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가본 퀴어 파티
벌써 5년 전의 일이군요
여자를 사랑하게 될까봐 무섭다느니...
여자가 작업걸어오면 어쩌냐느니...이럼서
아무도 같이 안가줘서(선배~ 조심해~란 말만 ㅡㅡ) 혼자 갔었다죠
무경계팽창 에너지라는 클럽에서 벌어졌던...이 파티는...
너무나 보통사람들 같은 그들 때문에, 더욱 낯설었던 이벤트였답니다
드렉퀸(남장여자) 쇼도 있었구요
중간에 한 남자의 스트립쇼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심하게 뛰어야할 심장이 너무 나태해져버렸다는 겁니다
나중엔 너무 경계심이 없어져 그대로 퍼져 버렸다죠^^;;;
이에 대한 자세한 감상은 맨 아래있는 기사 다운로드로 확인하세요~



무경계 벽 시리즈 1



무경계 벽 시리즈 2



무경계 벽 시리즈 3



무경계 벽 시리즈 4

위에 벽 시리즈에 투영된 것이 저 알록달록한 조명들이라죠
저 아래서 어찌나 신나게 춤을 추는지
콘돔 풍선도 날아다니고 여여, 남남 커플이 키스를 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아무래도...ㅋㅋㅋ



그날 참 장식들이 이뻤어요
퀴어를 뜻하는 듯한 하트 안에 동성 커플 있는 조형물도 이뻤고
알록달록 색동 조명도 넘넘 이뻤답니다



마구 흔들리니까 어찌나 이뿌고 몽환적이던지



전경...신나게 춤추고 있는 파뤼 피프~~~ㄹ



참으로 이뿐 무경계 조명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모빌~
이것이 바로 위에 있는 무경계 벽 시리즈의 실체^^



휘청거리는 청춘...휘청거리는 조명들...휘청거리는 헐키^^

2004.08.28 by hurlkie by canon ixus400

[ 7days Culturescope : 퀴어파티 참관기, What's Up in Queer Party ]

mur mur...
파티가 있었던 무경계팽창에너지는 서교동,
서교호텔 위쪽...배 모양으로 생긴 건물 뒤에 위치하던 클럽입니다
온돌로 돼 있어 맨발로 아래, 위층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특이한 구조인데요
이같은 퀴어파티 뿐 아니라...인디 밴드들의 공연,
티베트 미술가의 전시, 가면무도회 등 다양한 이벤트로
많은 사람들, 문화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그런 곳이었죠
이때도 보일러 값이 만만치 않아 허덕대고 있더니...
결국은 문을 닫았다죠
무경계는 문을 닫았지만..우리...가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밀어내려고만 하는...
그들은..여전히 어딘가에서 즐겁고 유쾌한 한 때를 보내고 있겠죠?
때로는 섹시하고...때로는 퇴폐적이고..때로는 절망하면서..
우리랑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끼고..사랑을 하면서 말이죠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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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ice 2009.06.10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4년쯤마지막으로 가보고 못가봤는데
    문닫았군요 ㅠㅠ
    문득 생각이났는데 아쉽네요
    거기 좋았는데..따뜻한바닥도..

  2. hurlkie 2009.06.11 1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아쉽죠...얼마 전에 가보니 지금은 무슨 바가 있더군요
    좋은 공연, 이벤트, 파티 등을 선보여서...참 좋아한 공간이었는데요
    님도 아시는군요^^
    같이 아쉬워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니 반갑습니다~~

  3. 지성의 전당 2019.02.28 1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무경계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겼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책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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