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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되지 못한 아쉬움, 그러나 두드리면 열리리라

12월 20일 평양의 봉화예술극장에서는 노래를 통해 남북한이 하나되기 위한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우리 방송 사상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에서 제작하고, 직접 위성통신으로 남한에 방송된 이 '민족통일음악회'는 남측의 PD가 연출을 맡았고, 중계차, 8대의 카메라, 조명, 음향 등 북측의 방송장비가 동원되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이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삐그덕거림으로 아쉬워 해야했던 이 행사의 연출을 맡았던 MBC 편성기획부 주철환 팀장과 출연했던 가수들의 입을 통해 공연 이야기를 들어본다.

올 7월부터 기획되었지만 중간 중간 수많은 난관과 장애를 만나 그 실현 자체를 의심케 했던 '민족통일음악회'가 12월 20일 오후 5시 봉화예술극장의 2000석 객석을 꽉 메운 상태에서 그 막을 올렸다. 한민족이면서 서로에게 가장 먼 나라, 가장 가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버린 남북한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가 되려는 '민족통일음악회'는 당대의 정서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는 대중음악을 고리 삼아 분단상황을 극복하는 실마리를 찾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이번 공연은 남북통일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결정적인 요인이 되진 않겠지만 만국공용어인 '노래'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가 되려는 아주 작은 몸짓과도 같은 공연이었다. 이 공연의 총연출을 맡은 주철환 MBC 편성기획부 팀장도, 이 공연의 사회를 맡았던 차인태 경기대 교수와 만수대 예술단 소개자 백승란도, 그 무대에 섰던 안치환, 코리아나, 신형원, 오정해, 현철, 김종환, 전창혁, 김순희를 포함한 북한의 인민, 공훈 배우 등의 남북한 출연자들도, 공연장을 꽉 메웠던 남북측의 관객들도 그리고 텔레비전을 통해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모두 남북한이 한무대에 섰던 그 현장을 지켜보며 감동과 한탄으로 눈시울을 적셔야만 했다. 이제 겨우 남북 교류의 아주 작은 실마리를 잡은 것만으로도 그 감동은 적지 않았고, 이는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기에 더욱 큰 것이었을 것이다.

많은 진통과 시행착오로 얼룩진 행사

민간단체인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사장 변형윤)이 주최하고 기획사인 SN21 엔터프라이즈(이사장 김보애)가 주관하고 MBC에서 방송된 '민족통일음악회'는 수많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7월부터 기획되고, 암암리에 물밑작업으로 준비돼 오다가 양사가 8월 5일 통일부로부터 사회문화분야의 남북협력사업자와 협력사업으로 승인을 받으면서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그 준비가 쉽지만은 않아 9월 초에 협상단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북측과의 일정 협의가 늦어져 방북이 연기되기도 했고, 애초엔 추석 즈음에 평양 만수대 예술극장과 금강산 문예회관 그리고 남측의 공연장에서 두세 차례 공연을 가지기로 했었지만 북측과의 이견으로 그 규모가 축소되고 남측의 공연도 취소되었다.
날짜도 9월 말에 있었던 추석 즈음에서 10월초, 11월 중순에서 다시 12월 16일로 미뤄지더니 공연 이틀 전에 출연자 구성과 선곡의 문제로 또다시 12월 20일로까지 연기되는가 하면, 북한까지 갔던 코리아나는 곡선정으로 무대엔 올라보지도 못하고 깊은 마음의 상처와 아쉬움만을 가지고 돌아오기도 했다. 총연출을 맡았던 주철환 편성기획팀장이나 행사 관계자들을 가장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우리 방송 사상 처음으로 위성생방송이 될 예정이었던 공연이 마카오의 중국 반환 시기와 겹쳐 무산돼 버린 것이다.
평양으로 떠나기 수십일 전부터 출연 가수와 부를 곡들의 악보와 가사들을 보냈던 남한측과는 달리 공연 전날에서야 북측의 출연 가수들의 명단만을 통지해 이데올로기적인 곡들을 배제하기로 했던 당초의 의도와는 다른 공연이 있어, 남한쪽으로는 방송이 되지 못하는 등 많은 진통을 겪으며 어렵사리 성사된 공연이었다. 이러한 문제들 외에도 '남북대중음악제'에서 남북이냐 북남이냐는 호칭으로 양측의 충돌의 소지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듣는 그리고 가장 상업적이고 대중들을 위한 가요를 통칭하는 남한과는 달리 소모임에서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대중음악'이라는 용어의 쓰임이 남북한이 다른 이유로 '민족통일음악회'로 공연의 제목 자체가 바뀌기도 했었다.
그런가 하면 공연 당일이 평일이니 7시 이후의 공연을 제안했으나 북측에서는 저녁 식사시간 이전에 공연을 마쳐야 한다는 의견을 고집해 남북한간 생활패턴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을 앞둔 11월 23일~27일 주철환 PD를 비롯한 6명의 준비단이 북한의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초청으로 5박 6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해 공연의 실무적 협의를 통해 TV송신방법이 다른 양측의 변환기시스템에 대한 기술적 문제는 물론 북한의 조선중앙TV의 중계차, 카메라, 조명, 음향 시설 등을 점검하면서 그리고 공연 당일 주철환 PD가 조선중앙 TV의 스탭들과 평화 봉화예술극장의 부조에 자리를 잡으면서 공연은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분단의 거리를 확인한 행사

"이 음악회가 이루어지는 데는 수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이 발생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른 이데올로기 속에서 살아가지만 문화, 그 중에서도 이데올로기는 물론 모든 벽을 넘을 수 있는 '노래'를 통해 내딛는 한걸음은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통일로 가는 길에 초석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총연출을 맡았던 MBC 주철환 편성기획부 팀장의 말처럼 정치, 경제, 이데올리기 등을 떠나 순수하게 노래로 만들어낸 남북한이 하나되는 장이 되었고 이는 남북한 당국간의 대화가 두절된 상태에서 민간단체가 주최하는 공연으로 남북한 문화교류의 물꼬가 되고, 이는 더 나아가 통일로 가는 아주 기초적인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문화사적 의미도 크겠다.
앞서 몇번의 공연들이 있기는 했지만 '민족통일음악회'는 사실상 민간단체가 주최가 되고, 다른 매개체없이 남북한이 주인공으로 주체성을 가지는 최초의 공연이며 남한의 PD에 의해 연출되고 북한의 방송 장비와 기술력을 빌어 위성중계방송되는 최초의 공연이기도 하다.
"중국 등 곁에서 공연할 기회는 있었지만 직접 평양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데 감회가 새롭다. '터'나 '서울에서 평양까지' 등의 내 노래는 물론 그들의 노래도 혼자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북한 가수들과 함께, 더 나아가서는 관객들과, 그리고 시청자들과 함께 어울어져 노래를 부르며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이 공연에 출연해 마지막엔 눈물을 흘렸던 가수 신형원의 말처럼 이 음악회가 '대중음악을 통해 남과 북이 하나되는 장'이 되기를 바라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 노력의 흔적들을 시청자들이 느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 공연에 참가한 가수들의 구성도 북한 공연문화를 고려했었고, 수차례 수정된 악보를 준비해 남,북한의 가수들이 번갈아 노래를 부르기 보다는 양측의 가수들이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하고, 더 나아가 관객들과도 함께 호흡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동질감을 회복하며 어우러질 수 있는 무대로 만들기 위해 행사가 기획되었지만 북한측의 제어로 무산되었고, 무대를 여는 '반갑습니다'와 마지막에 '다시 만납시다'를 남북한 가수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부른 것을 제외하고는 이제까지 있었던 다른 공연들과 다름없이 남한 가수와 북한 배우들의 공연이 따로 이루어져 다시 한번 남북한의 거리감을 확인하는 공연이 되고 말았다. 한무대에서 어울어지는 공연의 감동과 흥겨움이 공연과 동시에 전파를 타고 생방송으로 남북으로 전달되는 가슴찡한 일은 이번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와 방송을 통한 동질감 회복을 위한 작은 시작

어느 곳에나 문화는 있고, 사람들의 가슴이나 정서에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다른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좀더 빨리, 거부감없이 하나될 수 있게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특히 3분 남짓으로 짧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혹은 의지와 관계없이라도 늘 함께하는 대중음악은 좀더 자연스럽게 하나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민족통일음악회'가 수많은 시행착오와 아쉬움을 안겨주긴 했지만 이 공연을 통해 우리는 노래의 힘, 문화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는 평이다.
예전엔 우리의 아이들에게 북한 사람들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 붉은 괴물의 형상이라고 가르쳐왔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지금도 그들과 우리는 아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통일이 되면 그 다른 점들 때문에 아주 번거롭고,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지만 붉은 괴물인 줄 알았던 그들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들이 이번 '민족통일음악회'를 통해서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분단의 상태가 오래된 만큼 하나되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테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할 것이다. 정치와 경제 등 대립적인 부분을 배제한 이번 공연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남북의 국민들의 정서적, 문화적 교류의 시초가 되었고, 이를 통해 차이점들을 가지고는 있지만 서로 다르지만은 않다는 것, 통일이 결코 번거롭거나 불편한 것이 아니라고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생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공연의 무대에서 목매 '마른잎 다시 살아나'와 '아침이슬'을 불렀고, 북한 사람들에게 친근한 외모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다는 안치환은 이번 공연을 통해 큰 성과보다는 큰 성과를 위한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는 무대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세계 유일의 분단민족인 한반도는 너무나 오랜 동안 다르게 살아왔고, 반목해 왔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이질감이 둘 사이에 가득차 있을 것이다. 판문점을 통한다면 3시간 30분이면 도착할 평양을 돌아돌아 30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도착한 것을 보면 그 거리가 아직도 꽤나 멀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번 '민족통일음악회'를 통해 30시간의 1초라도 당겨졌다면 이 공연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공연을 통해 '통일'이라는 지상과제가 더 이상 환상이나 꿈이 아닌 현실로 각인되기를 바라며 이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며 남한에서의 공연이 계획되고 있다고 한다.
계획되고 있는 이 공연이 성사되기 위해선 '민족통일음악회'가 눈에 보여지기 위해 겪었던 것만큼이나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고, 보다 복잡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생기든 얼마나 늦어지든 꼭 있기를 바라고, 이번에 있었던 '민족통일음악회'보다는 좀더 하나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연이 되기를 바란다.
서로 만나지도 못했던 한 민족이 서로 한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지만 함께 어울어져 최신 유행하는 테크노의 도리도리춤이나 주체사상과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춤이 아닌 남한의 것, 북한의 것이라는 개념을 떠나 하나되는 노래에 맞춰 저절로 추게되는 통일의 몸짓이 되길 바랐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주철환 팀장의 말처럼 우리는 이미 '노래'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우리를 보여주었고,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하나되는 감동을 자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안 만큼은 가까워졌을테고, 이러한 문화적 정서적 교류들이 반복되면서 통일에도 한걸음씩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민족통일음악회' 연출자 주철환 MBC 편성기획팀장 인터뷰 ]

평양 무대에 우뚝선 '사령관'

북한에서는 연출자를 사령관이라고 한단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남북한이 주체가 되어, 위성중계로 전파를 타는 민간단체 주최의 최초의 공연에 '사령관'이 된 주철환 팀장은 이번 '민족통일음악회' 공연의 의미에 대해 다음처럼 이야기한다.
"통일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원조나 스포츠의 교류, 정치적인 회담 등등 여러 갈래의 실가닥들이 엉켜있는 실타래와 같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통일을 위한 작은 몸짓은 그 많은 갈래 중 문화, 그 중에서도 '음악'이라는 실가닥을 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래로 닫힌 세상을 열 수 있는 것처럼 남북한도 노래로 하나가 되어 엉킨 실타래를 푸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연의 준비와 공연을 위해 찾았던 평양에서 그의 가슴에 와닿은 것은 통일을 위해 '특색있는 기여'를 하자는 그네들의 문구였다.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돈과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통일을 위해 특색있는 기여를 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노래로 그 특색있는 기여를 해보자는 의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노래를 하면서는 싸우거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노래는 평화적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을 위한 노력 중 큰 것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너무 큰 몸짓들은 오히려 오해를 부르고, 서로의 골이 더 깊어질 수도 있지만 아주 작은 것부터 조금씩 노력해간다면 그 효과가 더욱 빛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네들은 공격적이고, 단호하고, 경직되어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매우 상냥하고, 친철하며 유머가 넘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곳엔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번 공연으로 통일의 날이 훨씬 앞당겨졌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연을 시작으로 늘 설레는 마음으로 희망을 가지고 그들과의 문화 교류가 계속된다면 통일이 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시행착오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제 관리자의 입장이 된 주 팀장에겐 마지막 연출작이 될지도 모를 이번 공연은 이래저래 뜻깊은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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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질테다...내 마음대로...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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