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리메이크였을까?, 하녀근성에 대한 진중한 고찰 <하녀>


故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가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는 반가웠다. 그리고 주인공이 전도연으로 낙점됐다는 소식을 듣고 원작을 생각하며 하녀 역의 ‘전도연’을 떠올렸을 때의 느낌은 그랬다. 과연 가능할까?
이같은 우려는 기우였다. 전도연의 연기는 뛰어났다. 하지만 리메이크와 캐릭터 소화에 대한 우려를 기우로 만든 것은 전도연의 연기가 아닌 달라진 캐릭터와 상황 설정이었다. 캐릭터와 설정 자체가 ‘리메이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 뒤바뀐 느낌이다.

해맑고 그럭저럭 살만한 하녀, 은이


말 그대로 ‘천둥벌거숭이’, 공장에서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며 여공들에게까지 멸시를 당하던 하녀(이은심)는 동식(김진규)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하녀는 동식의 어린 아들(안성기)과 다리가 불편한 딸에게까지 무시를 당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2010년,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서 하녀 은이(전도연)는 중퇴를 하기는 했지만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본인 소유의 작은 아파트도 있다. 일이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 다른 일을 찾으면 되고, 길거리에 깔린 게 남자지만 쓸 만한 놈이 없어 혼자 지내고 있다.
나름 살만한 그녀에게 세상이 불친절해지기 시작한 것은 거부의 집안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되면서 부터다. 은이는 해맑고 모든 것이 지나치게 간단명료한 인물이다. 안주인 해라(서우)의 어머니(박지영) 말을 빌자면 ‘백치 같은’ 여자다.
그저 주인집의 여섯 살 난 딸 나미가 좋아서 잘해줄 뿐이고, 주인집 남자 훈(이정재)이 당당하게 방으로 들어와 몸을 비비대니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기고 관계를 가질 뿐이다. 벌거벗고 자신의 방을 찾을 훈을 위해 ‘홀딱 벗고 기다리는가’ 하면, 자신이 임신한 사실도 모른 채 2층 전등청소를 하다 해라 어머니의 실수를 가장한 의도된 행동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이 집 좀 무서운 것 같다”고 느낀다.
다짜고짜 뺨을 때리는 해라에 왜 그러는지도 모르다 ‘임신’ 사실이 들킨 것을 알고는 곧바로 죄송하다며 무릎을 꿇는다. “나미 엄마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생각을 못했다”는 은이는 그 집안의 안주인이 될 생각도, 아이를 꼭 낳아야 겠다는 의지도 없는, 원작의 하녀에 비하면 지나치게 둔한 구석이 있고 맹하며 착하다.
“내 아이도 당신 아이”라고 악다구니를 치거나 “내 아이가 죽었으니 당신 아이도 죽어야 한다”며 갓난아이를 죽이려 드는, 악에 받쳐 팜므 파탈로 변모하는 원작의 하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원작의 <하녀>는 동식과 그 아내의 상상이나 대화를 재현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극 중 하녀는 평온한 가정을 파괴하는 철저한 악역이었다. 반면, 은이는 측은하고 피해자의 느낌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이 짓 좋아해요”라고 웃던 은이는 강제로 낙태수술을 받고 변하기 시작한다.
“꿈틀이라도 해보고 싶다”고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낸 은이는 집안의 늙은 하녀 병식(윤여정)의 도움을 받아 복수를 꿈꾼다. 새로 태어난 쌍둥이, 미나와 거실에 모여있는 훈, 해라, 해라의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2층 전등에 목을 매달고 분신을 한다.

악의 상징, 주인집 부부


목전에서 끔찍한 은이의 자살을 보고도 미나의 생일에 비싼 그림을 선물하고 노래를 부르며 파티를 여는 주인집 부부 훈과 해라는 그저 악인이며 현재 누리고 있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발악을 하며 참고 있는 사람들이다.
공장의 피아노 교사인 남편과 삯바느질로 가계를 꾸려가는 아내, 원작의 부부는 무리해 2층집을 짓고 셋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하녀를 들이게 되고, 살림도 쪼들리게 된다. 이에 갈수록 집착하고 공포의 존재가 돼가는 하녀를 떨쳐낼 수 없다.
하지만, 2010년 하녀 은이를 고용한 집의 남자 훈은 엄청난 재력가이며 그저 끌리는대로 여자를 안고 수표를 건네는 인물이다. 은이의 낙태를 주도한 장모에게 “누가 감히 내 애한테 그런 짓을 했냐”며 “이봐요. 당신 딸이 낳아야 내 애인 것만 같습니까?”라고 으름장이다. 장모와 사위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하는 세상을 대변하는 인물인 것이다.


안주인 해라는 남편의 재력과 보호에 기생하는 인물이다. 주인인 남편에게 버림받을까 바람을 피운 것을 알고도 ‘개새끼’라는 욕 한마디와 입술을 물어뜯는 것으로 넘어간다.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만데 바람 정도에 포기하냐고 부추기는 엄마와 더불어 하녀기질이 가장 강한 인물이다.

뒤바뀐 캐릭터와 설정, 상징성과 감성을 약화시키다


이처럼 캐릭터와 상황, 배경 등이 바뀌면서 원작의 상징성과 타당성, 감성은 사라져 버렸거나 약화됐다. 엄청난 부자로 설정된 주인집으로 인해 쥐와 쥐약, 천둥번개와 피아노 등 가까이에 존재하는, 내재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상징하는 원작의 요소들은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은 하녀 은이가 느끼는 좌절과 분노다. 사람 취급도 안하는 훈과 포달을 떨며 기어이는 자신 뱃속의 아이를 죽인 주인집 여자 해라와 그의 어머니에 그녀는 그들 눈 앞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은이가 지닌 좌절과 분노의 표출은 은이 자신이 아닌 늙은 하녀 병식에 의해서다. 주인 앞에서는 깍듯하지만, 은이 앞에서는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다(이하 아더매치)’며 신세 한탄이 늘어지고, 바보처럼 당하기만 하는 은이를 대신해 속상해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주인 앞에서 무표정하게, 모든 것을 통달한 듯, 한없이 충성하는 듯하던 병식은 은이의 복수와 더불어 오랫동안의 아더매치한 하녀라는 굴레를 박차고 나서기도 한다.


남자가 느끼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낙태하고 자신에게 집착하는 하녀에 대한 심적 죄책감과 갈등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죄책감과 갈등 대신 세상에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는, 장모에게도 “감히”라는 말을 던질 수 있는 절대 권위와 거만함이 들어섰다.


가난한 피아노 선생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동식과 결혼한 원작의 아내는 10년 동안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왔다. 그런 아내에게 돌아온 것은 남편의 부정에 대한 절망과 하녀에게 계단을 굴러 낙태를 하게 한 데 대한 죄책감, 위험 속에 처한 아이들에 대한 조바심 등이다. 하지만 2010년 <하녀>의 안주인은 가진 것을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한없는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비굴함과 탐욕의 상징이다.


피아노 의자에 뒤엉킨 남녀의 다리와 남자의 발등을 올라탄 여자의 발 등 상징적으로 표현되던 성 표현 역시 지나치게 직접적이다. 남산만한 배를 붙들고 남편의 사타구니에 주저앉아 “너무 깊어”라며 “입으로 해줄게”라는 해라가 그렇고 누워있던 은이를 내려다보며 “빨어”라고 권위적으로 명령하고 관계 도중 “안에다 해도 되나” “입에다 할게. 빨대처럼 쭉쭉 빨아들여줘”라고 하는 훈이 그렇다.


사라진 상징성이 캐릭터로 전이된 것이다. 캐릭터는 그 성향을 파악할만한 상황이나 장면이 충분치 않아 이해가 쉽지 않다. 이처럼 어렵던 캐릭터에 대한 이해는 “이 집 사람들 무서운 사람들이야” “너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 “둔한 구석이 있고 맹하다” 등 각 인물의 대사로 각 캐릭터가 지닌 상징성을 부각시킨다. 이같은 캐릭터의 상징성을 깨닫는 순간, 각기 따로 움직이는 듯하던 캐릭터들은 그제서야 유기적으로 결합하게 된다.

사라진 서스펜스, 진정한 ‘하녀근성’에 대한 고찰
그렇다면 왜 김기영 감독의 <하녀>였을까? 왜 리메이크였을까? 캐릭터나 설정을 따온 것도 아니다. 따온 것이라면 ‘하녀’와 주인집 부부의 이야기라는 정도다. 원작 <하녀>를 보고 느낀 감상문과도 같은 리메이크라고, 원작 영화를 보고 하녀의 처지나 상황이 안타까웠고, 피해자인 척 한 인간을 짓밟는 주인집 부부의 뻔뻔함에 분노한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할 뿐이다.


보는 이의 신경을 긁어대는 음악과 화면구성, 카메라 워킹, 상황 등이 극대화된 긴장감을 유지시키며 끝까지 급박하게 끌고 가는 원작과 달리 다소 고요하고 느릿하게, 적당선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흘러가는 2010 <하녀>에는 서스펜스가 사라졌다.
너무 넓어져 버린 공간과 평균적으로는 상승했지만 지나치게 커져버린 신분의 격차, 휴머니즘은 사라지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 차가워져 버린 세상 등은 원작의 긴장감과 긴박감을 감소시키고 절망과 분노를 확대시킨다. 동시에 1960년을 뜨겁게 달구던 팜므 파탈의 상징 ‘하녀’에게서는 광기가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서스펜스와 광기 대신 ‘하녀근성’에 대한 진중한 고찰이 담겼다. 직업도 하녀이고 뼛속까지 하녀인 병식, 직업은 하녀이지만 한 인간으로 대접받길 원했던 은이, 겉으론 화려하고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남편의 재력에 기생하며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악다구니를 떠는 아내 해라와 그의 어머니.
모태 하녀인 것처럼 굴던 병식은 그 굴레를 벗어나 한 인간으로 우뚝 섰다. 그 집안의 안주인이 될 생각도, 아이를 꼭 낳아야 겠다는 의지도 없던 은이는 자신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멸시하는 주인집 부부에 의해 자존심을 다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자기 파멸로 치달았다.


훈에 기생하며 버림받지 않기 위해 기를 쓰던 해라와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하녀근성을 발휘하며 훈에 기대 살고 있다. 이것이 2010 <하녀>를 서스펜스 스릴러가 아닌 블랙코미디로 분류하는 이유다. 지나친 상징성과 압축으로 이해가 쉽지 않더라도 말이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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