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도 ‘아름다울’ 권리가 있는 ‘인생’이다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시되거나 무관심한 것들이 있다. 동성애, 장애인 등 나와는 다르고, 일반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불편하기만 한, 좀 심한 경우라면 불쾌하기만 한 테마들이다. 혹은 정 반대로 지나치게 열광할만한 소재기도 하다.
범죄도 아니고, 부도덕한 일도 아닌, 말 그대로 나랑 달라서 생기는 거부감이며 불편함이다. 이해의 폭이 넓어서 혹은 너그러워서 그들의 입장과 사랑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이는 내 것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이해일 가능성이 크다.
나의 이야기, 혹은 나의 가족, 내 연인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흔쾌히 받아들이고 박수를 쳐줄 수 있다. 하지만 나, 나의 가족, 내 연인의 이야기라면?


동성애자를 다루는 다른 방식
때 아닌 ‘동성애자’ 혹은 ‘동성애자로 오해받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브라운관을 장악하고 있다. MBC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에는 프로젝트를 위해 게이로 오해받고 있는 전진호(이민호)라는 인물이 나온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에서 지나치게 신중하고 진지한 것도 민폐라면 민폐다.
하지만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 사람 게이다’라고, 그것도 매우 코믹하게 아우팅하는 장면들이 지나치게 잦다. 게이의 아우팅이 웃음을 자아내는 도구가 되는 것 자체가 시청자들은 불편하다. 박개인(손예진)의 친구 영선(조은지)가 거침없이 드러내는 게이커플에 대한 호감 역시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의를 떠나, 자의에 의한 커밍아웃도 아닌 게이의 아우팅은 사회적 파장에 가깝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경계대상이 될 수도 있고, 아예 퇴출이나 범죄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코믹한 상황에 웃고는 있지만, 거북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이처럼 동성애자를 겉핥기식 트렌드로 다루는 드라마가 있는가하면, 동성애자를 다루는 방식이 진중한 드라마도 있다. 고희를 바라보는 김수현 작가의 SBS <인생은 아름다워>는 우유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현실적이다.
설정 자체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게이들의 현실적 고민에 접근해 있다. 게이임을 숨기고 결혼을 했다 아이까지 낳았지만 결국 들켜서 이혼을 하고 아우팅을 당한 김경수(이상우) 그리고 대가족의, 그것도 아버지의 재혼으로 생긴 계모의 관심과 닦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장남 양태섭(송창의)이다.
작가는 흥미 위주의 설정이 아닌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지에 대한 총체적인 얘기를 하고자 두 인물을 창조했다. 동성애자에게 있어 인생의 가장 큰 난관일 ‘결혼’이라는 갈등을 위해선지 나이도 서른 넷이다.


대가족의 맏아들 그리고 가족에게 내쳐진 외로운 장남
대가족이 있다. 아버지 양병태(김영철)와 어머니 김민재(김해숙)의 재혼으로 이뤄진 이 가정에는 할머니(김용림)가 있고 마흔을 훌쩍 넘기고도 싱글인 병태의 동생들 병준(김상중)과 병걸(윤다훈)이 있다.
병태의 아들 태섭이 있고, 민재가 데리고 들어온 딸 양지혜(우희진)가 있다. 그리고 병태과 민재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 호섭(이상윤)과 딸 초롱(남규리)이 있다. 지혜의 남편 이수일(이민우)과 딸 이지나(정다빈)가 있고, 수십년 간 이 여자 저 여자를 떠돌며 남처럼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할아버지(최정훈)도 있다.
여기에 늘 드나드는 호섭의 친구이자 다이버샵 동업자 현진(김우현), 실내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부부 박(이상훈)과 양수자(조미령), 민재의 조수 부연주(남상미)도 있다. 게다가 들며날는 펜션의 손님들도 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있다. 게이였지만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고, 이혼도 했다. 그 이혼의 이유는 ‘게이’기 때문이다. 이에 아버지와 형제들은 그 남자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도 불편해 한다. 하물며 막내 여동생은 결혼을 하기로 한 남자와 이별을 하기도 했다.
대놓고 ‘괴물’이라고 지칭하는 어머니는 툭하면 “아는 사람은 애 엄마와 그 친정뿐이니 좋은 여자 만나 정상인으로 살라”고 눈물바람이다. 때로는 목 매달아 늘어지는 꼴을 보고 싶냐고 험한 협박을 하기도 한다. 꽤 시간이 흘렀어도 단 1cm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가족들, 동성애 코드가 아닌 진짜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다.
1년 정도 사귄 태섭의 여자친구 유채영(유민)과의 관계정리를 두고 조바심을 내던 경수는 자신을 치명적인 전염병자나 연쇄살인자처럼 대하는 가족과의 대면 후 “나 혼자 짐 지고 가는 게 옳을 수도 있겠다. 정직하게 얘기해서 나도 들키지 않았다면 아마 그런저런 사기인 채로 끝났을 거야”라며 “날 포기한다해도 이해할게”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이같은 경수의 모습은 참으로 현실적이다. 하지만 이에 “채영이 놓고 그런 생각 안해본 거 아냐. 살면 살겠지. 그런데 그렇게 살면서 순간순간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 그게 더 감당 안될 거 같아. 지금도 메가폰 하나 들고 병원 복도 돌면서 ‘난 게이다’라고 외치고 싶을 때 종종 있어. 나한테 가장 큰 고통은 내가 다르게 태어난 놈이라는 거 보다 세상을 속이고 있다는 거야”라는 태섭의 답은 꽤 이상적이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경수 이전에 사귀어 본 남자도 없는 태섭이 저리도 확고하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적이다. 두 사람의 관계 측면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다.


나와는 다른, 하지만 가족 이야기의 일부
이처럼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대가족의 이야기 중 일부일 뿐이다.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이야기 진행이 급박하지도 않다. 인생이 흘러가듯 그렇게 흘러간다.
“저녁 먹었어?” “뭐 하고 있어?” “집안 분위기는 어때?” 등 극중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보통의 로맨스 드라마보다도 일상적이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노래에 대해 묻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묻고, 끼니를 챙기고, 상대를 먼저 들여보내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는 등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
함께 운동을 하고, 먼저 씻으라는 말에 긴장을 하기도 하고, 카레를 만들어 먹고, 싸운 다음 날 연락도 없이 태섭의 병원을 찾기도 한다. 경수가 집에 오는 날, 들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때때로 자연스럽게 ‘결혼을 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술에 취해 힘든 마음을 상대방의 어깨에 기대기도 하고, 서로를 품는 것으로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들은 보통의 연인들처럼 때로는 자연스럽고, 때로는 애달프고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긴장되고 때로는 민망하고 때로는 처참하다. 남녀 사이에도 갈등상황이 생기면 싸우고, 울고불고 난리통을 치르다 헤어지기도 하고, 연적에 대한 질투심을 표현하기도 하며 서로가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상황이 반복된다.
보통의 연인들과 같지만, 사랑하는 여자가 아닌 남자일 뿐이고, 질투하는 상대가 남자이고 싸우는 계기가 조금 다를 뿐이다. 다정하다가도 사람들을 만나면 지레 찔려 떨어지며 딴청 피워야하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 흔히들 ‘동성애자’하면 따라붙는 음울함이나 문란한 성생활 등에 대한 언급도 없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섬처녀’나 ‘사모님’ ‘제비’라고 놀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의 성적 표현은 가볍게 어깨를 만지거나 포옹을 하는 정도가 다다. 오히려 노골적인 성적 표현은 지혜와 수일 부부의 대화에서 나온다. 임신을 확인한 후 “왜 그렇게 심하게 구냐구”라고 화를 내는 지혜에 “좋아라 해놓고”라고 대꾸하는 수일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럽다.
노련한 노작가는 차마 보기 불편한 이들과 태섭·경수 커플을 배려해 다양한 카메라 워킹과 앵글을 사용한다. 대본이나 지문 하나, 소품 하나에도 공을 들이기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가 그들의 옷차림 하나 하나, 손짓 하나, 심지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에 부는 바람에까지 공을 들인 테가 난다. 심하게 많은 분량을 넣지도, 그렇다고 아예 빼버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미화’라고 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게이에 대한 편견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화’라 함은 판타지, 매우 긍정적인 판타지를 바탕으로 한다. 재벌가의 남자가 가난하지만 밝은 여자를 사랑하게 되거나 유부남을 사랑하게 돼 애틋함이 넘치는 커플의 이야기가 오히려 미화고 환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단어들을 동원해 글을 쓰는 호모포비아에 가까운 이들도 있다. 아이들이 배울까 무섭다고 한탄을 하는 학부모도 있다. 물론, 무조건적인 옹호와 환상을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륜과 복수, 출생의 비밀, 며느리를 핍박하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등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여타의 드라마에 비하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이다. 동성애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동성애의 현실인 것이다.


그들에게도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
지상파에서, 그것도 ‘가족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진짜 ‘게이’의 이야기를, 그것도 이렇게나 일찍 접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미남이시네요> <바람의 화원>에서처럼 남장 여자도 아니고, <개인의 취향>처럼 오해와 필요에 의해 게이인 척하는 게이가 아닌 진짜 게이의 이야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가 고희를 바라보고 있는 노작가에 의해서, 매우 적절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도 우리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큰 과장이나 축소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대가족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수많은 사건과 위기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고 극복해왔을 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원동력은 누가 뭐래도 가족의 사랑과 이해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김수현 작가가 태섭을 대가족의 장남으로 설정한 것은 꽤 희망적이다.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5명의 여자를 줄 세우고도 모자라 또 다른 할머니와 바람이 나 쫓겨 조강지처의 집으로 숨어들어온 할아버지를 보자. 지나치게 용서가 쉽다. 하물며 지극정성으로 모시기도 한다. 계단에서 떨어졌을 때도 깔린 할머니는 거들떠도 안보고,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해장국집으로 내달리며 호들갑이 유난하다.
동성애자는 가족에게도 괴물이고 기피대상이다. 아내와 아들들에게 씻지 못할 큰 상처를 주고도, 여전히 같은 짓을 반복하며 당당하게 밀고 들어오는 할아버지는 용서가 되도, 남자를 사랑하는 맏아들, 맏손자는 용서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단지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십 년을 여자를 바꿔가며 밖으로만 돌던 할아버지도 너무도 쉽게 포용한 이 가족에게는 어떨까? 김수현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매우 이상적인 작가다. 그래서 그들의 미래는 최소한 ‘비극’은 아닐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을 단 드라마에서 말하고자하는 것, 그것은 ‘동성애자도 아름다울 권리가 있는 인생이다’다. 이에 대해 게이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나 환상이라거나 김수현이라는 작가에 대한 지나친 숭배라는 비난도 기꺼이 감수해야할 것이다. 누구나 아름다운 인생을 꿈꾸고, 아름다울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많은 이들이 기피하고, 무시해 왔지만,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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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jun 2010.04.24 16: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여성 동성애자의 말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난 여자를 사랑하는게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여자인것 뿐이다.

    글 잘 봤습니다 ^ ^

  2. hurlkie 2010.04.25 0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늘 그 시점의 차이가 편견을 만들고 증오를 만들죠
    여자도 사람이고, 남자도 사람이고, 우리는 모두 사람이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인데 말이죠

Blog+Enter Vol. 38

Blog+Enter 2010.04.17 15:17


blog+enter 서른여덟 번째 간행물입니다
이번 호부터 중국 엔터테인먼트 트렌드를 다루는 'Enter+China'가 신설됐습니다.^^
지난 1월, 중국국가 국무원에서 발표한 후 영화산업의 발전과 변화를 이끌었던
영화산업발전에 대한 지도의견에 대한 핵심 요약있습니다.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이번 회차에서 조금은 놀랍고, 조금은 부러운 게 있다면
미국 NCAA 전미 대학농구 챔피언십입니다
단판승부와 연고를 바탕으로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어
'3월의 광란'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NCAA의 결승전이 있었습니다.

2009-2010 NCAA 매출액은 7억1천만 달러로
2008-2009 6억6천100만 달러, 2007-2008 6억1천400만 달러 등
매시즌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2009년,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NCAA 파이널 포의 상품가치는 8천200만 달러,
3억7천900만 달러의 NFL 슈퍼볼, 1억7천600만 달러의 하계올림픽에 이어 3위입니다.
참으로 대단하기도 하죠.

이번 시즌에는 LG전자가 3D기술을 선보이며 공식 후원사로 참여해
5천만 달러에 달하는 홍보효과를 거뒀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콘텐츠의 다양성과 콘텐츠-마케팅의 적절한 만남을 이끌어내는 그들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www.hurlkie.com 뿐 아니라 www.blog-enter.com으로도 blog+enter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많이 찾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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