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기적 발상과 유쾌한 비틀기, 전반부까지만…


발상은 기발하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아닌 방자와 성춘향이다. <춘향전>을 재해석한 <방자전>은 배용준․전도연․이미숙의 은밀한 로맨스를 다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를 쓰고, 2006년 한석규․김민정 주연의 <음란서생>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했던 김대우 감독의 신작이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처럼 정절을 지키고 있는 여인의 정절을 두고 거는 내기나 <음란서생>처럼 조선시대 야설 작가는 양반이라는 획기적 발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김대우 감독의 이번 신작은 ‘춘향전’ 비틀기다.

음험한 몽룡, 도발적인 춘향, 순애보 방자


이몽룡(류승범)은 그렇고 그런 양반가의 자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에서처럼 반듯하지도 준수하지도 않다. 주색잡기에 심취한, 옷이라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으면 양반인지도 몰라볼 정도의 몰골에 권력에 한 야망도 큰 인물이다. 음험하고 계산속이 빠른 <방자전>의 몽룡은 원전의 변학도 저리가라다.
과거에 급제하지만, 암행어사의 권세가 예전만 못하다. “성공하려면 개성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승진이 빠르다”는 내관들의 귀띔에 동기생 변학도(송새벽)를 이용해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이라는 미담을 만들어낸다.
물론, 여기에는 신분상승을 꿈꾸는 춘향(조여정)의 조력이 있었다. 두 남자의 사랑, 정확히 표현하자면 한 종놈의 사랑과 사대부가 자제의 추파를 받고 있는 춘향은 원전의 춘향처럼 순애보적인 인물은 아니다.
어머니에 의해서 세뇌된 ‘신분상승’의 꿈에 꽤 집중하고 있다. 어느 날 밤, 몰래 숨어든 방자(김주혁)와 살을 섞고도 ‘이몽룡과 잘 되게 돕는다’는 서약서를 받아 챙긴다. 그리고 바로 몽룡과도 밤을 보내곤 ‘버리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아낸다.
몽룡이 과거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면서 방자에게 서약서를 훔쳐오도록 시킨 것을 안 춘향은 글을 모르는 방자에게 방자 자신의 서약서를 들려 보낸다. 결국 남원에서 방자와 꽤 정 좋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춘향은 여전히 신분 상승의 꿈을 접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과거에 급제한 이몽룡이 미끼를 던져온다. 꺾기 힘든 여인에 끌리는 변학도의 수청 명령을 거절하고 서방인 이몽룡에 대한 순정을 지키는 ‘쇼’의 여주인공이 된 것이다. 하지만 춘향은 마지막까지 영악하지도 발칙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여기 방자가 있다. 모시는 도련님 몽룡을 따라 청풍각에 갔다 춘향을 만나 첫눈에 반하고 만다. 도도하기로 소문난 춘향을 말 그대로 ‘노리고’ 있는 몽룡의 명을 받아 방자는 춘향과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나선 자리에서 춘향을 취하려 행패를 부리는 무뢰한에게서 춘향을 구해주게 된다.
이처럼 남자답고 강직한 방자는 떠내려가는 춘향의 꽃신을 건지기 위해 계곡에 몸을 던지는 섬세하고 자상한 남자이며 몽룡과 춘향이 벌이는 ‘쇼’임을 알고도 고난을 당하는 춘향을 위해 변학도에 머리를 조아리고, 절개를 지키는 순정남이다.

발칙하고 도발적인 전반부


극의 전반부는 <춘향전>을 비튼다는 발칙한 기획의도답게 유머러스하고 유쾌하며 꽤 섹시하다. 극 전반부의 한 축인 도발적이고 유쾌한 분위기를 이끄는 일등공신은 마 노인(오달수)이다. 월매가 질투에 눈이 멀어 여동생의 눈을 멀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며, 뭇 여성을 울린 작업의 고수이기도 하다.
의뭉스런 눈빛과 적절하고 절묘한 몸놀림, 교묘하게 도발하는 세치 혀, 병석에 누워서도 멈추지 않는 음담패설은 마치 속궁합이 잘 들어맞는 부부의 정사처럼 유연하게 리듬을 타며 극에 유머를 불어넣는다.
이에 방자와 마 노인의 조합은 방자와 춘향만큼이나 잘 어울린다. 방자에게 훈수를 두는 마 노인을 연기하는 오달수 특유의 유머코드는 <음란서생>에서도 발휘된 바 있는 성(性)에 대한 김대우 감독의 재치와 어우러지며 유쾌함을 선사한다.
전반부를 이끄는 한 축인 농익은 에로티시즘은 그 수위가 꽤 높은 방자와 춘향의 직접적인 정사신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상징과 함축으로 표출된다. 신음소리와 춘향의 몸종 향단(류현경)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몽룡과의 정사나 정사신 뒤에 이어지는 하얀 막걸리가 튀는 장면, 고기의 맛과 식감에 대한 대화 등은 은근하고도 고단수의 성적 표현이다.
이처럼 유쾌하면서도 발칙하고 도발적인 이 전반부까지 방자와 춘향, 그리고 몽룡의 캐릭터는 꽤 매력적이고, 각자 살아 움직이며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장르의 반전, 블랙코미디?


뛰어난 영상미와 도발적이고도 파격적인 성 코드,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 등으로 기발한 발상을 영상화시키던 극은, 몽룡이 과거에 급제를 하면서 어쩐 일인지 블랙코미디로 급변한다.
이 시점부터 방자와 함께 지내며 연애에 대한 훈수를 두던 작업고수 마 노인, 그와 얽힌 사연의 또 다른 주인공 월매와 그녀의 여동생, 쉽게 달아오르는 몸종 향단 등 꽤 위트 넘치던 인물들은 자취를 감추거나 방자를 잊지 못해 몽룡에게 몸을 던지는 무모한 인물로 변모한다.
몽룡은 과거에 급제하지만 내관들에게도 머리를 조아려야하는 허울만 좋은 ‘암행어사’ 신세다. 미담만으로 고속승진이 이뤄지는 시대라니, 참으로 시니컬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몽룡은 “그저 여자가 최고”라는 과거 급제 동기인 변학도를 자극해 춘향에게 보낸다. 그리고 춘향을 불러내 윈-윈 전략을 설파한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가벼운 웃음과 위트 넘치는 풍자를 버리고 음울해진다. 진정으로 춘향을 핍박하는 변학도에 방자는 그저 무릎을 꿇고 빌 뿐이다. 춘향이 모두 ‘쇼’라고 귀띔을 해주었어도, 춘향을 살려달라고 빌다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춘향을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묵직한 분위기에서도 살아 숨 쉬며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변학도다. 세상에서 좋은 것은 오롯이 여자뿐인, 오기와 승부욕이 발동해 춘향을 괴롭히며 가학적인 성행위를 즐기는 변학도는 의외로 꽤 자주적인 인물이다.
춘향처럼 몽룡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게 아닌가 했지만, 몽룡은 변학도의 승부욕을 자극했을 뿐 모든 행동은 변학도가 자처한 것들이다. 춘향과 방자는 물론 몽룡까지 지나치게 진지한 가운데 변학도만이 고군분투하며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변학도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중반부의 음울함을 상쇄하기에 역부족이다.
결국, 춘향과 몽룡의 ‘쇼’는 대흥행을 하고 두 사람은 혼인을 하게 된다. 혼인을 통해 춘향은 신분상승의 꿈을 이뤘고, 몽룡은 미담의 주인공이 돼 고속승진을 하게 된다. 춘향과 몽룡의 전략적 제휴에 속이 썩어 들어가는 이가 있으니, 바로 방자다.
방자는 여전히 춘향과 몽룡의 몸종으로 지내며 두 사람 곁을 지키고 있다. 참으로 눈물겨운 순정과 절개가 아닐 수 없다. 원전의 춘향이 방자에게로 고스란히 전이된 느낌이다. 계곡 위에서 공놀이를 하던 중 의도된 행동이든 실수로든 몽룡은 춘향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승진을 위해 손을 잡기는 했지만, 왠지 발목을 잡힌 듯한 기분이 강했을 몽룡에게는 분명 ‘그러고자’ 했던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이에 방자는 절벽 아래 계곡물에 죽은 듯 떠 있는 춘향을 들쳐 업고 어딘가로 자취를 감춰버린다. 춘향과 방자가 공모한 쇼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듯 했다.

방자와 춘향의 비극적 사랑이야기


하지만 블랙코미디는 갑작스레 비극적 사랑을 노래하는 눈물 나는 로맨스로 전환된다. <방자전>의 반전은 이야기가 아닌 장르에서 이뤄진다.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 풍자극에서 블랙코미디로, 그리고 슬픈 순애보로 장르는 극 마지막까지 전환된다.
‘이서방’이라 불리는, 장안에 소문난 재력가 방자가 책을 내고 싶어 작가(공형진)를 만나면서 시작한 <방자전>은 방자의 슬픈 순애보로 마무리 짓는다. 계곡에서 추락한 후, 어린아이가 돼 버린 춘향의 곁을 지키며 살아온 방자는 작가에게 “진짜 이야기가 아닌 춘향이 꿈꾸던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책에서라도 제대로 된 양반집 도련님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신분 상승을 이루기를 바라는 방자의 애틋한 정이 묻어난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뭐든 등장만 시켜 달라”는 방자는 춘향을 업고 ‘사랑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이 넘치는 사랑가는 정신을 놓친 춘향을 업고 방자가 읊조리는 한탄과도 같은 슬픈 사랑노래다. 그리고 <춘향전>은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인 춘향이 꿈꾸던 삶을 소설로라도 실현시키기 위한 방자의 애가인 셈이다. <춘향전>이라는 미담을 거짓이며 사기라고 조소하고 풍자하던 <방자전>이 급작스레 미담으로 회귀한 것이다.

어설픈 장르의 반전으로 발상의 빛이 바라다


<방자전>은 풍자극에서 블랙코미디로, 또다시 비극적 로맨스로 장르가 변모해 간다. 문제는 그 전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데 있다. 마치 여기까지는 웃기고, 여기부터는 사회를 비판하고, 이 부분부터는 로맨스라고 누군가 명확하게 선을 그은 느낌이다.
자연스러운 리듬을 타고 전이되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춘향전’을 중심에 두고 옴니버스식으로 풀어간 작품이라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 같은 어설픈 장르의 반전은 초반 살아 숨 쉬던 주요 캐릭터들을 잠재운다.
전반부 이후부터 생기를 잃고 있는 듯 없는 듯 하던 방자는 보다 대담한 풍운아여도 좋았을 것이다. 몽룡이 보다 비열하고 계산적인 인물로 그려지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 마치 신분제도의 희생양 혹은 양반 자제에 놀아난 기생의 딸로 전락한 춘향이 보다 발칙하고 영악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전반부만큼만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었다면 발칙하고도 과감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발상은 극대화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유는 전반부,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쉬고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만들어내던 농익은 해학과 은밀한 에로티시즘, 그리고 그 속에서 뭉근하게 배어 나오는 기분 좋은 비틀기와 유쾌함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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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Enter Vol. 46

Blog+Enter 2010.06.12 11:14


blog+enter 마흔여섯 번째 간행물입니다
지방선거가 있던 주여서 인지 개표방송 말고는 큰 이슈가 없는 호입니다.
Hurlkie's Enter-note에는 춘향전을 비튼 <방자전>에 대한 이야기 있습니다.

이제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이 개막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떨까 궁금하고 설레면서도...
밤샐 생각하면 또 아찔합니다.ㅡㅡ;;
그래도 설레는 마음이 훨씬 크긴 합니다.^^

오늘은 드디어 한국의 첫 경기인 그리스전이 있는 날입니다.
최초의 단독 중계인데...어떨까 모르겠습니다.
SBS가 드라마나 예능 등이 결방하거나 시간대를 바꾸어 방송하니
시청률 전체에 영향을 미치긴 할 것 같습니다.

www.hurlkie.com 뿐 아니라 www.blog-enter.com으로도 blog+enter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많이 찾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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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g+Enter Vol.46 ]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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