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논란, 한국 가요계의 서글픈 자화상

또 표절시비다. 고질병처럼 새로운 음반이 나올 때마다 표절시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솔로앨범을 발표한 빅뱅의 지드래곤이 표절논란에 휩싸였다. 10곡 중 무려 4곡, ‘Heartbreaker’ ‘Butterfly’ ‘The Leaders’ ‘Hello'가 각각 빌보드의 유명 힙합 뮤지션 Flo Rida의 ‘Right Round’, 최근 주축 멤버인 갤러거 형제 중 형 노엘이 탈퇴를 선언한 영국 밴드 Oasis의 ‘She's Electric’, 2009년을 강타했던 소녀시대의 ‘Gee', 힙합 듀오 다이내믹 듀오의 ’솔로‘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대세’와 ‘표절’은 다르다
Flo Rida의 ‘Right Round’와 Oasis의 ‘She's Electric’의 저작권 지분을 가지고 있는 워너채플뮤직과 소니ATV뮤직퍼블리싱은 해당곡들의 유사성을 인정하고 원저작자에게 음원을 보내놓고 회신을 기다리는 중이다. 지드래곤의 표절여부에 대해 “2소절(8마디) 이상을 베껴야 표절이다. 그것도 모르면서 전문가인양 함부로 ‘표절’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거나 “원저작자도, 국내에서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곡가들도 아무 말 없는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하곤 한다.
함부로 ‘표절’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된다는 말은 분명 옳다. 하지만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전문가지만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일반 시청자다.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는 전문가인 셈이다. 음악을 듣는 전문가는 음악 팬인 것처럼 말이다. 무조건 표절이라고 우기는 이들이 옳다는 건 아니다. 듣는 이에 따라, 어떤 면에 집중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표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지드래곤의 ‘Hello'가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솔로’의 원저작자 다이내믹 듀오도 표절 여부를 ‘듣는 사람들의 몫’으로 돌렸을 것이다. 이에 ‘창조’와 ‘모방’의 경계가 모호해진 요즘, 표절을 논하기란 더욱 까다로워졌다.
때로는 “전체적으로 비슷할 뿐 표절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표절이 아닌 곡이 없다” 혹은 “한 부분에만 집중하지 말고 전체적으로는 들어보라. 전혀 다르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물론, 시대를 풍미하는 대세는 있다. 록, 힙합, 발라드 등 각 장르별 리듬 패턴이나 플로 역시 있게 마련이다. 국내 음악시장의 수익구조가 모바일로 편중되면서 핸드폰 벨소리나 컬러링 등에 활용되기 쉬운 멜로디와 반복되는 가사·리듬으로 구성된 일명 ‘후크송’이 난무했다.
도입부에 강렬한 사운드나 비트를 배치해 단숨에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는 곡들은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지 표절이라 할 수 없다. 최근 몇 년 간의 대세는 ‘Gee Gee Gee Gee Baby Baby Baby' ‘Sorry Sorry Sorry Sorry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미쳐 미쳐 미쳐 Baby’ ‘에에에에에에에에 2ne1' 'I Don't Care 에에에에에’ 등 한 단어나 구절이 반복되는 노래다. 하지만 이같은 ‘대세’를 따르는 것과 ‘표절’은 엄연히 다르다.
이번 지드래곤의 표절논란 곡 중 ‘Right Round'와 ’Hello'의 장르는 힙합이다. 샘플링 스킬을 쓰는 힙합 곡에서 중요한 것은 라임과 플로다. 라임이란, 언어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어로 따지면 자음 하나, 모음 하나 혹은 음절 하나의 각운과 운율을 맞추는 것이다. 플로란 속도, 리듬, 음의 고저, 끊기, 강약의 조화 등 랩이 흘러가는 모양새를 뜻한다. 힙합 뮤지션은 특유의 라임과 플로로 다른 뮤지션과 차별되는 개성과 고유성을 확보하곤 한다.
단편적으로 다이내믹 듀오 ‘솔로’의 ‘솔로 솔로 있고 싶어 난 홀로 홀로 / 솔로 솔로 오늘부터 난 홀로 홀로 / 솔로 솔로 있고 싶어 난 홀로 홀로 / 솔로 솔로 오늘부터 난 홀로 홀로’ 부분과 지드래곤 ‘Hello'의 ‘Hello 섹시가이도 Hello 핸섬보이도 / Hello Hello 먼저 말걸어준다면 / Hello 도도한걸 Hello 귀여운걸 / Hello Hello 저기 잠깐만요 Say Hello’ 부분이 비슷한 라임과 플로를 따르고 있다는 의혹은 그래서다.
지드래곤의 솔로 앨범은 표절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앨범 발매와 동시에 지상파·케이블은 물론 앨범·다운로드·스트리밍·모바일 등 모든 차트를 석권했다. 지드래곤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는 ‘앨범 발매 4일만에 10만 장을 넘게 팔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 음악 프로그램은 지드래곤 컴백 무대로 7% 정도의 시청률이 상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좋은 선례로 남았다. 표절논란이 반드시 흥행의 걸림돌로 작용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도덕성의 흠집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안이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의 성공으로 이어진 셈이다. 표절 구설수에 올라 이런 행복을 맛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유혹이 스멀거릴만하지 않겠는가. 최근의 ‘표절’은 더 이상 창작자로서의 도덕성 흠집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자의든, 타의든 마치 음반 홍보를 위한 마케팅 도구처럼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서글픈 한국 가요계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표절, 법적 문제 아닌 도덕성의 문제
음악인 배철수는 지난 8월31일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최근 지드래곤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가요계 표절시비에 대해 “음악하는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데도 우리는 표절에 대해 너무 무감각하고 일상화됐다”고 일침을 가했다. 꼬집었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도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은 남들과 다르게 나만의 것을 창조한다는 자존심”이라고 강조하고 “쉽게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사이비들의 시대”라고 현 가요계를 비판했다.
더 이상 표절은 2소절 이상을 똑같이 베꼈느냐를 가늠하는 법적인 문제나 판정의 문제가 아니다. 창작자로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도덕성과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 문제인 것이다.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소설이나 정지영 감독의 동명 영화를 보자. 영화를 너무도 사랑하던 병석이 평생을 걸고 완성한 시나리오, 완벽한 구성과 치밀하고 세련된 대사 등으로 영화사 만장일치로 제작이 결정되고 세인의 주목을 한눈에 받는다. 하지만 그 시나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행해진 표절과 짜깁기로 인한 할리우드 영화의 집합체였다. 제작자도, 투자사도, 감독도, 하물며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 정교한 패러디와 짜깁기는 충무로에서 엄청난 환영을 받았었다. 스스로가 무의식에서 표절과 짜깁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창작자 병석의 심정은 참담함과 수치, 분노와 서글픔 등 하나의 감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의지가 있었든, 무의식이었든 표절논란에 휩싸여 활동을 중단하거나 자해소동을 벌이거나 은퇴를 발표하곤 했던 이전의 가수들 역시 이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지드래곤을 포함해 표절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가수들 역시 마냥 좋아하고만 있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직까지 우리 가요계에 희망이, 그리고 도덕성이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는 상상만으로도 한국 음악의 미래는 암흑일테니 말이다.
지금 당장의 표절문제도 심각하지만 이같은 논란을 허투루 넘겼을 때의 결과는 몇 년 후에야 나타난다. 불법 다운로드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하물며 이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몇 년 후에 앨범시장의 몰락을 맞았다. 앨범시장이 어려워지고 모바일 수익이 오르면서 후크송이 난무할 때도, 수익은 올랐지만 음악은 진정한 소모품이 돼 버렸다. 갈무리가 필요 없는, 핸드폰 벨소리와 컬러링을 위해 자르고 붙여도 별 문제없는 노래들로 넘쳐났다. 표절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같은 시행착오가 무의미하게 반복된다면 음악을 듣는 이는 물론, 음악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음악 자체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표절 논란에 “또 시작이군”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거나 아예 무관심해질 수도 있다. 콘텐츠로서 음악의 가치는 점점 하락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표절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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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질테다...내 마음대로...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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