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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세계 / 무술감독 움직임의 미학을 만들어가는 외길 인생

드라마에서 추락이나 싸움 등의 위험천만한 액션과 자동차, 오토바이 사고 등의 그림을 만들어가는 무술감독과 연기자들, 그들은 위험과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믿고, 지켜봐주는 연출자를 비롯한 스탭들과 연기자 그리고 서로가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

10월 13일. MBC '영웅신화' 액션신 촬영 현장

23시 50분. 현장 도착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비바람이 한바탕 몰아쳐 촉촉해진 아스팔트 위로 어둠이 늘어서던 늦가을밤, 23시 50분. 하루를 마감하는 술 한 잔의 여유로움을 접고서 자신만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려는 발걸음들로 거리는 바쁜 듯 하다.
같은 시간, MBC 새 수목드라마인 '영웅신화'의 무술감독을 맡고있는 정두홍 감독을 비롯한 무술 연기자 김정옥, 김성준, 김민수, 정창현 씨는 아직까지도 물기가 가시지 않은 강남역 부근의 어느 공사장으로 향했다. 내일 방송될 '영웅신화'의 첫방송분의 마지막 신을 찍기 위해서이다.
영화 '비트' '나에게 오라' 드라마 '영웅일기' 그리고 요즘의 '열애'와 '영웅신화'까지...정두홍 무술감독은 9년여 동안을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지금까지 내쳐 앞으로만 달려왔다.

24시. 현장재정비
"큰일 났다. 너무 깨끗해졌다. 리어커도 없어지고, 의자랑 발판도 없어지고...정리가 싹 돼있네."
10월 13일의 끝자락에서 이제 막 14일이 시작되려는 23시 55분, 부랴부랴 도착한 현장은 이틀 전에 왔었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상황으로 변해 있었다.

주인공 태우(장동건 분)와의 싸움에서 진 남학생 셋이 복수를 위해 하영(채시라 분)을 태우의 여자친구로 오해하고 겁탈하려는 신으로 조금은 으스스하고, 범죄의 분위기가 나야함에도 불구하고 공사장은 너무나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어둑어둑한 공사장의 2층과 아래층을 라이터 불빛에 의지해 오르내리던 정 감독은 정옥, 민수, 성준, 창현 씨를 모은다.
"2층에 보면 긴 각목들 있거든. 그거 갔다가 세워주고, 주변에 있는 기자재들 좀 찾아다가 공사장 분위기 좀 만들어보자. " "저 판자들은 이 골조 아래쪽에 차곡차곡 쌓고...창현이 떨어지는 위치있지? 그래 거기...가로로..."

24시 25분. 정리 마무리
어둡고 조용하던 골목이 무술팀들의 움직임으로 조심스레 부산스러워진다.
"좀 조용조용히 해라. 다 주무실텐데...다 깨시겠다." "모래더미 옆에 드럼통 하나 가져다 놓고...각목에 못박혔더라 빼든지 구부리든지...우르르 무너질텐데 다치지 않게..."
희미한 가로등불에 의지해 작업을 하는 그들은 비온 뒤의 꽤 쌀쌀한 날씨에도 건강해선지, 땀이 나선지 웃옷도 벗어 던진 채 팔을 걷어붙이고 이리저리 분주하다.
"창현아, 너 2층에서 뛰어내릴 건데 매트리스 깔아줘야 되냐?" "아뇨." "너 저번에 다리 다쳤을 때도 이 정도 높이 아니었어?"
정 감독은 2층에서 겁탈을 당할 뻔한 하영이 뛰어내리는 신의 대역을 연기할 창현 씨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4시 30분. 액션 동작 맞춰보기
"자, 이제 맞춰보자. 창현이 이리와서 쓰러져 있어봐. 정옥이는 왼쪽, 성준이는 오른쪽에 서고...남학생 1이 아직 안왔으니까 민수가 와봐. " "자...동건이가 와서 하나, 둘 뻥치고, 던지고 또 하나 둘 뻥치고...정옥이는 넘어질 때 쌓아둔 판자쪽으로 쓰러지고...지금 너희들이 맡은 역이 전문 싸움꾼들이 아니라 학생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때리지 말고 뒤에서 동건이를 잡아...이렇게..." "오른쪽 잽이다. 그리고 위로 도망가고...자기 동작 잊으면 안된다."
대충 액션의 동선이 결정이 난 모양이다. 비에 젖은 땅이 먼지가 날리지 않아 걱정이다.

24시 50분. 스탭들 도착
24시 45분. 아래층의 촬영준비가 마무리되고 이신덕 카메라 감독이 도착하면서 이제 본격적인 촬영 준비에 들어간다. "액션신은 찍고 나면 왜 내가 멍이 들어있냐?"
이 감독의 우스개 소리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55분. 정 감독이 카메라 감독에게 액션의 동선을 설명하고 있을 때, 발전차가 들어오면서 신호균 PD를 비롯한 모든 스탭들이 현장으로 속속 도착했다.

1시 10분. PD와 상의
1시 5분. 조명팀들이 실내에 조명을 설치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자 정 감독을 비롯한 무술팀들과 신 PD는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안에서 싸우다가 제일 마지막에 뛰어 내리면 어때? 하영이가 뛰어내리고...그럼 말이 안돼나?" "대본대로 가면 그게 맞는데...하영이 비명을 듣고 태우가 온 거 아냐. 이미 하영이가 떨어져 있는 걸 본 태우가 미친 듯이 남학생들을 막 패고, 집어던지려고 할 때, 하영이는 도망가고 남학생 1이 쫓아가고...이를 동건이가 쫓아가서 패고..."
"일단 남학생 1이 그전에 동건이한테 무지 맞았잖아. 그럼 태우 얼굴을 보자마자 도망가지 않을까?" "지금은 그 상황은 아니에요. 일단 여자를 잡아다가 일은 벌여 놓은 상태고...그 여자를 놓쳐서 동건이한테 잡히면 죽는단 말야. 그러니까 남학생들 상황에서는 동건이를 죽이려고 할거란 말야. 그러다 보면 도망가는 여자를 쫓아갈거란 말이지. 어떻게든 그 여자를 놓치면 안되니까..."
오랜 시간의 얘기 끝에 1시 30분이 되어서야 마지막 장면의 결론이 난 듯하다.

1시 30분. 2층 실내로
마지막 장면의 결론을 내리자 정 감독은 민수, 정옥, 창현, 성준 씨와 함께 2층으로 향한다. 채시라 씨가 뛰어내리기 전 상황을 위한 현장 정비를 위해서다.
"시멘트 개는 통 있지? 드럼통 잘라서 만든 거...그거 갔다가 창틀 쪽에도 쌓아라. 한 여섯 일곱 개 쌓고...시라 씨 창틀 올라갈 때 밟을 수 있는 것도 창 가까이에 놓고...민수랑 창현이는 밖에 드럼통에다가 불피우고..."
민수 씨와 창현 씨가 라이터 불빛에 의지해서 시커먼 지하와 3층을 오가며 나무나 종이 조각 등 태울만한 것들을 찾아 불을 피울 때, 정 감독과 정옥, 성준 씨는 2층 촬영 준비에 분주하다.
1시 55분. 찌그러진 페인트 통과 나무 부스러기, 뜯어낸 상자 조각, 빈 막걸리 통 등 뭔가 범죄의 분위기를 낼만한 것들이 계속해서 올라가더니 현장의 세팅이 끝나가는 모양이다.
액션신 촬영을 눈앞에 두고 잔뜩 긴장해서 촬영 준비에 한창인 무술팀과 조명을 설치하기 위해 바쁜 조명팀들을 제외한 스탭들은 연일 계속되는 밤샘촬영으로 피곤한지 주저앉거나 쭈그리고 앉아 좀처럼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첫방송분의 마지막 신 촬영을 기다리고 있다.

2시 20분. 채시라 씨에게 동작 설명
정 감독이 성준, 정옥 씨와 액션 동작을 맞추고 있을 때, 채시라 씨가 2층에 들어선다.
"시라 씨, 첫번째가 창쪽으로 밀리다가 4번째 커트에서 뒤로 밀려 넘어지면서 페인트 통 좀 쳐주시고..."
정 감독이 연기자에게 동작을 설명하고 있을 때, 스탭들은 좀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위한 스모그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삽시간에 실내는 눈물이 날만큼 매캐한 냄새가 나는 스모그로 자욱해진다.
"두홍아, 저번에 싸우는 신이랑은 다르게 이번에는 살기를 띄우고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액션이어야 해. 먼저 촬영한 싸움이랑은 차별화해서 가자고..."
신호균 PD는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나 상황, 특별 사항 등 큰 줄기를 당부하고는 액션신의 촬영은 거의 정 감독에게 맡겨주는 편이다. 정 감독은 이렇게 자신을 믿어주고,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자신을 지켜봐주는 신 PD가 고맙다.

2시 30분. 촬영 시작
2시 25분. 무술팀들이 이리저리 다니며 촬영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자, 시라 씨 땀 좀 뿌려주세요...자 남학생들 시라 씨 가운데 두고...시라 씨 바스트 샷에서 점점 뒷걸음질로 밀리는 신입니다. 남학생들만 연습해봅시다."
35분. 하영이 밀려서 넘어지는 신을 마무리짓고, 전체적인 컷을 위해서 카메라가 밖으로 향했다.
"시라 씨 넘어지는 데 알죠. 페인트 통 차고...카메라 앞엔 스모그 좀 만들어주세요."
몇 번의 연습과 리허설을 거치고 45분, 큐소리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카메라 감독님, 여기 시라 씨 앞에 서있는 남자 다리 하나만 잡아주세요...시라 씨는 얼굴 클로즈업이니까 얼굴 감정만 잡아주면돼요. 아까랑 연결 안해도 되니까..."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공사장의 실내는 스모그의 매캐함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새벽이 더욱 스산하게만 느껴진다. 그 스산함 속에서 촬영은 계속되었다.

3시. 뒤집기
3시. 채시라 씨의 촬영이 끝나고 이제 남학생들 세 명의 촬영에 들어가기 위한 조명 세팅이 한창일 때 정 감독은 또 다시 정옥 씨, 성준 씨를 붙들고 신을 설명하고 있다.
"서서오는 컷하고, 밀려 넘어진 시라 씨 내려보는 신이야."
5분만에 조명세팅은 끝이 나고 촬영은 다시 시작되었다.
"넘어지기 전에 쓱 들어오는 컷이에요...시선은 카메라에 달린 마이크보고...남학생 1이 가운데 서고, 좀 뒤쪽으로 성준이랑 정옥이 서고..."
3시 15분. 뒤집기 촬영은 끝이 났다.

3시 20분. 몸싸움신
"자, 시라 씨가 넘어져 있고, 그 위로 남학생 1이 앉아서 다가서고...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야."
3시 20분. 조명이 세팅되는 대로 하영이 남학생들에 몰려 겁탈을 당할 뻔하다가 창틀로 올라가 뛰어내리기 직전까지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남학생 1은 시라 씨 잘 때리고...지금 여자 옷을 벗기는 과정이니까..." "옷 또 없어요? 그럼 찢을 수는 없고...어떻게 할까요? 감독님...시라 씨, 옷을 움켜쥐었다가 남학생 1이 뿌리치면 확 벌어지게 그렇게 할까요?" "손 무는 컷 끊어가고, 남자가 '아'하면서 찡그린 얼굴 잡고 '어?'하면서 남자 시선따라서 도망가는 시라 씨한테 넘어가는 거까지 갈까요?" "남자들은 힘있고, 거칠어 보이게 해주세요."

4시 15분. 실내신 촬영 마무리
"남자들이 다가오면 여기 쌓여있는 드럼통 쓰러뜨리고 창문쪽으로 가서...올라가요. 그리고 그쪽 골조에 매달리는 거예요."
4시. 채시라 씨가 골조에 매달릴 수 있는지와 안전여부를 확인하고 나서 한 번의 리허설이 진행된 후, 촬영은 시작되었다.
"남자들은 여자가 창틀에 올라가면 겁먹어야 돼. 여자가 떨어지면 안되니까...특히 남학생 1은 시라 씨 막 잡으면 안돼요. 겁나서 못잡는 상황이니까."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 신의 촬영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게 끝이 나고, 드럼통 무너질 때의 남자들 타이트 샷이나 겁먹은 남학생 샷 등 이런저런 마무리 샷들의 촬영으로 4시 15분, 실내신은 완성되었다.

4시 20분. 싸움신 연습
실내신을 마무리짓고 공사장 앞으로 내려오니 태우 역의 장동건 씨가 대기하고 있다. 성준 씨와 정옥 씨가 뛰어내리는 신을 연습하고 있을 때, 정 감독은 장동건 씨에게 액션 동작을 직접 시범을 보이고 있다.
"치고, 치고...가운데 남학생한테 벽쪽으로 밀렸다가 다시 밀어서 판자에 떨어질 때 도망가는 하영이를 쫓아가는 남학생 1을 보고 쫓아가...해보자."
25분. 시범을 보인 정 감독의 지시에 따라 장동건 씨와 무술팀들이 연습을 시작한다. 장동건 씨가 액션신의 동작을 연습하고 있는 4시 30분, 한쪽에서는 성준 씨, 정옥 씨, 남학생 1 연기자가 채시라 씨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따라 뛰어내리는 신이 촬영되었다.

4시 35분. 싸움신 촬영
"하영이 찾으러 다니다가, 떨어져 있는 하영이한테 세 남자가 붙어있는 걸보고 진짜 미친 듯이 싸워야 하는 거야. 아까 연습처럼 순서대로 하면 안되고..." "시라 씨는 도망가다가 동건이가 벽에 밀렸다가 다시 판자쪽으로 가면 도망가는 거예요."
35분. 싸움신의 큐사인이 드디어 떨어졌다.
"남학생 1은 시라 씨 쫓아가다가 전보대있는 즈음에서 잡혀...그럼 동건이는 무릎으로 두 번 찍고, 오는 주먹 막아서 넘어뜨리고, 넘어져 있는 남자를 밟아...아주 잔인하게..."
촬영이 진행되다보니 벌써 시간은 5시를 넘어서고 있다. 반복되는 액션신과 감기가 겹쳐 지칠 대로 지친 장동건 씨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정 감독은 채시라 씨가 도망가는 신을 마무리 지었다.
5시 5분. 채시라 씨의 촬영분이 끝나고 이제 창현 씨는 2층에서 떨어지는 신을 위해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5시 10분, 지쳐있는 장동건 씨의 신의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다.

5시 50분. 싸움신 마무리
5시 30분. 이제 동이 터 오려 하자 슬슬 세상의 움직임은 시작되었다. 우유나 신문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지나다니고, 가정집에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촬영팀의 마음은 급해지기 시작한다. 해가 뜨면 촬영을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건이 청바지 입었지? 동건아 운동화만 잠깐 빌려줄래?"
반복되는 격렬한 액션에 기어이는 다리에 쥐가 난 장동건 씨가 남학생 1을 밟는 다리신을 위해 정 감독이 직접 나섰다. 장동건 씨의 운동화를 빌려 신고...정 감독과 장동건 씨의 청바지 색깔이 일치해 다행이다. "자, 빨리 하영이 추락신 준비합시다."
5시 50분. 태우와 깡패들의 싸움신이 마무리되었다.

5시 55분. 창현 씨 추락신
원래는 싸움의 부감신(위에서 검은 형체만 보이게 찍는 신)을 찍어야 했지만 하늘이 점점 밝아지자 정 감독은 신 PD의 지시에 따라 창현 씨의 추락신을 부랴부랴 준비한다. 채시라 씨의 대역을 맡아 2층에서 뛰어내릴 창현 씨, 그리고 이를 따라 우르르 뛰어내리는 정옥 씨, 성준 씨의 신촬영이 순식간에 시작되었다.
여장을 한 창현 씨의 모습에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이를 지켜보던 스탭들은 웃음을 참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6시 20분. 촬영마무리
이렇게 숨쉴 틈도 없이 긴장했던 촬영이 끝난 시간은 6시 15분, 하늘은 벌써 청명한 가을 아침의 것이었다.
"자, 이따가 자동차 밤신 있는 거 알지? 집합 시간 연락줄테니까 일단은 가서 좀 쉬어라."
정 감독이 안전사고나 그림구상 등으로 가장 신경을 쓰는 자동차 사고신이다. 이제 또다시 거리가 하루를 시작하려는 시간에 그들은 또 다른 긴장으로 하루를 마무리짓고 있었다.
유난히 아기자기한 삶이 그립고, 아주 위험한 액션신의 순간이 문득 두려워지기도 하는 정두홍 감독과 정옥, 민수, 성준, 창현 씨이다. 그러나 이러한 액션신의 마지막 OK 사인 뒤에 오는 '바로 이거구나'하는 느낌과 자신들을 믿고, 묵묵히 지켜봐주는 연출자를 비롯한 스탭들과 연기자, 그리고 서로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촬영 현장을 사랑한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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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질테다...내 마음대로...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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