개가 7월 개봉작이다. 2009년 최초 1천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해운대>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국가대표>다. 이 중 개봉 3주차부터 박스오피스 선두를 지키고 있는 <국가대표>의 역주행이 눈에 띈다. ‘한국 최초의 재난영화’이자 설경구·하지원·박중훈·엄정화 등 스타가 대거 투입된 <해운대>의 물량공세와 방학시즌을 맞아 매주 개봉하는 신작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줄어든 스크린 수에도 <국가대표>는 빛을 발하고 있다.

입소문으로 역주행 쾌거
보통의 흥행작들은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1·2주차에 많은 관객을 동원하다 개봉 3·4주차부터 관객 수가 줄곤 한다. 반면, <국가대표>는 오히려 3주차부터 관객 수가 증가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가히 ‘역주행’이라 할 만하다. 또한 이같은 역주행은 요란한 홍보전략 보다는 작품이 가지는 콘텐츠로서의 가치와 작품을 본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이룬 쾌거다. <국가대표>는 본 사람들을 소위 ‘알바(기획사나 제작사, 영화 홍보사 등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유저로 활동하며 작품을 알리는 홍보맨)’로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에 관객, 영화사는 물론 전문가들의 흥행 예상을 훨씬 웃돌며 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로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오로지 무주의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구색맞추기용으로 급조된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국가대표> 캐릭터의 면면 그리고 상황이 즐거울 리 없다.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 방종삼 코치(성동일 분), 국가에 버림받고 미국 신봉자가 돼버린 입양아 밥, 차헌태(하정우 분), 스키선수였지만 약물복용으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나이트클럽 웨이터 흥철(김동욱 분), 아버지의 고깃집에서 숯불을 지피고 있는 재복(최재환 분), 귀가 잘 안들리는 연로한 할머니와 조금은 모자란 동생 봉구(이재응 분)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칠구(김지석 분) 등은 영화가 칙칙해질 수 있는 요소를 분명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신만을 위하던 방 코치가 진정한 국가대표 감독으로 거듭나고, 한국을 증오하던 헌태가 결국 국가대표가 된다. 여자면 사족을 못쓰고 경기의 마지막까지 집중하지 못해 중요한 순간에 삐끗하던 양아치 흥철은 경기에 대한 집중력과 섬세함을 배우며 국가대표로서 면모를 갖춰간다. 아버지에게 ‘원수’ 혹은 ‘한심한 인생’ 쯤으로 치부되던 재복은 갈수록 단단해진다. 해체 위기나 약소국 선수에게 가해지는 불이익과 부상 혹은 죽음의 위험에도 칠구는 포기를 모르고 국가대표 자리를 지키고 그런 형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봉구는 유쾌한 반전을 선사한다. 비루하고 양아치스러운 이들이 엮이기도, 풀어가기도 하며 만들어내는 얘기는 감동적이지만 칙칙하지는 않다.


맛깔스런 연기, 역동적인 화면, 섬세한 이야기
영화 <국가대표>의 힘은 자칫 지루하거나 옹색할 법도 한 경기장면에서 역동성과 긴장감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고조된 긴장감은 보는 사람까지 참을 수 없는 울렁증을 느끼게 하고, 선수들이 점프하고 착지하는 순간 느끼는 희열과 불안감은 물론 시원함과 통쾌함을 공유한다.
김용화 감독이 밝혔듯 편집의 제1목표가 빨리 올림픽으로 가는 것이었을 정도로 스키점프 경기장면에 집중했다. 이에 캐릭터 설정이나 동기부여에 대한 섬세함이 떨어지거나 캐릭터 간의 관계설정이 성글어졌지만, 그 대가로 역동적인 경기장면을 만들어냈다. 실제 국가대표들이 스키점프를 했고, 이는 와이어캠과 크로마키, 빠른 승부와 화면구성 등을 거치며 역동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비주얼 쇼크를 이끌어냈다. 100억이 넘는 제작비와 3년이 넘는 제작기간 동안 국내 평창 세트에서 공들여 찍은 스키점프 장면은 나가노, 캐나다, 유럽 어디에도 없는 공간에서 만들어진 마법과도 같다. 스키 하나에 의지해 날아가는 순간, 그들의 희망과 행복이 100%까지는 아니어도 꽤 상당부분 와닿는 이유다.
또 다른 강점은 감동을 위해 오버할 수도 있는 장면에 코믹요소를 섞어 담백하게 풀어가거나 웃기게만 넘어갈 수 있는 장면에 감동요소를 덧칠하는 섬세한 이야기 전개다. 오롯이 감동만을 추구하지도, 코믹요소만을 부각시키지도 않는 적절한 황금배합은 관객들이 울게만 혹은 웃게만 내버려 두지를 않는다.
기상의 악화에도 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칠구가 결국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게 되고, 훈련 과정에서 단 한번 점프를 해본 동생 봉구가 대신 뛰어야 하는 상황이 그렇다. 희뿌연 안개와 거센 바람 속에 점프하는 칠구에 분노와 억울함의 눈물이, 형 대신 뛰어야 하는 봉구의 두려움에 측은함과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리고 봉구가 점프하고 착지하는 순간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오싹함, 하지만 이같은 감정들은 벌떡 일어서 환한 웃음을 짓는 봉구에 유쾌한 웃음으로의 반전을 꾀한다.
이같은 두 가지 매력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 배우들의 맛깔스런 연기다. 감동과 웃음의 경계를 산만하지 않게,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감정을 따르고 공감하게 하는 어려운 미션을 맛깔스럽게 수행한 연기자들은 영화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다
고난과 절망의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 <국가대표>는 남루한 현실에도 희망을 가지게 하는 힘을 지녔다. 흔히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들 한다. 닥치면 다 하게 돼 있다는 말도 있다. 잡지쟁이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물며 혼자 책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마감은 되고 책은 나온다는 말이 정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이 말들은 난세의 영웅이나 뛰어난 위인 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의 체험과 성공사례에서 체득되고 증명된 진리와도 같다. 비빌 언덕이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될 거라고 믿고 계속 가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설이 없어도, 아버지가 반대를 해도, 불이익을 당하고, 목숨을 걸고 뛰어야 하는 상황에도, 후보선수가 없어 모자란 동생을 사지로 내몰아야 하는 상황에도, 관료의 이기로 해체위기에 몰려도 한국의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계속 연습을 하고 스키 하나에 의지해 몸을 날린다.
극한 상황에서도 많은 국제대회에서 입상했지만 여전히 한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등록선수는 다섯 명이 전부다. 이들 중에는 소속팀도 없이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이들도 있다. 여전히 남루하고 비장한 현실이지만 그들은 기꺼이 공사장을 찾는다. 미국 선수와의 주먹다짐으로 출전 정지 명령을 받지만 기상 악화로 올림픽 출전권을 얻게 되거나 관객 수 400만을 넘기던 시기에 영화의 실제 주인공 중 한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는가하면, 500만 관객을 동원한 최근에는 선수들에 대한 다양한 후원의 손길이 이어지는 등의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화합하려 들지 않고, 서로를 보듬으려 하지 않지만 결국은 서로에게 위안 받고 동화되고 다독임을 받는다. 이 느낌을 잘 표현한 <국가대표>는 그래서 우리네 삶에 희망을 전하고, 그 자체로 희망이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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