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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달콤한 꽃향내가 어울리는 5월,
하지만 여름 쪽으로 성큼 다가서 버린 5월의 중턱에서 강릉을 찾았다.
강원도 지역을 찾을 때면 늘 넘게 되는 대관령을 들어서기까지는 그래도 수월했건만…
대관령 고개는 들어서기부터 쉽지가 않다.
구불구불 그려놓은 선 위에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죽 늘어서있는 차량들,
언제 이 길고 가파른 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대관령에 고개를 들이밀자 향긋한 아카시아 꽃내가 진동을 친다.
지루하게 죽 늘어서있는 차량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대관령 장정(?)을
위로라도 하듯 고개로 좀더 깊이 들어설수록 그 향내는 더욱 짙어진다.
겨우겨우 한 구비를 돌아서면 또 한 구비, 또 한 구비….
과연 이 구비들이 끝나기는 할까
사위로 어둠이 깔리기 전에 강릉을 볼 수 있을까
등의 질문들을 던져보지만 또 하나의 구비가 우리 앞으로 나선다.
그래도 이 길이 지루하지만은 않은 건,
현재 내가 그 거대한 태백산맥의 한 고개 위에 서있다는 사실,
그리고 향긋한 아카시아 향내와 녹음들의 푸르름,
무더웠던 한낮의 더위를 달래듯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람 등의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고개를 넘으면, 누군가 '북한에서 막 귀순한 벌목공' 같다던
투박한 사투리를 쓰는 순박한 사람들과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바다를 품은
예향의 도시 강릉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어렵사리 넘은 대관령의 끝에는 강릉이 있었다.
조금은 시골스러운 모습을 기대했던 우리를 당황스럽게 했던 번화한 시내.
난 강릉에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대관령을 넘어서 강릉에 도착하면 바로 바다가 눈앞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어두워져 보이지 않는 도로 양쪽으로 자리잡은 논에서
처절하게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와 그 건너로 분명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
바람에 묻어나는 바다 내음으로 복잡한 도시와는 다르겠구나라고 느낄 뿐이다.
5거리와 6거리, 약간의 생경하고, 복잡한 길을 거쳐 도착한 초당의 강릉고등학교.
그곳의 체육관은 화려한 조명과 음악소리 등으로 입구부터 시끌벅적하게 들떠 있다.
강릉을 찾은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는 걸까.
졸업 20주년, 30주년 행사와 초당벤처포럼 세미나 등
이 저녁의 행사만도 세 개씩이나 된다.
그 세 곳은 전부 우리를 위해 화려한 만찬을 준비한 듯,
음식들을 대접했고,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우리의 송구스런 거절에
자식들을 못먹인 부모와 매한가지로 아쉬워하며 기념품 등을 챙겨 안겨준다.
강릉 사람들의 푸근함이겠지….

세 군데의 행사장을 거쳐 밤 11시가 되어서야
경포호와 동해 중간에 위치한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숙소로 향하던 바깥의 풍경으로 눈에 들어온 경포호의 야경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낼 만큼 예쁜 색깔을 띠고 있다.
던지듯 짐을 놓고 나선 새까만 사위 속에 자리잡은 경포호.
강릉 사람들의 말로는 이곳에서 수영도 하고, 겨울에는 스케이트도 탔다고 하던데…
수영을 하기엔 물이 너무 탁하고,
스케이트를 타기엔 놀거리와 유흥거리가 너무도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 건너로 보이는 곳은
여러 가지 색깔의 빛들이 모인 하나의 찬란한 빛 덩어리처럼 예쁘다.
그 덩어리들이 경포호의 수면 위로 흩어지며 또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그렇게 홀린 듯 경포호 주변의 풀섶에 한동안을 앉아 있었다.
Richard Marx의 'Right here waiting'과 The Platters의 'Only you' 등
감미로운 올드 팝송을 저절로 읊조리게 하는 로맨틱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저 불빛의 정체는 뭘까?
불현 듯 불빛의 실체가 보고 싶어져 몸을 일으켰다.
경포호 주변을 따라 얼마를 움직였을까.
분명 건너편에서 지켜보던 그 빛덩어리가 맞는 듯 한데…
그곳엔 오징어와 쥐포 등의 선물용 건어물을 파는 상점과
오색찬란하다 못해 촌스럽기까지한 조명들을 단 모텔들이 즐비하다.
이런 실망스런 불빛들의 조합이 조금 멀리서 바라보면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내 로맨틱함의 실체는 결국 비릿한 건어물 가게와
어쩌면 도피행각을 벌이는 연인들이 몸을 뉘울지도 모를
관광지의 모텔이 쏟아내는 빛들임을 확인했다.
경포호의 야경에 감탄하시는 분들,
절대로 그 실체를 확인하려 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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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경에 찾은 경포.
밤에 보는 강릉은 어째 그리 내 상상과 엇갈리기만 하는지….
바닷길을 따라 늘어서서,
수족관과 평상들을 걸어놓고 손님들을 잡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횟집 주인들,
모텔과 여관 등이 발산하는 빛과
주말을 맞아 도시를 떠나온 연인과 가족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그리고 차들이 엉켜 만들어내는 요란한 클랙션,
간혹 성능좋은 오디오를 장착한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요란한 댄스 비트까지.
흔들리는 불빛 도시를 방불케하는 그곳에는
내 머릿속에 그리던 조용하다 못해 고즈넉한 밤바다는 없는 듯 했다.
하지만 그 혼란스러운 거리를 가로질러 도착한 바다는
확실히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그것이었다.
모래사장에 발을 들이자 귓속을 파고들며
소근대는 듯한 바다의 잔잔히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바다 수면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빛을 받아
빛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이며 출렁이고 있었다.
모래 위에 앉아 밤바다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풍경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같은 풍경도 다른 느낌을 가지게 하니 말이다.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시끄럽게 굴던 아이들과
이를 쫓는 부모의 안달스런 모습은 단란한 가정으로 비춰진다.
고요한 밤바다에 소음을 내며 깜짝깜짝 놀라게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불꽃은 밤바다 위로 날으며 낭만적인 추억으로 자리잡는다.
약간은 정신나가 보였던 진홍빛 옷을 아래위로 맞춰입은 연인도
밤바다를 만나면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저런 종류의 사람들이 모래사장 위에 흩뿌리듯 남겨둔 발자국들….
어떤 것이 밤바다를 찾는 발자국이고,
어떤 것이 떠나는 그것일까?
들고나는 것의 구분이 쉽지 않은 모래 위의 발자국들은,
아쉽게 돌리는 내 발걸음이 다시 이곳을 찾아도 푹신하게 받아주겠지?
그 밤바다에서 그 동안의 소원이었던 불꽃놀이를 했다.
그 불꽃은 언제가 굉장히 우울하던 날
한강 고수부지를 날아다니던 그때의 허무함을 선사하지는 않았다.
내 마음가짐의 차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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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일출을 약속하며 밤바다에서 아쉽게 돌아선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바다를 찾았다.
새벽의 이슬을 먹은 공기 탓인지,
아니면 몇 분 후면 떠오를 태양의 전조 때문인지 밤 풍경과는 확실히 다르다.
일출을 보기 위해 밤새 바닷가에 있었던 건지,
파라솔과 자리를 깔아놓고 잠들어있는 학생들,
어제 밤부터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강태공들,
일출의 장관을 보여주고 싶은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졸린 눈을 부비고 있는 어린아이들….
모두들 어서 해가 뜨기만을 바라며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수평선 근처에 몰려 있던 구름들이 붉어지더니,
한 곳이 터지며 한줄기 빛이 피어오른다.
주위의 붉은 기운들을 모아 해를 만들려는 듯
붉은 기를 빨아들인 구름이 수평선과 멀어진다.
순식간에 떠오른 해는 한치의 일그러짐도 없는
온전한 모습이 되고, 더욱 붉어지기 시작한다.
성녀양이 "해가 아니라 달"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자
해는 기다렸다는 듯 붉어지다 광채까지 뱉어내기 시작한다.
그 광채는 빛을 모아모아 수평선부터 우리가 서있는 바다 바로 앞까지 길을 내준다.
그리고 누군가 더 예쁜 풍경을 만들어 내기 위해
시간을 맞춰 보낸 듯 정확하게 그 앞을 지나가는 통통배.
평상시라면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고 있을 새벽 5시를 갓 넘긴 시간,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지난 뒤의 찬란한 일출은 잊지 못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동해'하면 떠오르는 것은 일출,
누군가 "흔하디 흔한 광경"이라며 이의를 제기한다면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
"직접 가서 보라"고.
다 똑같은 일출인데 정동진까지 갈 거 없다던...성녀양
나중에 정동진을 찾았을 때는..."다르구나"...했지?
세상에 같은 건 없다고 봐...난...
조금씩이라도 다르게 마련이야.
자연이 만들어내는 건 특히 더 그렇지.
태어나 처음으로 일출을 봤다는 네모군
그렇게 게을러서는.......
이 세상에 이쁜 많은 것들을 너무 많이 놓칠 수 있다구...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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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질테다...내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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