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은 ‘일상’과 ‘대중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에 팝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날아들었다. 지난 12월29일부터 2010년 4월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린다. 사실,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앤디 워홀의 작품세계를 평가하거나 전시회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워홀이라는 예술가 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대한 지식이 매우 야트막한 수준이니 작품세계 등을 논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단지, 화가이자 광고 디자이너이며 잡지의 기자이자 발행인, 영화감독이었던 앤디 워홀이라는 창작자를 통해 일상과 예술의 연관성, 창의력과 상상력의 발현, 대중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기 위함이다.


‘상업성’의 양면성, 대중의 가치를 論하라
전통적인 예술의 가치를 추구하던 시절,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Factory)’라고 이름 붙이고 사진을 활용한 실크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작품과 아이디어 등을 차용했다. 틀을 통해 무수히 반복적으로 덧대고 채색하며 ‘생산’에 가까운 창작 활동을 해왔다.
이는 당시 예술의 덕목 중 하나인 유일성과 독창성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지금까지도 워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의 단초가 되곤 한다. 워홀은 전통적인 예술의 가치인 유일성과 독창성, 예술가가 손으로 제작한 작품의 원본성에 반기를 들듯 똑같은 깡통과 박스와 병을 그려댔고, 똑같은 틀을 최대한 활용해 찍어냈다.
실크스크린 틀에 색과 물감, 재질, 선 등으로 변화를 주었고 일상의 모든 것을 소재와 재료로 활용했다. 작품 자체의 유일성과 독창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틀을 통해 찍어내는 듯한 자신만의 창작방식으로 유일성과 독창성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상반되는 것의 경계에 서 있다는 사실은 보는 이에 따라 ‘스펙트럼이 다양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이도 저도 아니다’라고 평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예술의 가치는 ‘상업성’을 지양해야할 덕목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유일성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가치는 대중의 가치를 소홀히 하며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려는 권위의식에서 기인한다. 반면, 상업성은 ‘돈’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대중’과 그들의 ‘일상’을 예술의 울타리로 끌어들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정 층의 소유가 아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인 것이다. 모든 예술은 ‘일상’과 ‘대중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은 군중과 일상 속에 있다
워홀의 미술관은 “미국이 위대한 이유는 부자도 가난한 사람들도 똑같은 물건을 살 수 있는 전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TV를 보고 코카콜라를 마신다. 대통령도, 리즈 테일러도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 대해 ‘상업적’이라고 공격하는 이들에게 “대통령도, 리즈 테일러도, 나도, 우리도, 당신도 코카콜라를 마신다”고 역설하며 대중의 가치와 평등을 강조한 것이다. 대중을 염두에 둔 워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후추맛, 치킨 앤 덤플링, 비프 등 각종 맛별 ‘캠벨 수프 깡통’과 ‘코카콜라 병’, ‘달러 사인’ ‘마릴린 먼로’ ‘마이클 잭슨’ ‘바나나’ 등인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는 워홀의 작품이 일상 속에, 군중 속에 있어야 빛을 발하는 이유이며 가장 위대한 예술은 군중과 일상 속에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미술 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와 콘텐츠에 적용돼야할 덕목이다.
“예술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받으면 좋아하는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워홀의 이 말은 예술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의 발현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대중과의 소통과 공유임을 역설한다. 대중이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와 예술은 제대로 된 예술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리얼리티’ ‘대중성’ ‘개연성’ 등으로 일컫곤 한다.
이 같은 예술관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들이 워홀을 유명 화가 반열에 오르게 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초상이다. 마릴린 먼로, 마이클 잭슨, 리즈 테일러, 잉그리드 버그만, 믹 재거, 재클린 케네디, 레닌, 마오쩌둥, 장 미셸 바스키아 등 유명인의 초상화 작업을 할 때 워홀의 작업방식이나 철학은 남다르다.
1985년작인 리나 터너의 얼굴은 빛을 받은 듯 하얗게 날리고 있다. 1962년 마릴린 먼로의 죽음을 기린 작품 중 하나인 ‘세 개의 마릴린’은 과장되게 화려하면서도 철저하게 가면을 쓴 듯 보인다. 1975년작인 믹 재거 에디션 작업에는 애용하던 바탕 면 칠하기나 스텐실 기법이 아닌 거칠게 찢긴 여러 장의 종이를 활용했다.
이처럼 워홀은 스타나 유명인 자체를 그리는 데 의미를 두기 보다는 스타를 통해 공유하는 대중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워홀은 철저하게 대중의 입장에서, 대중을 염두에 둔 작품을 통해 대중의 가치를 강조하고 그들과의 소통을 꾀한 것이다.
사고현장 등의 끔찍한 장면도 매체를 통해 반복해 보여주면 감각이 둔화돼 끔찍한 내용과 이미지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는 대중 심리를 표현한 ‘앰뷸런스 사고’ ‘두개골’ ‘전기의자’ 등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상과 현실, 그 경계를 서성이다
순수예술이든 상업예술이든 모든 예술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존재한다. 미술도, 음악도, 소설도, 드라마도, TV영상도, 영화도 지나치게 현실적이기만 하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별천지를 그린다고 해서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예술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이들이 말하는 흥행의 결과는 아니다. 이같은 결과의 밑거름이 되는 대중과의 소통과 공유, 개연성 확보 등의 ‘성공’과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술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얼마나 대중과 소통하고 공유하며 대중의 가치를 높이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고 공감을 끌어내 향유할 수 있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적절하게 서 있을 곳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네의 예술인 것이다.
Posted by hur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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