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사극과 궁중 로맨틱 코미디의 기분 좋은 결합 <동이>


MBC 월화사극 <동이>가 드디어 전국 시청률 20.0%를 넘어섰다. 수도권에서는 이미 7회(4월12일 방송분)에 20.1%의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다소 부진한 11.6%(수도권 12.8%, 이하 괄호 안 수도권 시청률)의 시청률로 출발한 <동이>는 빠른 상승세를 타며 11회에 21.0%, 12회에 21.6%를 기록하며 연일 자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성장사극의 달인, 이병훈 PD의 공식


<동이>는 <대장금> <서동요> <이산> <허준> <상도> 등 주인공의 성장에 초점을 두며 ‘성장사극’이라는 신장르를 탄생시킨 이병훈 PD의 복귀작이다. 여전히 주인공 동이(한효주)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병훈 PD의 사극에는 공식같은 것이 있다. 이같은 공식이 작품의 신선도를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짜임새를 촘촘하게 하며 이병훈 스타일 사극의 중심축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은 언제나 시련을 겪고 성장하게 된다.
동이 역시 마찬가지다. 동이는 사대부 양반의 부패와 횡포를 척결하는 검계 수장인 최효원(천호진)의 딸이다. 아버지와 오빠가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자 도망을 치다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겠다는 일념으로 장악원의 노비로 살아가게 된다.
총명함과 끈기, 쾌활함을 잃지 않는 성격으로 장악원을 쥐락펴락하던 동이는 암행을 나온 숙종(지진희),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도움을 주고받은 장옥정(이소연) 등과의 인연으로 최고의 궁녀들이 모인다는 감찰부 궁녀로 전격 발탁된다.
동이는 인현왕후(박하선)와 새롭게 인연을 맺고, 숙종과의 정이 깊어질수록 옥정과의 골이 깊어지면서 궁에서 쫓겨나는 등의 시련을 겪게 되지만 결국 승은을 입고 영조대왕이 될 연잉군을 출산하게 된다.

조력자와 라이벌,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힘
공식 두 번째는 주인공의 인생역정에 등장하는 조력자와 강력한 라이벌이다. 이들과는 차곡차곡 정을 쌓고 인연을 만드는 기간을 충분히 거치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깊고 동이의 신분 상승에 큰 도움을 주는 옥정은 가장 강력한 조력자이자 라이벌이다.
옥정은 이미 ‘빛과 그림자’ 예언을 들은 바 있고, 이 예언에서 옥정 자신은 빛이 아닌 그림자임도 알고 있다. 동이는 천한 신분에서 조정을 뒤흔드는 힘을 가진 여인이 된 옥정과 같은 행보를 걷지만 다른 성정을 가진 인물이다.
동이가 신분은 천하지만 매우 귀한 인사임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감찰부 궁녀로 추천해 후궁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준 옥정은 그래서 조력자다. 하지만, 숙종과 깊은 정을 나누고 권력을 거머쥐는 데 동이가 걸림돌이 되면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변모하게 된다.


동이에게도 조력자는 있다. 하지만 동이에게 장금의 한상궁(양미경)처럼 강력한 조력자가 등장할지는 미지수다. 어린 시절, 아버지·오빠와 더불어 가장 의지하고 믿었던 차천수(배수빈)는 가장 강력한 조력자지만 일방통행하는 남녀 간의 정이 걸린다.
동이와 자매처럼 지내며 옥정의 포악한 횡포와 음모에 바람막이가 돼주기도 하는 인현왕후는 단명하는 데다 스스로를 건사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중 내의 암투와 당파싸움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진 동이에게 장금의 한상궁같은 강력한 조력자가 될 가능성은 가장 높아 보인다.


아버지와 ‘신뢰’라는 끈으로 연결됐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를 믿어주지 않았던 포청 종사관 서용기(정진영)도 조력자다. 하지만 동이에게 서용기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인사로 각인돼 있다. 게다가 동이에게 천인의 말은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고 믿어주지 않는다는 신분의 벽과 상처를 깨닫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감찰부 궁녀가 된 후에도 천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내쳐질 위기에 처한 동이를 위해 승급도 포기하고 반기를 들고 나선 정상궁(김혜선)과 봉상궁(김소이)이 있다. 그리고 동이의 실력과 자질을 인정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정임(정유미)도 있다.
여기에 동이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울 채비가 돼 있는 장악원의 직장 황주식(이희도)과 악공 영달(이광수)도 있다. 동이에게 장금의 한상궁같은 강력한 조력자가 등장할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크기의 힘을 보태는 조력자들로 인해 동이는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멜로 사극, 캐릭터들의 향연
사실, 임금을 둘러싼 궁중 내 암투를 다루는 사극에서 동이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는 임금이다. 이에 <동이>는 ‘성장’에 ‘멜로’가 가미된 멜로 사극이기도 하다. 임금과의 사랑이야기를 현대식 로맨틱 코미디와 결합한 <동이>는 이전의 사극들에 비해 다이내믹하고 경쾌하며 유머러스하다. 이는 동이를 비롯한, 숙종, 옥정, 인현왕후 등의 캐릭터에서 시작되고, 이들 사이의 각기 다른 색깔의 ‘로맨스’와 ‘관계’로 진행된다.


동이는 천한 노비지만 마음 속에 품은 뜻만은 천하지 않은 인물이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 하여 ‘풍산’으로 불리는 동이는 명석하고 발랄하고 정의롭지만 그래서 장악원과 감찰부의 사고뭉치기도 하다.
감찰부에서 쫓아낼 명분을 찾기 위해 동이에게 시제를 치르게 했던 유상궁(임성민)에게 “이번 시제는 잘못됐다”는 발칙한 발언을 하기도 하고 기회를 얻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품은 뜻까지 천하지 않게 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정좌한 채 보내기도 한다.
옥정을 음해하려는 음변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궁을 몰래 빠져나가 동분서주하고, 인현왕후를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쓴 옥정을 위해 포청에 잠입해 시체를 훑어본다. 감찰부에 가서도 청국의 사신단에 섞인 밀거래상을 잡겠다고 장악원 노비로 변장하고 혈혈단신 모화관(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곳)에 잠입하기도 한다.


궁중 여인들의 기에 휘둘리는 왕인줄만 알았던 숙종도 색다른 캐릭터로 표출된다. 카리스마와 헐렁함이 공존하는 숙종은 역사적으로도 절대왕권을 구가하던 임금이었다. 누구 하나 토를 달 수 없는 적통 임금으로 신하들과의 줄다리기에도 능했던 왕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하들 앞에서 빈틈을 보이면서도 허를 찌르는 날카로움을 보여주는가 하면, 궁녀들 앞을 지날 때는 남성 특유의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정비 인현왕후 앞에서는 더없이 점잖은 지아비고, 옥정의 앞에서는 애잔한 연인이다. 그리고 동이의 앞에서는 허약하고 세상 물정에도 어두운 철없는 판관 나리다. 이에 ‘허당’ 숙종으로 불리는 임금은 동이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어설픈 칼솜씨로 위험에 처한 동이를 구하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감찰부 퇴출을 판가름할 시제를 앞두고 있는 동이를 찾아가 머리를 맞대고 족집게 과외를 해주기도 하고 동이의 친구들인 황주식, 영달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허약하다는 동이의 농에 무술 단련을 시작하고 동이의 이상형 발언에 부아가 치밀어 술잔을 들이켜기도 한다.
옥정이든, 인현왕후든, 신하들에게건 동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실없고 방정맞게까지 느껴져 시트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때로는 위엄 있고, 애잔하며 코믹하기까지 한 숙종의 캐릭터는 <동이>의 인기 요인 중 하나다.


조선시대에 찾아보기 드문 적통 임금이 천하디 천한 노비 출신의 궁녀와 결합하는 것을 곱게 바라 볼 궁중 인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향후 ‘허당’ 숙종과 ‘풍산’ 동이의 결합에는 수많은 난관과 방해공작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난관과 방해공작의 선두에는 옥정이 있다. 지금까지의 사극에서 그렇듯 악독하기만 했던 장희빈은 보다 합리적이고 똑똑하다. 마냥 아이같은 동이 앞에서는 매우 의롭고 좋은 사람이다. 가장 이기고 싶고 넘어야할 사람이지만 신분과 성정에서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현왕후 앞에서는 조바심과 콤플렉스에 시달리곤 한다.
숙종 앞에서는 음해와 시달림에도 굳건함을 유지하며 애잔함을 불러일으키는 정인으로,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명성대비(박정수) 앞에서는 그에 걸맞은 책략가의 모습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요부 장희빈의 모습은 오빠 장희재(김유석)의 앞에서나 표출된다. 이처럼 팔색조와 같은 옥정의 캐릭터 역시 매우 색다르고 매력적이다.


궁에서 내쳐지기까지 했던 나약한 존재로 그려지던 인현왕후는 이전 사극에서보다 고요하지만, 보다 강하다. 외유내강의 전형으로 옥정과의 기 싸움에서도 전혀 밀림이 없다. 하물며, 시어머니 명성대비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경지다.
향후 이 캐릭터들은 동이의 성장과 숙종과의 로맨스가 깊어질수록 변화돼 갈 것이다. 동이는 아직은 어린아이 같다. 조정이 남과 서로 나뉘어 치열한 당파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오로지 옳은 일을 하고자하는 동이의 의지는 지금까지 숙종, 옥정과의 호감어린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이가 중전을 만나고 숙종과의 관계가 진척되고 감정이 변질되면서 일관되던 옥정과의 관계에는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정의롭고 옳은 길만을 가고자 하는 동이는 어쩔 수 없이 은인이자 롤 모델과도 같은 옥정과 대척점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동이가 당파에 휩쓸리며 사방에 적이 포진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귀히 여김을 받을 성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이같은 과정이 향후 <동이>의 인기요인이 되기도, 혹은 늘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라는 맹점을 두드러지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풀어야할 숙제, 허술함과 진부함
‘역사 왜곡’이라는 원초적인 문제와 부차적인 몇몇 조연의 연기력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동이>가 풀어야할 숙제는 산적해 있다. 극 초반부터 제기되던 문제는 진부함이다. 이는 앞서 짚은 일정한 공식을 대입하는 이병훈 PD 스타일과 맥을 같이 한다. 동화구연을 하는 듯한 여자 주인공의 어투와 과장된 추임새는 동이 역의 한효주의 연기력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작을 답습하는 이야기 흐름이나 구성, 그리고 김혜선·김소이·박정수·이계인·신국·이희도 등 ‘이병훈’ 사극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연기자들도 진부하다는 평에 일조한다. 연기자 뿐 아니라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열혈 주인공과 그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이성, 거대 권력의 그늘에서 그를 위기에 빠뜨리는 경쟁자, 하지만 그 경쟁자를 견제할만한 더 높은 신분의 혹은 더 헌신적인 조력자, 주인공의 뛰어남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동료, 그의 주변에서 부모처럼 혹은 누이처럼 도우며 감초역할을 하는 이들 등은 분량이나 주인공에 미치는 영향력의 차이만 다를 뿐 언제나 극에 존재하는 캐릭터들이다.


사실 진부함보다 더욱 심각한 <동이>의 자충수는 허술함이다. 지나치게 성긴 이야기 구성은 우연을 반복하며 동이와 숙종을 만나게 하고,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 감정을 공유하게 한다. 지나친 우연의 반복은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애초 장악원을 통해 조선시대 음악을 선보이겠다던 기획의도는 빛이 바라고 허드레 일을 하는 천비에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끝이 났다. 궁내에서 뛰어난 궁녀들이 모여 있다는 감찰부는 ‘천인’이라는 이유로 동이의 증언을 무시하며 무능함을 자초한다.
천비 하나를 내치기 위해 자신들의 명예와 위엄을 시궁창에 처박으려는 최고상궁에게 당당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이도 없다. 결국, 중전이 나서서야 동이는 기회를 다시 얻고 감찰부에 남게 된다. 주인공의 특별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더욱 강력하고 뛰어나야할 인물들이 참으로 딱한 지경으로 그려진다.
옥정을 제거하기 위해 명성대비를 주축으로 한 서인들이 계획하는 음모 역시 지나치게 허점이 많고, 순식간에 실패로 돌아간다. 이에 대처하는 남인과 조정인사들의 대응 역시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허술해 놓치기 일쑤다.


이에 향후, <동이>의 제작진이 시급하게, 그리고 가장 신경써야할 것은 각 이야기 간의 허술한 매듭을 촘촘하게 조이는 일이다. 이같은 치밀한 구성과 이야기 간의 개연성은 ‘진부함’과 연기력 논란을 잠재우는 동시에 <동이>가 가진 매력을 극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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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ter 2010.05.09 1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한 시선이요

  2. hurlkie 2010.05.09 14: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감사합니다!

Blog+Enter Vol. 41

Blog+Enter 2010.05.09 01:52


blog+enter 마흔한 번째 간행물입니다
골든 위크를 맞은 일본의 시청률이 목요일 밤에야 발표되는 통에 하루 늦게 발행된데다
계단에서 구른 이틀만에 발목까지 접지른데다
잘 버텨내던 감기증상까지 겹쳐 몸 상태가 완전 시망이라 이제야 올립니다.

지난 토요일, 일요일에 있었던 뷰티플 민트 라이프라는
인디 라이브 페스티벌은 매우 재미있었다죠.
퉁퉁부운 발목으로 절뚝거리면서도 광분하게 했던
이 행사에 대한 리뷰를 다음 회차에 실을 예정입니다.

감기들 조심하시고, 뼈들도 조심하소서^^;;;
저는 이제부터 좀 앓을 예정입니다...아하하ㅡㅡ

www.hurlkie.com 뿐 아니라 www.blog-enter.com으로도 blog+enter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많이 찾아주시길...^^
↓↓↓↓↓↓↓↓↓↓
[ Blog+Enter Vol.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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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찬란한!! <찬란한 유산>

최근 유행하는 줄임말 중 하나가 ‘볼매’다. ‘볼수록 매력있다’의 줄임말로 첫 느낌은 그저 그랬거나 강렬하지 않았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사람이나 무언가를 일컫는 신조어다. 15% 남짓의 시청률과 ‘진부한 스토리’라는 평가로 시작해 7월26일 45.2%의 시청률과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으로 평가되며 막을 내린 <찬란한 유산>이 그 ‘볼매’라는 수식어가 적합한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처음 <찬란한 유산>이라는 드라마가 한다고 했을 때의 느낌은 “찬란한?”이었다. 평상시에는 잘 쓰지 않는, 조금은 유치하고 세련되지 못한 단어의 뉘앙스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유치찬란’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있겠는가? <찬란한 유산>의 성공은 ‘유치찬란’이라는 단어가 가진 미묘한 느낌과 매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유치를 빼면 찬란함이 남지만, 찬란함을 포기하면 유치해질 수 있는 ‘유치찬란’이라는 단어를 곱씹을 때 느껴지는 친근함과 소소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매력을 지니고 있다.

진부함도 풀어내기 나름
<찬란한 유산>의 시작점은 흔하디 흔한 ‘캔디녀’와 ‘재벌남’의 로맨틱 드라마였다. 여기에 현대판 <콩쥐팥쥐>처럼 새 엄마와 그 딸의 악행 그리고 설렁탕 기업 사장의 “모든 재산은 고은성에게 물려준다”는 폭탄발언 등으로 진부하고 얼토당토않게 허황된 이야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찬란한 유산>이 뿜어내는 매력은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다.너무 많은 감정들과 사건들이 얽히며 늘어지기도 답답함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찬란한 유산>은 대체적으로 ‘유치’를 빼고 ‘찬란함’을 남긴 드문 드라마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최근의 드라마들은 저마다 보다 ‘스타일리시하게’ ‘럭셔리하게’ ‘모던하게’ ‘스케일 크게’ ‘자극적이게’ ‘막장스럽게’를 외쳐왔다. 혹은 일정 정도는 흥행이 보장된 원작 리메이크 등으로 안정성을 담보해 왔다. 하지만 정작 2009년 최고의 흥행작은 스타일리시하지도 럭셔리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찬란한 유산>이었다. 처음 연애를 하던 때를 연상시키는 알콩달콩한 은성(한효주 분)과 환(이승기 분), 그리고 그들을 지고지순하게 바라보는 준세(배수빈 분)와 승미(문채원 분)의 사랑은 ‘배신감’과 ‘복수심’ 보다는 ‘설렘’과 ‘애잔함’을 선사한다.
불륜과 배신, 복수 등으로 얼룩진 드라마 트렌드에서 서투르지만 일편단심의 <찬란한 유산>식 사랑이야기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지난했던 삶을 떨쳐버리고자 거짓말과 음모를 일삼는 백성희(김미숙 분), 재산이나 경영권이 아닌 ‘기업정신’을 물려주고자 고군분투하는 장숙자(반효정 분) 사장, 만날 듯 만나지 못해 안타까움마저 자아내는 은성의 아버지 고평중(전인택 분)과 자폐아 동생 은우(연준석 분) 등의 캐릭터와 상황이 어우러지면서 희로애락은 물론 긴박감까지 느끼게 했다.
예상치 못했던 복선, 생각지도 못한 반전, 독특하게 풀어내는 문제 해결방식(돈에 눈 먼 이에게는 돈이 없는 삶을, 사랑하는 남자가 전부인 여자에겐 그 남자를 잃고 살아가는 삶을 주는 것으로 응징을 대신한다든지, 딱히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는 환과 은성 등이 그렇다)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여기에 소품 하나 감정 하나까지 신경 쓰는 섬세한 연출, 한효주, 이승기, 배수빈, 문채원 등의 젊은 연기자와 김미숙, 반효정, 유지인 등의 중견연기자가 표현하는 캐릭터들이 엮어가는 스토리의 짜임 등을 버무려 낸 요리는 분명 웰빙식이었다.
여기에 ‘권선징악’ ‘직원이 주인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이상적인 기업가’ ‘어떤 악행도 화해와 용서로 마무리하는 결말’ 등을 그려낸 <찬란한 유산>은 현실과 이상, 선과 악의 경계선을 묘하게 넘나드는 매력을 지녔다. 준세가 아버지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거나 장숙자 사장이 직원들에 의해 기사회생하고 그들에게 주식을 나눠주는 등은 현실이라면 좀체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꿈꾸는 정의이며 이상향이기도 하다. 또한 환과 은성을 대할 때마다 선과 악을 넘나드는 승미는 스스로의 모습에 갈등하고 절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보통사람들의 이야기, 그 찬란함에 대하여
<찬란한 유산>이 여타의 드라마처럼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는 ‘닥치고’ 찬양할만한, 대단하기만한 인물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인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그런 보통사람들의 삶이야말로 진정 ‘찬란한’이라는 수식어를 달 만한 가치가 있다.
기획된 것이든, 혹은 편성정책이 바뀌면서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든 원래 일일드라마로 기획됐던 <찬란한 유산>은 흥행과 평가 모두에서 성공했다. 이를 ‘우연’ 혹은 ‘수작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청자의 우매함’으로 폄훼하고 있다면, 시청자의 눈을 들여다 본적이 있는지, 혹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할 것이다. 비체계적인 유통과 저작권 구조 등을 토로하고 ‘스케일’과 ‘흥행코드’ 등을 고민하기 이전에 ‘시청자’들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이 우선이다. 드라마를 소비하는 것도, 드라마를 흥행시키는 것도 바로 시청자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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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질테다...내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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