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것이 너무 많은 ‘루저’들의 안식처 <심야식당>

난데없는 ‘루저’ 논란이 지난 한 주간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조금씩은 모자라고 밑바닥 삶을 살고 있는, 소위 명확한 잣대를 그어놓고 물리적인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들에게는 루저가 틀림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10월14일부터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12시30분께쯤 시작해 20여분 동안 방송되는 심야 드라마 <심야식당>이 그 주인공이다.
아베 야로의 동명 만화를 드라마화한 <심야식당>은 신주쿠 골든거리의 좁은 골목에 자리한 그냥 ‘밥집(めし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간다.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운영하는 이 식당에는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세로 흉터가 인상적인 마스터(고바야시 카오루)가 있다. 메뉴판에는 돈지루(돼지고기와 야채를 넣어 끓인 된장국의 일종) 정식과 맥주, 일본 술, 소주뿐이다. 그럼에도 꽤 많은 손님이 이 식당을 찾는 이유는 재료만 있으면 손님이 요구하는 음식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과연 그 이유가 전부일까?


마음의 위로, 기댈 어깨가 필요한 그들에게
누구나 혼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지친 어깨를 기댈 수 있는 공간을 꿈꿀 것이다. 바쁘고 고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밥집’이라 쓰인 등 하나 달린 소박한 이 식당을 즐겨 찾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신주쿠 ‘뉴 아트’의 간판 스트리퍼 마리린, 잘 반하고 잘 채이기도 하는 이 아가씨는 새로 반한 남자인 솜씨 좋은 카지노 딜러의 취향에 따라 미디엄 레어의 타라코(명란젓)를 주문한다. 늘 달걀말이를 주문하는 게이바 운영자 코스즈와 엄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비엔나 소지지 볶음을 시키는 이마시로회 오니시마조 간부 켄자키 류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 안팔리는, 솔직히 얘기하지만 부를 노래가 없어 노래방 가서 아침까지 노래를 부르다 심야식당을 찾는 엔카 가수 치도리 미유키는 따뜻한 밥에 가쓰오부시를 얹어 간장을 뿌린 고양이밥을 좋아한다.
무라사키노우에 라는 게이바에서 근무하는 트랜스젠더 준은 낫토를 너무 좋아해 애인 요시다와 종종 식당을 찾아 과감한 애정행각도 서슴지 않는다. 오차즈케(차에 밥을 말아 먹는 일본 요리) 고명으로 항상 타라코와 연어와 매실을 얹어먹는 루미·카나·미키는 각각 타라코녀·연어녀·매실녀로 불리는 오차즈케 시스터즈다. 영화 속 사랑을 꿈꾸는 순애보 시스터즈다. 잘 나갈 때는 400편 이상의 AV도 찍었다는 전설적인 카리스마 AV배우 오키, 그리고 그를 졸라 제자가 된 타나카 유이치는 언제나 감자샐러드와 특제 스테미너 정식을 먹곤 한다.
말마다 ‘파리’와 ‘캐비어’ ‘와인’ ‘샴페인’ 등을 언급하는 느끼한 말투과 웃음, 와인에 질려 일본에서 마시는 맥주는 괜찮다고 허세를 부리는 요리 평론가 토야마 마사오와 멸종 직전의 유랑 악사 고로는 버터라이스를 먹는다. 뜨거운 밥에 버터를 얹어 30초쯤 뜸을 들이다 간장을 살짝 가미해 섞어 먹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를 본 다른 손님들도 앞 다투어 버터라이스를 주문하곤 한다. 무명 권투선수 가츠는 시합에서 이기는 날이면 가츠동(돈가스 덮밥)을 시킨다. ‘가츠’는 ‘이기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가츠동을 먹다 만난 아케미와 그의 딸 마유는 연락처도 교환하고 경기 응원도 하고 식사도 함께하는 사이가 된다.

시청률 꼴찌, <심야식당>이 부러운 이유
시청률로 따지자면 늘 꼴찌다. 11월11일 방송분도 시청률 2.4%로, 지난 회차(1.5%)를 제외하고는 그 수치를 소폭으로 오르내리는 정도다. 심야 시간대임을 감안한다 해도 흥행성적은 그리 좋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부러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첫 번째가 흥행이나 시청률에 상관없이 잔잔하게 소박한 일상을 그리는 드라마‘도’ 볼 수 있는 일본의 방송 시스템이다. 드라마‘를’이 아니라 드라마‘도’임을 명심하자. 시청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고 다양하다는 의미다. 하물며 TBS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공영방송사도 아닌 민영방송사다.
게다가 <심야식당>의 제작진이며 배우들이 심하게 쟁쟁하다. 영화 <도쿄타워>로 2007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던 마츠오카 죠지, 영화 <린다 린다 린다>의 야마시타 노부히로, 2분기 드라마 <퀴즈쇼>의 오이카와 타쿠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도쿄타워>의 고바야시 카오루가 타이틀롤을 맡았다. 심야 드라마, 흥행 성적이 썩 좋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한 드라마임에도 심혈을 기울인 테가 역력하다. 하물며 1회 중후반부에 모습을 드러내 2회에서 사라졌다 6회에 또다시 잠깐 얼굴을 비친 배우 오다기리 죠의 등장은 “닮은 사람인가”를 착각할 정도다. 최근 유행어처럼 “한국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방송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의 바로미터인 시청률이 낮으면 조기 조영을 하기도 하고, 높으면 16부작씩 연장을 하기도 하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시청률 지상주의는 재벌 상속남과 캔디녀, 혹은 재벌 상속녀와 집사, 복수와 불륜, 출생의 비밀 등 천편일률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고 갈수록 자극적이고 더 센 소재와 주제들을 갈망하게 한다. 제작비와 배우의 몸값은 치솟고, 흥행력을 갖춘 몇몇 드라마 작가와 스타로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같은 현실에서 참신하고 기발한 양질의 콘텐츠가 경쟁력이라고 외치면서도 제작비만 높고 시청률은 낮아 수익률이 떨어지는 단편 드라마를 과감하게 폐지시킬 수 있는 한국의 시청자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단편 드라마는 신진 작가 및 PD의 등용문인 동시에 시청자들에게는 새롭고 모험적인 드라마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이었다.
이처럼 참신하고 색다른 드라마와 작가, 제작진들을 개발하는 기능은 일본 방송사의 심야 드라마와 다르지 않다. 후지TV가 2007년 4월부터 토요일 심야 드라마로 편성했던, 속고 속이는 사기배틀 <라이어게임>이 폭발적인 인기와 마니아층 형성에 성공함으로써 2009년 4분기에 화요일 프라임타임대 연속 드라마로 편성된 것은 좋은 예다.
4분기 드라마 중 최고의 기대작으로 11월10일 첫 방송을 한 <라이어게임 시즌2>의 시청률은 12.4%, 영국인 영어강사를 살해하고 성형까지 하며 도망하던 이치하시 다쓰야가 검거된 날이었다. <라이어게임 시즌2>와 동시간대의 각 방송사 보도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최고 23.7%(NHK 수도권 뉴스)까지 치솟았다. TV아사히의 <보도스테이션> 22.0%, NHK의 <뉴스왓치 9> 20.4% 등 동시간대 보도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일본 주간 시청률 차트 1위인 NHK의 시대극 <천지인(21.7%)>를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니 12.4%라는 시청률은 ‘겨우’라기 보다는 ‘그럼에도’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좀 다른 드라마, 꼭 다음 회를 기다리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뿐 아니라 참신하고 색다른 드라마의 시청 가능성마저 빼앗겨 버린 한국의 드라마 시청자들로써는 부러울 따름이다.


정겨운 안식처가 돼주는 심야식당

<심야식당> 등장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요즘 기준으로는 ‘루저’에 가깝고, 그들이 주문하는 음식 역시 지나치게 소박하고 평범하다. 그들에겐 각자 사연이 있고, 밝혀진 이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도 있다. 일단 마스터와 오다기리 죠가 연기하는 손님은 정체를 알 수 없다. 게이바 주인 코스즈와 야쿠자 류는 각각 비엔나소시지 볶음과 달걀말이를 싫어하지만 서로를 존중하게 됐다. 고양이 밥을 즐겨먹던 엔카 가수 치도리는 마스터의 도움으로 작사가를 만나 스타가 됐지만 병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하지만 치도리는 죽기 한달 전 마스터에게 “행복했었다”는 말을 전하러 왔다. 타라코녀 루미, 연어녀 카나, 매실녀 미키는 남자와 맞선 때문에 싸움을 벌이는가 싶더니 오차즈케의 고명을 바꿔 먹는 것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며 의기투합한다.
AV배우로 돈도, 인기도 얻었지만 가족을 잃었던 오키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만나 참회하고 돌아왔다. 요리 평론가 토야마는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잃고 유랑 악사를 은퇴하게 되는 고로에게 옛 연인 리츠코의 남동생임을 고백한다. 누나가 고향에서 고로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과 함께. 결국 고향으로 돌아간 고로, 하지만 토야마는 여전히 버터라이스를 즐기러 식당을 찾곤 한다.
가츠동을 먹던 가츠는 잘 나가는 카와다 선수와의 시합에서 이겨 이케미에게 영화 <록키>처럼 프로포즈할 꿈을 꾸지만 지고 만다. 이케미와 마유의 위로를 받고 식당으로 온 가츠, 세 사람에게 마스터는 오야코동을 선물한다. 닭고기(오야=부모)와 계란(코=아이)으로 만든 덮밥으로 가족이 됐음을 축하한 것이다.
마스터의 독백으로 전달되는 단골손님들의 사연은 맛깔스런 요리와 버무려지며 정겨운 안식처를 제공한다. “좀 더 단순해도 된다. 밥과 찻물을 붓고 고명만 얹으면 되는 오차즈케처럼. 맛있는 건 맛있는 거다”라는 마스터의 독백처럼 깔끔하고 담백하게, 복잡하게 꼬거나 비틀지 않고 단순·명확하게 소소한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거나 위안 받고, 축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요리를 통해 세심한 심리묘사와 소시민들의 인생에 따스한 시선을 보내고, 그들에게 삶의 방향과 고민에 대한 조언을 제시하곤 한다. 무심한 듯한 마스터는 비 맞은 손님에게 수건을 건네고, 실연의 상처도, 어머니에 대한 애끓는 심정도 쓰다듬어주며 쓸쓸하고 삶에 지친 이들의 기댈 어깨가 돼주곤 한다.
극이 끝난 후, 다음 회 예고 전에 열심히 요리를 만드는 마스터 근처에서 단골손님들이 전하는 그날의 소재가 된 요리에 대한 원 포인트 어드바이스는 꽤 실용적이다. 계란말이를 터뜨리지 않고 마는 법, 고양이밥의 비결은 가쓰오부시의 신선도에 달렸다는 사실, 가정용 버터에는 소금이 들어가 있으니 간장을 조금만 뿌려야 버터의 풍미를 해치치 않는다거나 김을 싸먹거나 향신료 치는 것도 맛있다는 비법, 밥이 물어버리니 차나 국물은 먹기 전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 가츠동의 고기는 마지막에 또 익히기 때문에 튀길 때는 80%만 익혀야 한다는 등 맛의 비결을 소개한다. 그리곤 그 회의 이야기에 맞게 ‘잘자라’는 인사를 한다.
기분 좋은 덤처럼 따라붙은 어쿠스틱 기타와 아마추어적인 창법으로 부르는 주제가 그리고 도쿄 곳곳의 도시풍경은 이야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오죽하면 극 마지막에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라는 자막이 뜰까. 이 드라마의 매력은 출연자, 식당을 찾는 이들이 끊임없이 되뇌인다. “정겨운 맛이 난다”고. 그리고 “이 가게는 알려주고 싶지 않아. 손님 늘면 내가 못 들어오잖아”라고. 바쁘게 휘몰아치고 지치기만 하는 일상, 누구나 그런 공간은 필요하지 않던가. 그런 측면에서 <심야식당> 등장인물들은 참으로 부럽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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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질테다...내 마음대로...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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