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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위안’하는 몽니 Monni


'몽니'라는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것은 ‘몽환’과 ‘감성’이다. 하지만 ‘몽니’의 원래 뜻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심술을 부리는 성질’이다. 지난 6월, 5년만에 2집 <This Moment>를 발표한 밴드 몽니의 음악은 전자를, 음악에 대한 욕심은 후자를 연상시킨다. 사진 제공:사운드홀릭

5년, 성숙의 시간들
그들의 2집을 접한 것은 5월 말에 있었던 뷰티풀 민트 라이프에서였다. 2005년 발표한 1집 <첫째 날, 빛> 이후, 딱 5년만이었다. 5년만에 선보인 그들의 음악은 한층 성숙했고, 보다 ‘몽니스러웠다’. 바로 샵으로 달려가 CD를 구입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만큼.
그 5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타리스트 공태우가 군입대를 했고, 동반 군입대한 드러머가 탈퇴를 선언하며 정훈태(드럼)가 영입됐다. 그리고 몸담고 있던 모던라이프와도 이별을 고했다. 공백기 동안 김신의(보컬)는 뮤지컬 <록키호러쇼>에서 ‘내귀에 도청장치’의 보컬 이혁과 더블캐스팅으로 성 지기 리프라프를 연기하기도 했다.
1집 발표 후, 꽤 실력을 인정받았음에도 스스로도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신의는 “1집으로는 밴드가 만들어졌을 뿐, 지금 이 순간부터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놓는다.
“철없는 음악을 했던 순간이었어요. 고집도 세고, 남의 말도 전혀 안 듣고….”
신의의 말을 듣고 있자니 발전과 성장이 어려운 밴드들의 전형적인 행보다.
“그때의 저는 음악적 고집도 셌고, 성격도 모나 있었어요. 인경·태우·훈태는 조화로웠는데, 세 사람과 저의 화합은 어려웠죠. 2집이 나올 때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건 밴드음악이고, 밴드음악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팀원의 재능을 제 고집으로 막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도 했어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음악, 내 위치, 성격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어떤 밴드를 만들어야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그 결과, 보다 짜임새 있고 완성도 높은 음악들이 2집에 담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표현대로 신의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세 사람의 5년은 어떤 시간들이었을까. 이인경(베이스)에게 소속도 없이 공연무대에만 오르는 시간들은 지침의 연속이었다.
“소속감이 없다는 게 지치게 했어요. 하지만 변함없이 공연장에서 환호를 해주는 팬들 덕분에 잘 견뎌냈죠. 이전까지는 악기 연주·녹음·편집까지를 각자 단독 작업을 하고 한데 모아 곡을 완성하곤 했거든요. 하지만 2집은 멤버 모두가 참여해서 곡을 완성했고, 보다 성숙하고 체계적으로 작업이 이뤄졌어요. 팀워크도 좋아졌죠.”
교체 멤버로, 신의의 동네 후배로 영입된 막내 훈태에게 5년은 힘들었지만, 꽤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
“적응기였어요. 아직도 진행형이긴 하지만 그땐 정말 아무 것도 몰랐거든요. 그래서 ‘너무’ 힘들진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과정들을 모르는 상태에서, 현재의 몽니에 합류했다면 전 여전히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을 거예요. 그래서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되고, 계획하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5년 동안, 세 사람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동안 부대 연병장을 돌던 태우는 멤버들에게 미안함과 든든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런 고충이 있었다는 걸 제대하고서야 알았어요. 셋이서 새 회사를 찾아다니고 저의 부재로 기타 사운드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건 알았지만 팀워크나 소소한 문제들로 고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죠. 저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인경의 증언(?)대로 트리플 A형의 소심증이 발동했다. 이제 막 20대로 접어든, 그저 음악이 좋았던 어린 태우에게 당시에는 팀을 돌아볼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을 터다.

지금 이 순간, 음악으로 위안을 건네다
몽니의 2집 <This Moment>의 주테마는 ‘위안’인 듯 보인다. 타이틀곡 ‘나를 떠나가던’ ‘일기’ ‘나 지금 뛰어가고 있어’ ‘울지 말아요’ ‘톡톡톡’ ‘가줄래’ 등 서정성 짙은 초반부터 록킹한 후반부까지 배열된 몽니의 음악은 순간순간 기댈 어깨를 내주고 마음을 어루만진다.
“타이틀곡 ‘나를 떠나가던’은 가요적 성향이 짙은 곡이지만 반주는 외롭고 애절한 감성을 많이 표현했어요. 절제되고 소박한 연주로 그 감성을 보다 짙게 하죠.”
‘나를 떠나가던’과 더불어 신의가 추천하는 곡은 ‘일기’다. “누구나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속에 품고 있잖아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모든 게 순간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20대 중반의 사람이 고등학교 시절을 후회하고, 30대는 자신의 20대를 후회하고…. 후회의 연속이죠. 그럼에도 시간은 지나가요. 그래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죠.”
인경은 가장 다이내믹하고 여러 요소들이 즐비한 ‘가줄래’, 훈태는 듣고만 있어도 정신을 놓게 되는 몽롱함이 매력적인 ‘울지 말아요’, 태우는 위안을 받을 수 있는 ‘톡톡톡’을 추천한다.
오아시스 등 감성적인 곡들을 좋아하는 신의, 덴마크의 MEW라는 밴드처럼 감성적이지만 꿈꾸는 듯한 곡을 좋아하는 인경, 리듬이 도드라지는 음악을 선호하는 훈태, 기타 솔로가 강한 신나는 록, 블루스 등을 좋아하는 태우. 전혀 다른 음악관을 가진 네 사람이 만들어내는 몽니의 음악은 감탄할 정도로 같은 사운드와 감성을 자아낸다.
“음악관이 달라도 합주를 하고 편곡을 하는 과정에서 몽니의 색깔이 입혀지는 것 같아요. 각자 생각했지만 네 명이 나눠 연주하고 노래하다보면 몽니가 되거든요.”


네 사람이 모이면 몽니가 된다는 인경의 말에 태우가 나선다.
“장르를 고집하기 보다는 몽니의 색을 내는 데 집중해요. 장르는 접목하면 되고, 지금은 어떤 장르든, 음악이든 몽니의 색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하죠.”
이처럼 확고한 몽니의 색을 낼 수 있었던 데는 프로듀서로 참여한 자우림의 기타리스트 이선규과 믹싱작업을 했던 베이스 김진만의 공이 적지 않다.
“프로듀서가 왜 있어야하고 중요한지를 깨닫는 시간이었어요. 프로듀싱은 음악 좀 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작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선규 형과 진만 형은 몽니 음악의 조언자이자 인도자예요. 몽니의 색을 백분 표현하면서, 그 색을 보다 선명하게 할 수 있는 권유들을 아끼지 않죠.”
프로듀서 부치 빅(Bryan David Vig), 로이 토마스 베이커(Roy Thomas Baker) 등에 의해 너바나(Nirvana), 퀸(Queen),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등의 전설적인 록밴드가 탄생하지 않았던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우리는 ‘몽니’


몽니의 결성은 2004년, 신의가 서울재즈 아카데미에서 기타공부에 열을 올리던 무렵이었다. 친구가 자신과 함께 밴드를 해보자는 제의를 해왔다. 그때 신의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베이스가 여자냐?”였다.
“저희 밴드의 베이스는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밴드 합류의 목적 자체가 여자 베이시스트 영입이었죠. 인경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운명이었던 것같아요.”
그리고 ‘슬러거’라는 홍대 클럽에서 만난 태우를 영입했고, 여의도에서 드럼 좀 치는 아이들 중 눈여겨보고 있다 영입한 이가 훈태였다. 10살의 나이 차가 주는 어려움은 없는지, 막내로써의 서러움은 없는지 훈태가 궁금해 질문을 던지니 득달같이 “아니”라며 격렬한 손사래다.
“저는 모르는 옛날 만화나 미국드라마 얘기할 때 빼고는 별로 못느껴요”라더니 슬쩍 “이메일로…”라고 여운을 남긴다. 결과를 말하자면, 아직까지 이메일은 도착하지 않았다. 괜스레 안심이 된다.
“진짜 제 가족같아요. 저도 부모님이랑 형이 있거든요. 삶과 음악적으로 이끌어주는 신의 형은 아빠 같고, 제가 힘들 때면 어김없이 등을 토닥여주는 인경 누나는 엄마같아요. 그리고 차마 신의 형이나 인경 누나한테 할 수 없는 가벼운 불평·불만은 태우 형이 들어주죠.”
몽니를 ‘가족’이라고 표현하는 훈태에 대한 인경의 찬사(?)가 쏟아진다.
“어떨 땐 사근사근한 막내 여동생처럼, 때로는 든든한 남동생처럼 정말 막내다운 막내예요. 어떻게 이런 아이가 저희한테 왔는지….”
시킨 일은 물론 시키지 않은 일에도 기꺼이 나서는 훈태에게 태우가 애정어린 지적을 한다.
“남을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배려해요. 곧 군대를 가야하니 스스로도 예민해져 있는데도 말이죠.”
그리곤 우스갯소리인지 농담인지 그 의중이 모호하게 “세상이 녹록치가 않다. 아무나 배려하지 말아라”란다. 그런 태우에 대해 인경이 입을 연다.
“진짜 재밌고 귀여운 기타리스트예요. 쓸 데 없는 고집을 부리는 기타리스트도 많은데, 융통성도 있으면서 자기 색깔도 확실하죠.”
그러곤 “너무 좋은 말만 했다”며 소름 돋은 팔을 쓸어내린다.
“유경 누나는 가끔 누나고, 거의 대부분이…”까지 얘기한 태우에 ‘동생?’이라고 반문하려는 찰나, “형같아요”란다.
“여성 멤버가 있는 밴드 보면 불화가 적지 않은데, 저희 팀은 그런 적이 없어요. 가끔 무섭기도 하지만, 참 형같은 누나예요.”
몽니의 중심에는 늘 신의가 버티고 있다. 때로는 믿음직스러운 리더, 때로는 인생의 조언자가 돼주는 신의에 대해 멤버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범적인 리더예요. 5년 넘는 공백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몽니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건, 그런 리더에 대한 믿음이었죠”라고 입을 모은다.
“관중석에서 <록키호러쇼>를 봤는데 신의 오빠가 노래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무대 위에서 같이 연주할 때는 몰랐던 사실에 전율을 느꼈죠.”
인경의 말에 태우가 “전 바로 얼마 전에 알았어요. 신의 형이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란다. 이같은 동생들의 찬사에 신의 역시 입을 연다.
“인경이는 저에게 너무 소중한 동반자예요. 섬세한 베이스, 이처럼 몽니 음악에 맞는 베이시스트는 없을 거예요. 인경이가 제 오른팔이라면 태우는 제 왼팔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신의에게 짓궂게 묻는다.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오묘한 표정으로 “오른손잡인데요”라는 대답에 큰 웃음이 터진다.
“제가 생각하는 감성과 그림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기타리스트예요. 그루브한 음악을 선호하던 훈태는 몽니를 하면서 놀랍고도 새로운 사운드를 표현해 내죠. 다른 멤버와 몽니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그럴 일도 없을 겁니다. 이 중 하나가 같이 못하게 된다면 그게 몽니의 마지막일 거예요.”
비장하기까지 한 리더의 발언에 감탄이 터진다. 그렇게 그들은 ‘몽니’라는 이름 아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꽤 오래도록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할 모양이다.

국민밴드로 가는 길, 그 길에 몽니가 있다


2집 발매와 더불어 몽니는 3집 앨범 준비에 들어갔다. 1집과 2집 사이의 공백이 길었기에 보다 빠른 시일 내에 새 노래들을 선보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몽니가 3집을 이처럼 서두르는 데는 훈태의 군입대도 한몫했다. 훈태가 있을 때 3집을 완성해야, 훈태가 군에 가있는 2년을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3집은 이미 써놓은 곡들보다는 새로운 곡들로 구성할 것”이라는 신의의 귀띔이다. 왠지 남겨질 곡들이 아쉬워 사운드홀릭 녹음실을 몰래 방문해야할까, 라고 방법을 모색하는 사이 “나중에 많이 유명해지면 ‘B 사이드’로 남아있는 곡들을 담은 앨범을 발매하고 싶다”고 밝힌다. 이제 몽니가 그만큼 유명해지길 기다리면 되는 모양이다.
“저희를 잘 봐주길, 좀 더 사랑해주길 바라기 보다는, 저희 같은 밴드음악을 하는 친구들도 있구나, 라는 열린 마음을 가져 주면 좋겠어요. 저희는 이렇게 좋은 음악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연구·발전할 밴드라는, 조금은 경솔한 자신감을 가지고 좋은 음악을 만들테니까요.”
이같은 신의의 바람에 막내 훈태가 부연한다.
“음악을 듣는 분들은 완벽하고 꽉 찬 사운드에 익숙해져 있어서 밴드음악을 들으면 좀 싱겁거나 허전하게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완벽한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과 복선이 분명 존재하죠. 그런 감정과 복선을 열린 마음으로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곤 “군대 가기 전에 3집이 해결 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도 털어놓는다.
“국민밴드가 되는 게 꿈입니다. 돈 잘 버는 밴드나 국민 모두가 아는 밴드라는 의미의 ‘국민밴드’가 아니라 자선 공연 등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고 베풀 수 있는 힘을 가진 그런 밴드가 되고 싶어요.”
신의의 꿈에 “몽니가 한국 최고의 문화적 수출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인경의 꿈과 “국내 뿐 아니라 해외 록페스티벌에도 참여해 국위선양을 하고 싶다”는 태우의 꿈, “드러머로 짱 먹고 싶다”는 훈태의 꿈이 덧칠된다.
5년만에 돌아온 몽니는 8월15일 늦은 7시, 상상마당에 '그대와 함께'라는 이름으로 단독공연을 가진다. 그렇게 그들은 국민밴드로 가는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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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Enter Vol. 52

Blog+Enter 2010.07.25 21:40


blog+enter 쉰두 번째 간행물입니다

1주년입니다...
언제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게 1년이 지나버렸군요
가끔 드는 생각이 있는데
무엇을 위해 하는 일인가
나 혼자만의 만족은 아닌가...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혼자만 너무 진지한 게 아닌가.
이제 너무 당연해서 왠지 무시당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요즘 왜 이리 진지해지고...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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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g+Enter Vol.52 ]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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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질테다...내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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